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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Dec 13. 2023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통일/북한 책소개] 아랫집 윗집 사이에 (1)

활동했던 내용을 정리하다가 2020년 말에 통일부 블로그에 기고할 뻔했던(?) 아니, 나는 기고했지만 무슨 일인지 실리지 않았던 글 네 편을 발견했다. 북한/통일과 관련한 책을 소개한 네 편의 연재글인데 이렇게 버려지기에는 아까워 브런치에 업로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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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여행>이라는 이름표를 단 작은 박스가 있다. 그 박스에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며 모은 갖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다. 식당에서 받은 영수증, 직접 끊은 기차표, 귀여운 껌 포장지, 쓰지도 않을 엽서, 식당에서 챙긴 냅킨, 숙소에서 준 칫솔, 박물관 입장 티켓, 숙소에서 받은 관광 지도, 환전할 수 없는 동전 등. 한국에서는 '버려 주세요' 라고 말했을 사소한 물건들. 오히려 비싼 물건들보다도 이렇게 사소한 물건들이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디자인과 분위기를 담고 있고, 여행을 다니며 경험한 풍경과 냄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물건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곳에 다녀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은 놓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 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만난 사소하고 작은 것들은 버리기가 어렵다.


아마 이런 이유로 《메이드 인 노스 코리아》도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북한의 영수증, 호텔과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물품들, 유적지의 엽서책, 과자와 통자림 포장지, 담배곽 등. 북한에 간다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들을 소개한다. 약간은 촌스럽지만 다양한 색감을 가진 물건과 포장지가 북한이라는 국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돕는다. 저자인 니콜라스 보어가 여행하며 수집한 사소한 물건을 통해 그의 경험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책과 영상, 교육자료를 통해 북한의 전통문화, 북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 놀이와 같은 것들을 경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자료에는 《메이드 인 노스 코리아에》서 느낄 수 있는 개인의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 요즘은 다른 나라로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SNS에 올라오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그 나라의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들, 버스와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페 메뉴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런 포스팅에는 공적으로 만들어진 홍보자료와는 달리 개인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우리는 그 나라에 가보지 않아도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그 나라를 상상하고 생각을 구체화해본다. 하지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이러한 간접체험조차 불가능하다. 


그리고 북한을 어렵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쩌면 핵, 인권 같은 무거운 단어들이나 통일을 둘러싼 정치적인 입장이 아닌, 사소한 경험도 해볼 수 없어 그 나라를 상상했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작지만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하나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북한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와중에도 북한 여행을 상상해 낸 좋은 책이 있다. 김준연 작가가 쓴 《북한 여행 회화》다. (이미 힐데와소피 브런치에서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다.) 외국 사람들이 실제로 북한을 여행한 책들도 많지만 왠지 이런 책들에서는 기존의 편견을 계속 확인하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작가가 세계 여행을 하며 방문한 여느 한 나라처럼 북한을 바라보며, ‘북한에 여행을 간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행을 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나라의 언어, 그리고 그 언어에 기반한 에티켓일 것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 여행갈 때 참고하는 회화책처럼 식당, 호텔, 대중교통, 통신, 시장, 공항, 입경심사(입국심사)에 필요한 회화를 상상해 보고 그의 여행 경험과 자료 조사를 섞어 북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정리했다. 비록 북한을 직접 가지 않고 상상에 기반한 여행기이지만, 내용이 담고 있는 시선이 결코 가볍거나 뻔하지 않다. 무엇보다 재밌다. 



우리가 세계공용어로 영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각자가 본디 어느 언어를 사용해왔는지, 어떤 체제의 국가에서 살아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에티켓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울라지보스또끄와 블라디보스토크의 간극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북한 여행 회화》, 148쪽



생각해 보면 그렇다. 막상 여행을 가서 외국 사람들과 깊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렵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뿐더러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언제든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보통 여행지에서는 가볍고 사소한 대화부터 시작한다. 북한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면 늘 무거운 주제를 떠올리지 사소한 것들을 상상할 기회는 없다. 여행에서 모은 사소한 물건들처럼, 현지인들과의 사소한 대화처럼, 북한을 상상하면서도 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조금 달라질까? 갈 수 없다는 사실 하나가 당신의 상상력을 막고 있다면 여기서 소개한 책의 도움을 받아 북한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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