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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Mar 21. 2019

먼나라 이웃나라 : 북한편

김준연˙채유담,『북한 여행 회화』, 온다프레스, 2019.

최근 들어 교보문고나 알라딘에서 ‘북한’, ‘통일’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트렌디한’ 혹은 ‘눈길을 끄는’ 책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자 이에 반응하여 재밌는 기획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출간의 목적이 무엇이든 칙칙한 ‘북한’과 ‘통일’ 관련 서적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게됐으니 무조건 환영할 일이다.


관련 직업을 갖고 있기에,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재미가 있으니까 등등 여러 이유로 이런 책들을 주의깊게 보게되는데, 막상 만족스러운 책은 찾기 어렵다. 대충 훑고 덮어버린 일이 부지기수. 훑는 것을 넘어서 읽고싶은 책을 찾던 중. 훌륭한 책을 만났다.


‘북한 여행 회화’라는 책 제목을 보고 컨셉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경험에 기반하여, 속지 말자고 순간 마음을 잡았다. 컨셉에만 이끌렸다가 후회한 책들이 생각나면서, 암, 내용이 중요하지! 라고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았으나- 겨우 미리보기 몇 장을 보고 책을 사버렸다. 그리고 정말 단숨에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설렜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책. 너무 잘 썼다. 구성도 촘촘하고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읽고싶을 정도로 잘 썼다.


먼저, 컨셉에 박수를 치고싶다. 북한 ‘여행 회화’라니. 보통 여행 회화라는 말은 어디에 쓰는가. 내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에 나갈 때, 단기간에 필요한 문장만 쏙쏙 외울 수 있도록 만든 책의 제목이다. 즉 기본적으로 ‘외국어’를 떠올리게된다. 그러나 저자는 같은 말을 쓰나, 사실 다른 말을 쓰는 것만 같은 북한에서 필요할 여행 회화 책을 만들었다. 북한은 우리에게 참으로 애매한 나라다. 외국도 아닌 것이, 내 나라도 아닌 것이, 형제라고 말하기엔 아직 적대적인 것 같고. 그러나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국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뿐이다. 서로의 국가명을 서로의 언어로 정확하게 발음해줄 수 있는 유일한 두 나라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 언어의 동질성 혹은 차이성은, 설명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다가도 굉장히 같게 된다. 객관적일 수 있는 언어의 차이조차, 내가 하고싶은 주장의 소재와 근거로 사용되어버린다. 작가는 이러한 배경과 맥락을 분명하게 짚어내고 있다.


내용을 읽으면 더욱 놀랍다. 작가는 문화어와 여러 지역의 언어를 구분한 후, 문화어의 경우로 한정해서 글을 시작한다. 속이 다 시원하다. 북한에서도 북쪽 분들의 사투리를 '북한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떄문이다. 북한 언어에 대한 공식문헌과 인터뷰 등의 자료들, 다양한 자료를 정리해낸 통찰. 통일교육(이 단어 좀 바꾸고 싶다)을 나가면, 학생들이 북한말이라고 배운 것들이 어이가 없어서, 많이 깨부시고 오는 편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통일교육으로 할 내용이 별로 없으니, 남한말-북한말 비교 같은 걸 많이 하시는데, 북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말들을 북한말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도 외래어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전혀 없는 것처럼. 북한말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이 경우, 보통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인식과 의도가 깔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남북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가 아니라, 북한 내에서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었고 북한 정부가 이를 어떻게 의도하고 지도했는지. 그리고 인민들 사이에서 어떤 부분은 작동했지만, 어떤 부분은 사람들의 삶에서 언어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갔는지를 설명한다.


각 챕터별 구성은 이렇다. 북한 여행에 필요한 대표 회화 시놉을 제시하고, 이에 걸맞는 북한의 음식, 대중교통, 호텔, 외화, 방송, 여권 등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냥 인터넷이나 북한이탈주민 몇 명 만나보고 쓰는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인 사료, 북한의 현재 상황, 북한 문헌, 미디어, 영화 등을 알차게 조사하고 스스로 재구성, 재해석한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주의권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여행한 자신의 경험을 섞어내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진행방식은 북한의 상황을 다르지만 특수하지만은 않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한다. 다른 나라를 돌다가 다시 북한 얘기로 돌아옴으로써 북한의 상황이 굉장히 두렵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다. 북한을 편견 가득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중들의 시각을 좋은 스토리를 통해 겸손한 태도로 까준다. 이 작가. 배운 분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소재 혹은 주제로 하는 책들이 불편한 이유였던 ‘세 가지의 부족함’이 이 책에는 없다. 첫째, 내용의 빈곤함이다.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정말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아는 것이 북한의 큰 부분인 것처럼 쓴 책들이 널렸다. 이 책은 작가가 접근할 수 있을만큼의 다양한, 가치 있는 정보를 과해석하지도, 낭비하지도 않고 있는만큼을 담백하게 구성해냈다. 둘째, 시각의 빈곤함이다. 비단 북한 뿐 아니라 한 국가를 바라볼 때는 당연히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작가는 북한을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를 잘 이용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시각에 들어맞는 렌즈를 찾아나간다. 마치, 안경도수를 맞추듯이. 끼릭끼릭. 셋째, 재미. 재미!!! 사람들이 북한 얘기를 재밌게 느끼도록 하다보면, 내용의 신뢰성 혹은 균형적인 시각을 잃게 된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재밌다고, 혹은 우습게 여기는 지점이 사실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의 신뢰성과 균형적인 시각을 챙기고, 북한을 희화화 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재밌다.(센스있는 삽화도 한 몫 한다.) 쉬운 책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쌓았을, 그리고 그냥 타고났을 수도 있는, 아무튼 현재 작가가 갖고 있는 타인과 타문화권을 읽어내는 작가의 식견, 교양, 안목, 태도, 그래, ‘격!’에 속이 다 시원해졌다.


우리가 세계공용어로 영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각자가 본디 어느 언어를 사용해왔는지, 어떤 체제의 국가에서 살아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에티켓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울라지보스또끄와 블라디보스토크의 간극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여행 회화』, 148쪽


북한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울라지보스또끄로. 우리는 울라지보스또끄를 블라디보스토크라고 부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을 남조선으로,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북한으로 부르는 마당에. 외국 도시명을 다르게 부르는게 뭐 놀랍겠는가. 내가 부르는 나로 상대가 나를 불러주고, 서로가 소통하며 내가 말하는 내 단어를 상대가 이해하고 알아듣게 되는 데에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대구에서 사투리를 배우게 된 경험을 덧붙이고싶지만 그랬다가는 이쯤 다들 글을 그만 읽으실 것 같아서 참는다.)


아, 사람들이 북한을 이렇게 읽어내고, 이렇게만 배워낼 수 있다면. 그래 그 날이 내 꿈이 이뤄지는 날이겠지!





글. 오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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