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밥그릇 싸움... '막장 드라마'의 끝은?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이 왔다. 한적한 농가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새싹이 꽃을 피우고 산과 들에 푸른 잎이 울창한 계절이 왔는데 백성의 삶은 여간 녹록지 않다. 지독한 가뭄(원고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장마와 폭염이 심상치 않다)과 물가의 급상승도 숨통을 조이고 있는 마당에 민생을 돌보아야 할 정치인들이 오로지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발맞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음울한 6월, 이달의 말말말은 △'이준석vs친윤' 당내 갈등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 '동네 북'이 된 승장(勝將) 이준석... 토사구팽(兎死狗烹)? 기사회생(起死回生)?
정치인은 늘 '다음 선거'만을 바라보고 산다고 했던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쥔 국민의힘이 2년 뒤 국회의원선거를 대비해 '혁신'에 나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선 직후인 6월 2일 최재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 구상을 발표했다. 보수 정당의 낡은 이미지와 '고인물'을 걷어내 젊고 유능한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토론배틀'과 '공직후보자 자격시험(PPAT)' 등을 도입해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내놓는 사실상 마지막 역점 사업이다. 위원장으로 지명된 최 의원은 정치에 뛰어든 지 10개월 남짓한 '정치 신인'으로 계파 색이 옅으며 공정하고 품위 있는 이미지로 세간의 신망이 두텁다.
◎6월 6일
정진석 "李, 정부 반대에도 우크라이나 行... 자기 정치 심각"
정진석 "혁신·개혁·변화도 중요하지만 尹 정부에 보탬되는 역할 고민이 우선"
이준석 "어차피 기차는 갑니다"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6일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이 대표를 향해 '자기 정치를 위해 정부와 협의도 없이 출국했다'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언뜻 보기에 뜬금없는 '저격'이나 선거 직후 어수선한 시기에 당대표가 해외출장을 나서는 것에 대한 '큰 어른의 일침' 정도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이를 갈아온 이준석 대표와 친윤 그룹 의원들 간의 힘겨루기의 연장선이다.
◎6월 8일
정진석 "혁신위 최재형, 천하람? 李와 아주 가까운 분들"
이준석 "뭐가 두려운지 모르겠다... 적당히 하라"
정진석 "선배의 우려에 조롱과 사실 왜곡으로 맞서고 있다"
이준석 "먼저 때려 흙탕물 만들고 '적반하장', 어이가 없다"
가뜩이나 '0선 당대표'가 승장(勝將)이랍시고 콧대가 높은 마당에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휘어잡을 혁신위원회까지 만들어버렸으니 친윤의 주축인 '올드보이'들의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에 친윤(親尹)의 '맏형' 격으로 불리는 정진석 의원이 친히 회초리를 든 것이다. 별안간 입지가 불안해진 친윤 중진들은 두 차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리한 당대표를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내쫓고 싶어 안달이었다. 맛 좋은 토끼를 두 마리나 물어왔더니 사냥개를 삶겠다고 솥에 물을 끓이고 있다.
◎6월 13일
배현진 "혁신위원회는 李 '사조직' 오해받을 수 있어... 위원 추천 어렵다"
이준석 대표를 향한 공격에 배현진 최고위원이 한 수 거들고 나섰다. 13일 오전에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배 최고위원이 이 대표를 면전에서 비판하며 한 바탕 들이받은 것이다. 배 최고위원은 당초 혁신위원회에 공천의 기능은 부여하지 않았다며 "이 대표가 거짓말을 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으로 이날 배 최고위원이 사용한 '사조직'이라는 표현은, 앞서 10일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회동한 뒤 기자들을 향해 친윤 그룹 의원 모임 '민들레'를 "자잘한 사조직"으로 평가절하할 때 사용한 단어였다.
이미 의가 상할 대로 상해버린 두 사람은 말싸움의 '재료'를 가리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6일에 열린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추천한 2명의 최고위원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이 대표와 배 최고위원이 돌연 격렬하게 부딪혔다.
◎6월 16일
배현진 "안철수 추천 인사 수용해야... 졸렬해 보인다"
이준석 "안철수가 '뗑깡' 부린다... 지도부 구성을 바꾸는 중요한 문제"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하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함에 따라 최고위원 2명을 지목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안 의원은 이 몫을 각각 김윤 전 국민의당 서울시당위원장과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을 지목하는 데 사용했다. 윤 대통령의 검찰 후배인 정 의원은 대표적인 친윤으로 분류되고, 김 전 위원장은 과거 국민의힘을 상대로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 고쳐쓸 수 없는 청산 대상이다"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이를 두고 이준석 대표가 재고(再考)를 요청하였으나 안 의원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6월 20일
이준석 "오늘부터 비공개회의에서 현안 논의하지 않겠다"
배현진 "비공개회의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없애면 어떡하나"
이준석 "비공개회의 내용이 언론에 누차 유출되었다"
배현진 "대표 스스로 많이 유출... 누구 핑계를 대나"
추잡한 기싸움이 며칠이고 이어지더니 결국 카메라 앞에서 보여선 안 될 행태까지 보이고 말았다. 6월 20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공개회의를 선언하자 배현진 최고위원이 '왜 마음대로 공개하냐'라며 곧장 항의하였다. 이 대표는 그동안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던 최고위원회의 관련 언론 보도가 특정인 즉 배현진 최고위원의 '유출'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독한 말싸움 끝에 이 대표는 결국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6월 23일
장제원 "이게 대통령을 도와주는 정당이냐... 당이 뭐 하는 것인가"
이준석 "미끼를 안 물었더니 직접 쏘기 시작... '간장' 한 사발 할 것 같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중심인물이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장을 지낸 장제원 의원은 23일 이준석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의 '진흙탕 싸움'에 대해 "앞으로 1년이 얼마나 엄중한데, 당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 대통령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배 최고위원이 이 대표의 악수를 거절하고 손을 거칠게 뿌리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방송을 탄 탓이다.
그러자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디코이(decoy: 오리사냥 용 미끼)를 안 물었더니 드디어 직접 쏘기 시작한다"라며, 현재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배 최고위원을 '미끼'로 던지던 '사냥꾼'의 정체가 장제원 의원임을 지적했다. 또한 이 대표는 이어 "다음 주 '간장' 한 사발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는데 '간장'은 안철수 의원의 멸칭인 '간철수'와 장 의원의 성을 딴 것으로 '타도(打倒) 이준석'의 배후세력이 바로 안철수 의원과 장제원 의원임을 시사했다.
◎6월 23일
이준석 "혁신위 활동... 의회에서 다수가 될 준비의 기초 닦는 역할 해주길"
최재형 "내후년 총선을 대비해 당 혁신과 개혁을 가속화할 것"
한바탕 눈꼴신 '막장 드라마'를 써 내린 국민의힘은 23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최재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의 공식 출범을 승인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낸 결과이지만 이로써 당내 갈등이 봉합된 것은 전혀 아니다. 여전히 혁신위원의 몇 명을 누가 어떻게 추천하고 임명했느냐는 둥 운운하며 온갖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이 판을 치고 있다.
한편으로 이준석 대표는 오는 7월 7일 이른바 '성접대' 논란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윤리위는 지난 6월 22일 자정을 넘기도록 이어진 장시간 회의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윤리위 결과 '경고' 혹은 나아가 '당원권 정지' 등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국민의힘은 재차 수렁으로 곤두박질 칠지 모른다.
당내 친윤의 십자포화와 윤리위 심의에 더불어 '성접대' 논란을 둘러싼 송사(訟事)까지, 이 대표를 둘러싼 정국의 소용돌이가 만만치 않다. 과연 '정치인' 이준석은 이 고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