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가 어게인
2019년 7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주요 전략물자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이는 앞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이어 동년 12월에 발생한 '일본 해상초계기 레이더 조사 사건' 등 연이은 한일 양국 간 마찰 끝에 내려진 노골적인 '보복 조치'였다. 이에 우리 국민은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 이른바 '노 재팬 불매운동'을 불처럼 일으키며 대응했다.
작게는 일본 샤프, 볼펜과 같은 문구류부터 맥주와 사케 등 식료품 나아가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도요타, 렉서스 등 공산품까지. '노 재팬'의 대상은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고 산업 전반에 걸친 모든 일본 제품을 거부하는 형태로 발전됐다.
이에 당시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죽창가'를 부르짖으며 '노 재팬'에 편승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는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정치가 숟가락을 얹은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정치적 호재'에 국제관계가 박살이 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던 민주당은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되먹지도 않은 슬로건으로 크게 한 몫 잡으려 안달이 나 있었다.
이것의 단적인 예로 민주당 소속의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이 있다. 서 구청장은 명동 길거리에 '노 재팬' 깃발을 내걸었는데, 일본인이 많이 찾는―사실상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명동에 피 같은 세금을 들여 깃발을 내걸고 '노 재팬 특수'를 누리려고 하는 꼴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일본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는 순수한 애국의 마음으로 시작한 '노 재팬'은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총, 각종 진보주의 반일주의 집단과 결탁하여 혐오스런 '정치 퍼포먼스'로 변질되었고 "동참하지 않는 자는 친일 매국노다!"라는 강제적 민중검열로 타락하고야 말았다.
■ 날이면 날마다 돌아오는... '북한-민주당' 합창단의 죽창가 어게인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22년 10월, '노 재팬'으로 재미를 봤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느닷 없이 "극단적 친일 행위"를 운운하며 또다시 국민 여론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10월 07일
이재명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
이재명 "일본의 군사대국화 떠받치는 훈련... 정부 사과하고 다시는 한미일 훈련 안 한다 약속해야"
이는 지난 9월말 미국의 핵추진 전략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함'이 부산항에 입항함에 따라 실시된 한미 연합해상훈련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포함하여 실시한 한미일 연합 대잠훈련에 대한 비판이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연합훈련에 왜 '정식 군대도 아닌' 일본의 자위대를 포함시켜 '독도가 있는 동해상'에서 훈련을 하느냐며 명백한 친일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월 10일
이재명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와 욱일이가 한반도에 다시 걸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재명 "여전히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 일본의 자위대와 독도 근처에서 실전 훈련"
이재명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일본과 미국만을 위한 것...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는 행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본의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내걸고 '독도 근처'에서 훈련을 실시했다며 이로 인해 일본군이 다시금 한반도에 진주하는 상상이 현실화 될 수 있다며 앞뒤 사리도 맞지 않은 억지 주장을 반복했다.
따지고 보면 해당 훈련은 독도보다 일본 영토에 더 가까운 해상에서 실시됐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일본에서 대한민국 해군이 일본을 침공해 태극기를 내걸고 행패를 부릴 것이라는 망상에 기반한 억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 별다른 사고 없이 내뱉는 '친일 몰이'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10월 10일
안호영 "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 독도 인근 바다에서 훈련? 국민 설득할 수 없어"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역시 브리핑을 통해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은 일본에 대한 '매달리기 외교'의 연장선이라며 '독도 주변'에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전개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은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며 비판했다. 5년간 집권하며 단 한 번도 독도에 상륙하지 않았던 분들이 이렇게나 독도를 사랑하고 애지중지 했다는 사실에 이마를 탁 치고야 말았다. '노 재팬' 광풍에 편승해 온갖 꿀을 빨면서도 독도를 한 번 가지 않은 자들이 이제와서 독도 타령에 몰두한다는 게 너무나도 의도가 뻔하지 않는가.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 침탈 야욕을 거두지 않은 일본에게 명확한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독도에 직접 상륙하여 독도경비대를 위로하기도 했는데... 아차!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그때는 방문을 비판하고, 지금은 독도가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해서 '친일파'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니. 민주당의 '내로남불' 행태와 모순으로 분칠한 언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10월 10일
권성동 "민주당 위기 때마다 '반일 선동'이라는 '정치적 마약'에 의지"
권성동 "(이재명) 자신의 죄악을 향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는 심산"
권성동 "(이재명) 피의자가 될 바에야 선동꾼이 낫다는 심보"
◎10월 11일
대통령실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은 문재인 정부 때 한미일 국방장관들이 약속한 사항"
대통령실 "공해상에서 한 연합훈련에 '친일 프레임'이 끼어들 수 있나... 굉장히 의아"
더불어민주당의 '친일' 공세에 여당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라디오에서 해당 훈련은 문재인 정부 당시 한미일 국방장관 간에 맺은 약속에 근거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대변인은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조금도 빈틈을 만들지 않는 게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웃 국가와 협력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인식을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에 더 나아가 3년 만에 다시 시작된 '죽창가' 릴레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사법 리스크'를 희석시키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깔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반일' '노 재팬'이라는 꿀단지를 꺼내왔던 민주당의 전례 상 이번 역시 똑같은 정치적 저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10월 11일
이재명 "위기를 핑계로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자충수 중단해야"
이재명 "윤석열 정부가 일본 자위대를 독도 근해로 불러들여... 국방 참사이자 안보 자해 행위"
이재명 "대한민국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한다는 시그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일 한미일 합동 훈련은 '안보 자해 행위'이자 일본의 재침 야욕을 뒷받침 하는 것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그 누구도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주를 용인하겠다고 말한 자가 없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며 망상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이번 훈련을 계기로 하여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를 재침할 수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우리 국민의 DNA에 자리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이 대표는 이날 '긴급 안보대책회의'를 열고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무산시키기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핵심 가치를 함께 하는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가 힘을 합쳐 훈련을 했더니 그에 대응하는 '긴급 안보대책회의'를 야당 총수가 개최 한 것이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내며 과거 주사파 논란이 일었던 이인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여 '외교안보대책기구'도 출범시켰다.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대북 훈련을 하면 '친일파'라면서, 이를 분쇄하고 저지하기 위한 대책기구를 출범 시키는 자기네들은 그럼 '친 무엇'인지,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10월 19일
북한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침략 국가 일본에게 재침의 발판을 놓아줬다"
북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일본에게 발판 놓아주는 윤석열 역적 패당... 참으로 가련하고 어리석어"
북한은 19일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외세의 힘을 빌어서라도 우리 공화국을 압살해 보려는 윤석열의 전쟁광증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라며 비난의 날을 세웠다. 북한은 일본이 오랜 기간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을 꿈꿔왔다고 주장하며 "그 야망이 반공화국 대결에 환장해 외세와 결탁한 윤석열 역적 패당 덕에 본격적인 실현 단계에 들어섰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또한 "일본이 집요하게 영토 강탈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는 독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훈련이 실시됐음을 지적했는데, 어째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주장이다. 마치 지령이라도 떨어진 듯 북한과 더불어민주당의 논조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일사분란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위기와 미중 패권 갈등으로 인하여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속에 잠겨 있다. 엄중한 현실에 국가 간 관계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 편과 그렇지 않은 네 편으로 갈라져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정치에 눈이 멀어 일본을 무조건적 악마로 규정하고 말도 섞지 말고 손도 잡지 말라고 억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견 일본을 혐오하고 대결의 대상으로 규정 지은 듯 보이는 더불어민주당 또한 '한일의원연맹'과 같은 행사에서 보면 하하 호호 웃고 떠들고 껴안고 할 거 다 하는 게 사실이다. '욱일기' 운운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해도 '한일의원연맹' 총회에서 일본 의원들과 깔깔 웃고 떠드는 마당인데 '친일'이니 '노 재팬'이니 하는 주장이 순수하게 들릴 리가 없다.
정작 5년간 압도적 의석을 점하며 국가 권력을 독점했던 더불어민주당은 한일 간 현안을 해결하기는 커녕 오로지 악화 일로를 걷게 하여 정치적 재료로 써먹고야 말았다.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한사코 이빨로만 정의를 연주하는 동안 갈등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떠안았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났고, 한일 무역갈등의 경제적 피해는 국민의 지갑을 덮쳤는데 정의로운 민주당 의원님들은 한일 갈등을 써먹어 초선 재선 삼선 선수 늘리는 데만 혈안이다.
정치적 이득을 보기 위해 '죽창가 어게인'을 꿈꾸고 있다는 걸 어떤 국민이 모르겠는가. 2019년 7월 '노 재팬'의 광기가 끝나고 이제서야 다시금 한일 양국 국민 간 교류가 재개된 시점에서 또다시 위기 탈출을 위해 '반일 프레임'을 들고 나오는 민주당의 저열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과거 행보를 보면 그저 생존하는 데 급급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취해온 사람이니 빈곤한 상상력은 어쩔 도리가 없다만, 얼마나 국민을 개돼지로 알길래 '노 재팬' 카드를 또 꺼내 든 것인지 헤아릴 수 없이 참담한 마음 뿐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