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16. 2022

천년을 이어온 부적면 부인리 부인당제

- 정월대보름, 유교와 무속이 만나는 '부인리당제'에서 한반도 운세 조망

설이 집안 잔치라면 대보름은 동네잔치다. 코로나로 올해 논산 정월대보름 행사가 전멸하다시피한 상황에서도 부적면 부인2리는 북적였다. 천년을 이어 6·25 인공 동란 때도 멈추지 않았던 부인당제를 속행하기 위해서다. 


논산전통두레풍물보존회 주시준 회장이 지신밟기 후 사당 마당으로~~


당산나무가 있는 사당에서 마지막 한바탕

“물럿거라” 낮에는 두레풍물이 동네한바퀴 돌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마을에도 풍물 다루는 주민이 몇 있긴 하지만 풍물패로 성립 어려운 지 오래다. 올해도 논산전통두레풍물보존회 주시준 회장팀이 원정 왔다. 부적면장도 동참한 가운데 지신(地神)을 밟았고, 밟은 만큼 고샅길 골목골목이 한껏 들떠올랐다. 밤이면 당산에 가서 당제를 올린다. 조령부인을 신으로 모시고 올리는 제사 ‘부인당제’다. 8시쯤 노인회장이 제관이 되어서 집례한 다음, 동네 세대수에 맞추어 50여 차례 소제를 올렸다. 사당의 바깥 마당 장작불은 9시까지 타올랐다. 


부적의 부인당제는 천년째라니 이리 장구한 역사와 전통의 실천도 드물 것 같다. 천년 전이라면 고려 태조때다. 후백제와 일전을 치루기 위해 논산까지 내려온 왕건은 불안했다. 불안은 꿈으로 이어졌다. “서까래 나무 세 개를 짊어지고 철관을 쓰고 바다에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의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요란한 꿈”을 꾸었다. 해몽을 위하여 인근에서 유명하다는 무당을 직접 찾아갔다. 혼자 있던 딸이 악몽이라 예단하자, 왕건 일행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발길을 돌렸다. 늦게 귀가하여 이 말을 들은 무당은 황급히 왕건 행렬을 따라잡았다. “나무 세 개는 임금 왕(王)자”라면서 해몽을 뒤집었다. 


그 자신감으로 왕건은 출정했고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 무녀가 고마웠다. 시골 노파에 불과했던 노무에게  조영부인(窕英夫人)이라는 봉작을 주고 일대의 땅을 모두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그 할머니가 죽은 뒤 후손이 없어 근방의 동민들이 부인당이란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고, 그게 천년 제사라고 전한다. 부적면의 첫 자인 ‘부인처면’이고 ‘제전(祭田)’으로 불린 내력이다. 


부인2리 이름은 지밭이다. 근래 젊은 귀촌인 서동석 씨가 이장이 되면서 <지밭역사연구회>를 만들었다. 주민 9인의 연구 결과가 나왔고, 그걸 동네돈으로 해서 책으로 엮어냈다. 2020년 12월 14일, 논산부인당제가 논산시향토문화유적 제46호로 지정되는 전초 작업이었다. 



제전(祭田)→지전→지밭(지밧). 충청도에서 제사는 지사로 발음되듯, 지밭이나 제전은 부인당 제사를 위한 위토(位土)다. 왕건이 하사한 땅 제전은 현재의 부인리에 국한되지 않았다. 현재는 까뭉개져서 평지가 되었지만, 윗뜸이라는 지명처럼 언덕배기였던 여기 지밭에서부터 등불이 비치는 곳까지 미친다는 광역이었다. 그 북단이 광석면 왕전리(旺田) 왕밭이다. 


크게 보아 왕전리와  부인리는 한동네였다. 왕덕들 끼고 흐르던 왕덕천을 받아들인 노성천이 ‘지밭(祭田)’ 한복판을 가로지르면서 북=왕전리 남=부인리로 갈라치기 당하였다. 한겨울 노성천 얼음은 갈라져야 했다. 얼음낚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1년 동안 상가집도 못가던 제관의 목욕재계를 위해서였다. 정월대보름, 그들은 그렇게 지성으로 치성했다. 


가가호호 복 빌면서 대보름날 추억소환


기자는 길찾기에는 웬만큼 자신 있다. 밤 8시에 시작한다고 해서 그 시간대에 지밭마을을 향했다. 그 동안 수없이 통과했던 그 시골길, 그런데 밤길인지라 갑자기 자신 없어져서 내비를 켰다. 유일하게 검색되는 #부인리 누르니 노성천 한복판을 점지해준다. 오히려 내비가 무서워져서 끈 다음에 칠흑 같은 벌판 천지사방 둘러보니, 한군데서 요원의 불길이다.  



정월대보름 쥐불급은 아니고 동네행사때 크게 지피는 마당불이었다. 아직은 추운 날씨, 불 주변에는 동네아저씨들 삼삼오오고 텐트 안에는 동네아줌마들 내외하듯 모여 있다. 먹거리는 텐트 안에 있지만, 새빨간 불 속에는 은박지 입은 고구마들 숨어 있다. 


사당 안은 단출했다. 원래 신이 내려온다는 밤 12시부터 시작했다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앞당겨 시작하는 등 상당 부분이 현대화, 단순화 추세다. 올해 제관은 정계홍 노인회장(79세), 제주 김복동(56세), 동영상 촬영하는 박종익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장뿐. 천년이 흐르는 동안 사당은 소멸했고, 시에서 다시 지어주었다는 사당은 하꼬방처럼 비좁다. 소제는 문 열고 밖으로 나와 진행했는데, 동네 이장과 주민 한둘 들락날락하는 데도 비좁아 보인다. 소제 의식은 기본 원형을 유지하려 했다. 예전에는 집 식구들 포함 몇 백 장 되는 소제를 다 써서 그 많은 소원들 고하고 일일이 불 붙여 올려보내느라 새벽 다 돼서야 끝났다고 한다. 



최근 세대주 수에 맞춘 50여 장 소제는, 그래도 한 시간여 걸렸다. 노인회장은 처음에는 무릎 꿇고 집례하였지만 주변 권유로 쪼그리고서 하다가, 이어 보조의자가 등장하면서 진도가 좀 나가는 듯했다. 그렇지만 벌판 바람에 촛불이 꺼지는 사달이 벌어지곤 한다. 바람과 함께 입장한 정인수 동네주민이 반쯤 탄 소지를 이어받고, 제관은 그 잔불에 새 소지를 점화하면서 소제는 윈윈,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적혀 있는 이름을 부르면서도 혹간 “누구지?” 하며 갸우뚱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귀농 귀촌하는 경우도 있어서 한동네인데도 정보에 어두운 현실의 반영 같았다. ‘대통령’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60번째 소제는 모두 일어나 하늘 높이 띄워보내니, 시침은 9시다.  


밖에서 남아 기다린 주민은 고령층 20여 명이다. 음복하고 정담 나누는 곳은 텐트이지만 아직도 열기 가득한 장작 불가에는 예전 대보름 이야기 한가득이다. 팽이 만들 때는 물기 많은 소나무가 손쉬운데, 톱질해 놓은 거 깎기 어려워서 일단 긴 나무 밑둥가리를 낫으로 깎은 다음 그 위 잘라내는 톱질은 맨 나중 공정! 연 이야기로 이어진다. 방패에 그림 그리는 예술 행위부터 상대편 연줄 끈기 위해 쇠절구통에다가 유리 갈고 밥풀 메겨 실에 착착 매기게 하는 고도의 기술, 불이 솜으로 해서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한창 날던 연만 똑 떨어져 나가게 하는 절단술과 액땜연의 추억. 저수지가 가깝고 물 많은 동네라서 썰매 잘 나가게 만든 다음, 철푸대기 앉아서도 타지만 어정쩡하게 일어나 속도를 내면서 싱싱 타던 이야기, 다섯 겹 회푸대 찢어서 딱지 두툼하게 만들고.... 이야기꽃에 밤 샐 태세다. 이장이 나서서 조명 조정하는 동안 동네분들 불가로 모이라 하여 단체인증샷 찰칵!



매번 역사의 분수령이었던 황산벌 사람들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 행사는 이제 점차로 사그라드는 불꽃 같다. 인터넷상 떠 있는 대보름 전국 명소는 10여 곳. 그 중 부인당제는 ‘안동’ 도산부인당제와 ‘논산’ 부인당제뿐이다. 여자가 무시받던 시대, 논산땅 촌노가 어느 날 갑자기 수훈갑 부인으로 격상되었다. 


정월 대보름날 풍습 중에 용알뜨기가 있다. 부인들이 닭 울 때 기다렸다 앞 다투어 우물물 긷던 풍속으로, 집안에 복 들여오는 것이므로 복물퍼오기, 새알뜨기라고도 한다. 평범한 샘물이 용물로 변하면서 ‘개천에서 용’ 난다. 조영부인은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다. 그 비결은 ‘긍정의 힘’이었다. 길몽으로 뒤바꿔 해석해낸 지혜와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 반대도 못잖다. 후백제 일으킨 견훤 출생 신화는 토룡(土龍)으로 쪼글아들었다. 말이 토룡이지, 지렁이다. 이리도 폄하된 것은, 결국 그가 승자 아닌 패자였기 때문이다.  


승자 왕건의 논산유적지는 초포교, 왕전리, 부인당, 어린사(탑정호), 개태사 이렇게 다섯 곳이다. 왕건은 연산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고 그 자리에 개태사를 세운다. 5대 유적지는 각기 사연이 있다. 왕건은 이름 모를 시골 노파의 응원메시지에 힘을 얻어, 도선국사로 하여금 부처에게 적군을 물리쳐 줄 것을 기도하게 하였다. 어디선가 병사들이 나타나 후백제군을 물리쳤다. 그들이 나타난 산을 천호산(天護山)이라 이름지었고 그 천호리에 국립대사찰 개태사를 세웠다.


소제 돕다가 본인 이름이 나오자 넙죽 절하는 정하는 정인수 주민


이런 흐름 속에서 조영부인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어떠해야 할까? 여기서도 양극의 관점이 존재한다. 본인은 용이 되었지만, 본인이 속했던 후백제는 지렁이가 되었다. 승자 독식의 역사와 기록이 반복될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예측불허다. 올해 당제에서 제관이 올린 첫 소제는 대통령이었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최악이라 할 만큼 혼전양상이다. 변호사와 검사, 남·녀·노·소 갈등, 손바닥 王자, 최순실 후속 무속 논란, 논산고향과 싸드, 안동출신과 육사....  엎치락뒤치락 이파전은 논산에도 불이 붙어서 여야 맞불 난타전중이다. 

바람이 심해 촛불로 불 붙이기 어렵자 소제 윈윈 릴레이로 순항~~

보름달은 꽉 찼고 조만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흐름에서 우리 앞에는 OX 택일 선택지가 놓여 있다. 신라가 외세까지 끌어들여 삼국통일한 게 잘 한 거냐, 못한 짓이냐? 궁예의 부하 왕건의 고려창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역사는 흐르고 흘러와 바야흐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왕을 내 손으로 뽑는 시대다. 이번 선거를 지역 중심으로 볼 것인가? 대국적으로 볼 것인가? “각자의 선택과 관점에는 정답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데 생각이 미치는 것은, 천년 전 황산벌 부인리가 역사를 가르는 분수령이어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이 좀 뭐라 한들 어때? OK~? 코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