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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an 27. 2024

치앙마이, 너와 나의 치유

치유라 쓰고 휴전이라 읽는다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 말에 떠나 9일간의 치앙마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3주가 되었다. 그동안 아이는 졸업을 했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싶었지만 기운이 없었다. 많이 아팠던 우리의 마음이 싹 치유되길 기대하기에 9일은 너무 짧은 것을 알지만, 아직 풀지 못한 고민들은 너무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치앙마이의 추억은 아름답게 남기고 싶다.




쥐가 무서워

나는 지독한 쥐 트라우마가 있다. 10살 때였다. 함박눈을 맞으며 동생과 등교하던 길이었다. 발목까지 쌓인 눈을 꾹 밟자 뭔가 느낌이 달랐다. 돌돌 말은 목장갑 같은 걸 밟은 느낌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통통한 쥐가 죽어 있었다. 그 길로 학교까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희미하게 남은 기억에는 신발주머니를 휘두르며 소리 지르며 바람같이 달리는 나와 영문도 모른 채 같이 뛰던 동생이 있다.


동남아를 좋아하고 자주 갔지만, 한 번도 쥐 걱정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쥐가 많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눈에 띈 적도 없었다. 작년에 다낭 여행을 준비하다 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쥐 목격 글들을 보게 되었고, 바로 여행을 취소했다. 그리고 첫 동남아 여행이다. 태국은 그래도 낫겠지만, 많이 있다고는 한다.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으니 이겨내야 한다. 나는 엄마 아이가!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해 호텔 픽업 기사님을 만나 이동하는 길, 활기찬 야외 식당들이 눈에 띈다. 침 흘리며 보다 자연스레 시선을 옮기자 하수구에 퉁퉁한 뭔가 움직이다. 악!!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안겨버렸다. 평소 쥐를 무서워하는 엄마를 우스워하는 아이는 밖에 보지 말라고 어른스럽게 얘기한다. 여행 처음부터 쥐를 봤는데 계속 보면 어떡하지? 살짝 걱정이 된다.


그러나, 치앙마이의 거리는 깨끗했고 그 뒤로 길에서 살아있는 놈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나처럼 쥐를 무서워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우리의 치앙마이 집, 알린타 리트리트

쇼핑을 하면 그것들은 그대로 나의 짐이기에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많이 먹지도(아니 식당에 오래 있지도) 못해 식비도 적게 들 것이다. 주로 호텔에 있을 것이고 아픈 마음을 치유하려고 가는 것이니 호텔은 좋은 데로 잡아야겠다. 그리고 밝은 햇살 속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1층으로 고르자.

즉, 치앙마이 숙소로 비싼 풀빌라를 골랐다는 말이다. 아이의 우울정도를 낮추려 떠나는 건데 답답한 건물 안에 있을 수 없었다. 다녀와 모든 소비를 줄여야 할 만큼 부담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힘들 때 그 안에서의 따뜻한 기억들을 떠올리면 조금은 마음이 녹는다.


특히, 아침이 참 좋았다. 여기서도 아이는 늦잠을 잤고, 나는 오롯이 혼자 아침을 즐겼다. 신선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따뜻한 햇살도 즐기고 책도 읽었다.




호텔 내 스파는 꼭 해보라는 평이 있어 아이와 마사지를 받았는데 마사지가 끝날 때 즈음 아이를 맡으신 분께서 나에게 아이 허리가 많이 틀어져있다고 걱정스레 말씀해 주신다. 지금이라도 자세를 똑바로 하고 병원에 데려가봐야 할 것 같다 하신다. 우울증과 등교 거부로 보낸 그 시기는 후유증을 많이 남겼다. 왕창 썩어버린 이에 떨어진 시력, 계속해서 해야 하는 정신과 상담과 진료 그리고 이젠 허리까지, 서울에 두고 온 걱정거리들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그래도, 모른 채 하지 않고 말씀 주신 마사지사 님께 정말 감사했다.


아침마다 요가 혹은 싱잉볼 명상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몸이 안 좋아 참여 못하다가 마지막에 하루씩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미리 챙겨 온 운동복을 입고 수줍게 들어서자 반가운 분이 계신다. 요가 선생님이 바로 아이를 마사지해 주셨던 그분이다. 다른 분들이 오기 전까지 아이 건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마르고 작지만, 군살 없이 탄탄한 몸과 인자한 눈빛, 차분한 말투로 꽤 멋진 카리스마를 갖고 계시던 그분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랑 둘이 왔지만 주로 혼자 움직이던 나, 사춘기 아이와의 힘듦이 느껴지시던 건지 그저 눈인사 만으로도 따뜻한 안부가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시던 그분, 언젠가 또다시 뵙고 싶다.


이 날을 계기로, 나는 요가를 시작했다.



잊지 못할 카운트다운

5,4,3,2,1, Happy New Year!!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새해를 맞는 기쁨을 알려 주고 싶었다. 매년 이 시간은 늘 푹 자고 있었는데 이 날 만큼은 달랐다. 12월 31일에 묵는 호텔 투숙객은 갈라 디너가 필수였고 이렇게 우리는 갈라 디너와 함께 새해를 맞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너무 늦게 시작했고 갈라쇼가 정말 재미없었다. 지루한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는 3시간 넘게 계속되었고, 추위에 점점 자리를 뜨는 손님들과 지쳐가는 연주자들로 그리 신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이는 식사 후 춥다고 들어가고 나도 혼자 연주를 좀 즐기다 방에 들어가 쉬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 조금 전에 다시 나가 디제이의 외침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그 순간은 조금 신나긴 했다. 호텔에서 나눠준 피리를 힘차게 불며 즐거워하던 아이, 우리의 2024년도 그때 그 순간처럼 즐거우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코끼리는 타는 게 아니에요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나 보다. 6년 전, 방콕에서 아이는 코끼리를 타고 싶다 졸랐고 그땐 정말 환전한 돈이 모자라서 태워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든 돈을 찾아 태워줄 걸 그랬나 싶게 아이는 두고두고 아쉬워했었다. 그러나 이젠 코끼리를 타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어떤 걸 하면 아이와 즐거울까? 하고 찾아보니 정글에서 코끼리를 돌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서커스에서 공연을 하거나 관광지에서 관광객을 태우며 학대받던 코끼리들을 구조하여 자연 속에서 살게 하고 돌보는 단체가 있었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코끼리에게 자연식을 주고 목욕도 시켜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정이다.


한 시간 반 여를 차를 타고 한국의 시골과 비슷한 곳에 도착하자, 정말 많은 코끼리들이 있었다. 방콕의 한 공연장에서의 코끼리 우리에선 냄새가 많이 났는데, 자연이라 그런지 정말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과 수박, 바나나를 코끼리에게 먹여 주고 영양제를 빚어 코끼리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오랜만에 아이의 환히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 일상

코끼리 돌보기 체험 외 우리는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시간 맞춰 움직이는 게 힘들기도 했고 쉬러 온 것이니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다 하루에 한 번씩 나가 밥을 먹고 간단한 먹거리를 사 오곤 했다. 아이는 주로 방에 있고 싶어 했기에 나 혼자 편의점도 가고, 약국도 가고 커피숍도 다녀왔는데 한적한 시골길 같은 치앙마이의 길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맞아, 나 걷는 거 좋아했지.


물론, 편안한 시간만 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건만, 방에 딸린 수영장에 휴대폰을 빠뜨려 추운 저녁 날씨에 머리까지 입수하여 휴대폰을 주어오느라 나는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버렸고 이삼일을 고열로 고생하기도 했다. 어찌나 전기 매트가 그립던지... 치앙마이의 1월의 밤은 춥다. 덜덜 떨면서도 다음에 가게 되면 꼭 캠핑용 매트를 챙겨야지, 캠핑을 하니 이런 장점이 있군 하며 자화자찬하는 내 모습에 웃기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음식이다. 매 끼니 밥으로 고생시키던 아이가 맞나 싶게 태국 음식은 아이 입맛에 찰떡이었고, 식사할 때마다 양껏 먹는 아이 모습을 보는 게 뿌듯했다. 잘 먹음으로 거칠어진 피부도, 흐려진 눈빛도 까진 손톱도 다 건강하게 돌아오면 좋겠다. 특히 아이는 태국 카레에 꽂혀서 거의 매 끼니 카레를 먹었다. 일본에선 그렇게 돈가스만 먹어서 같이 돈가스를 먹느라 힘들었는데, 태국 식당은 카레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같이 팔기에 불만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키며 오랜만에 식도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착한 가격은 보너스라는 사실!



안녕, 치앙마이

이번 여행 좋았니?

응, 완전 힐링!


그래, 그럼 되었다. 오래 자리를 비워 걱정되는 회사 일도 서울의 추위도 그 말 한마디에 모두 사라졌다. 이번 여행은 100점 만점에 100점, 네가 좋았고 힐링이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사실, 나도 많이 쉬고 따뜻한 태국 사람들의 인심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여행이 즐겁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으나 공항에서 별 것도 아닌 일로 아이와 다시 틀어졌고, 우리는 따로따로 앉아 서울까지 오게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 아이는 잘못했음을 인정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아 나를 다스리느라 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 사건을 글로 남겨야 할지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 속상한 맘에 밤 비행기에서 뜬 눈으로 오느라 고생 좀 했다.


집에 와 잠시 눈을 붙인 뒤 차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고 고양이를 태워 중성화 수술까지 하고 오니 바로 일상적응이 되어 버렸다.




아이의 입학 준비, 회사에서의 신년 계획과 목표 설정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아픈 기억은 잠시 넣어 두고, 방학이니 등교 거부 스트레스는 잊고, 내 할 일을 잘해야 할 때다.


치앙마이는 우리에게 잠시 휴식을 주었고, 그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많이 다니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또 떠날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다음엔 마음과 몸이 좀 더 건강한 상태로 가고 싶다.


안녕, 치앙마이.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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