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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Nov 11. 2024

시간 부자 모녀

학업숙려제, 현재를 소중하게

최후의 보루였던, 학업 숙려제에 들어간 지 2주째이다.

작년 그 힘든 상황에서도 숙려제만큼은 피했지만, 이번엔 부모, 학교, 아이 모두 동의하에 숙려제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업숙려제는 학업을 계속하기 힘든 학생들에게 최대 7주 동안 등교 없이 전문 상담 등을 제공하여 적응력을 키워 궁극적으론 학업 중단을 예방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제도의 목적과 다르게 아예 학교를 포기하게 될까 가장 뒤로 미루고 싶은 제도이다.


이제 아이는 매달 가는 병원과 매일 먹어야 하는 약에 대해선 협조를 잘하는 편이다. 이렇게까지 오기 힘들었지만, 아무리 졸려도 약 먹고 자자~ 하면 벌떡 일어나 약을 먹는 모습이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다만, 상담만큼은 거부하여 숙려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먼저 얘기를 꺼낸다.


"엄마, 나 숙려제 그거 하면 안 돼? 나도 노력했는데 학교에 있기 너무 힘들고 상담받아서 좋아지면 좋잖아."




나는 너를 이해해

아이의 아침은 규칙적이었다. 이전처럼 늦게 자지 않아 그런지 일찍 일어나 약과 아침을 먹고 개운하게 샤워한 뒤 나와 함께 등교를 했다. 머리에 새집 하나씩 지고 느지막이 오는 아이들도 많은데 아이는 늘 깔끔한 모습으로 제시간에 등교했지만, 학교에 들어가는 뒷모습은 뭔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집에 와 커피도 한 잔 내리고 아침에 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이제 아이의 카톡이 올 시간이다. 이유는 늘 하나. 학교에 있기 힘들다는 것. 시끌벅적한 교실 속 투명인간이 되어 소음과 무관심을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퇴를 시킬 수도 없는 것.


선생님과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 조회 후 조퇴를 시키기로 한 뒤, 며칠을 그렇게 해보았지만 그 마저도 아이는 눈치 보인다며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찾은 방법은 학교 안에 숨는 것이었다.


아이의 긍정적인 면을 높게 보시며 늘 품어주시던 담임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숨으면 여러 선생님들이 찾으러 다니셔야 하고 사고가 나면 선생님 책임이기에 아이의 숙려제에 동의하셨다.


"저 정말 꼬마화가 보내기 싫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께서 너무 힘들어하세요. 마음이 안 좋습니다."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하시고 아이를 보듬어주신 것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아이 학업을 유지하는 게 부모의 욕심이지만, 저는 이제 아이 마음이 이해가 돼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요. 얼마 전까진 간식으로라도 아이들의 호감을 사려했지만, 지금은 제가 사준다 해도 싫다고 해요. 아이도 마음을 닫은 것 같아요. 그동안 거부하던 상담을 이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니, 상담받으며 아이 마음을 좀 쉬게 하고 싶습니다."


백수 모녀, 시간 부자

학교에 가지 않자 아이는 눈에 띄게 안정적이 되어갔다. 구에서 운영하는 '학교 밖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매주 1회 상담을 받는데 선생님들이 잘해주셔서 그런지 그곳도 기분 좋게 다녀왔다. 이번 주부터는 그림 동아리에 참여할 예정이다. 상담을 가지 않으면 한 주가 통째로 결석 처리 되기에 아직까지 거부는 없다. 상황이 닥쳤을 때 하기 싫으면 거부하는 성향은 어릴 때부터 있었기에 늘 아이 기분을 살피는 편이다.


나도 퇴사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시험이 끝나 이제야 낮에 온전히 시간이 난다. 아이도 집에 있겠다 우린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복잡한 주말이 아닌 한산한 평일에 셀프 세차를 하고, 아이와 좀 무리해서 멀리 산책도 나간다. 아이가 다시 학교에 갈 때까지,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할 때까지 우린 이 시간을 맘껏 즐길 것이다.


마침, 아이가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에 또 가고 싶다고 한다. 작년에 추워서 이제 겨울 캠핑 가기 싫다더니 슬슬 생각이 나나보다. 경치가 좋아 주말 예약이 힘든 곳이지만, 평일엔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텅 비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주에 떠난다.


오랜만에 딸과의 캠핑이 기대된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 모든 엄마들의 바람 아닐까. 나도 막연히 어릴 때부터 영특한 아이만 믿고 잘할 거라 믿었다. 학구열에 불타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본인이 하고픈 걸 찾을 수 있을 만큼은 해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아이의 학업이 중요하지 않다. 요즘은 아이들이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자라기 힘들다. 수많은 SNS의 자극, 온라인 세상에서의 익명의 폭력, 진짜 친구를 사귀기 힘든 환경 등.. 약한 아이들이 버티기가 힘들다. 이럴 때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가정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고 당당하게 지낼 수 있게 품어주는 것이다.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가 아닌, 언제나 나를 믿고 따뜻한 인생선배로서 의지하고 싶은 엄마.

그게 내가 돼야 할 모습이다. 


우리는 시간 부자, 어떻게 재밌게 보내야 할지 숨은 나의 추진력이 또 발동한다.

안 아프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사진: UnsplashYaniv Kno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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