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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Oct 31. 2024

등교거부, 미치지 않고 살아내기

토닥토닥

퇴사 후 갑자기 수험생이 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수험 기간 동안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으나 딸의 등교 거부라는 가장 큰 짐을 쉽게 내려놓을 순 없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힘들겠다 싶어 그저 감싸주고 싶지만 의무 교육을 걷어차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딜레마이다. 결석, 조퇴, 무단 조퇴의 반복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갈등으로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가끔은 웃으며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얼마나 힘들겠니

아이는 중학교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1년간의 또래와의 공백은 편안한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기에 장애물이 되었고 처음에 호감을 보이던 친구들마저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아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무시해.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면 조용해져. 초등학교 때 친하던 애들도 지금 나와 눈을 안 마주쳐."


쉬는 시간마다 안 오면 오히려 이상한 아이의 카톡 메시지다. 대놓고 괴롭힘을 당한다면 두 팔 걷고 학교에 쫓아라도 가겠지만, 무관심의 공간에서 엄마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안타깝다.


'당장 집에 와. 엄마가 데리러 갈게.'

그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엄마니까 더 그럴 순 없다. 이겨내는 힘이 약한 아이가 조금씩이라도 버티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무관심이 사실은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어주며 설득할 뿐이다. 그러다 수업에 안 들어가면 학교에서 바로 집으로 보내기에 조퇴라는 결론은 똑같지만...


담임 선생님과도 일단 유급을 막기 위해 조퇴가 잦아도 등교하는데 목적을 두기로 합의한 상태이다. 작년에도 비슷한 시기에 졸업을 목표로 하루하루 날짜를 세었던 것 같은데 그날이 다시 돌아왔다. 반갑지 않은 Again.


그래도 희망을 본다

기분 좋게 등교를 시켜도 한두 시간쯤 지나면 쏟아지는 아이의 카톡과 학교의 연락을 받다 보면 작년의 기억과 함께 답답하고 뜨거운 김이 가슴으로 훅 몰아친다. 간신히 누르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고개를 들며 희망 없는 미래가 펼쳐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씩씩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늙어서도 애를 챙겨야 하는 게 아닐까'


도리도리.

1년 전에 비하면 아이 상태는 많이 맑아졌고, 학교 적응이 힘든 것만 빼면 집에서는 잘 지내니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데, 난 또 그깟 연락에 투덜거리고 있구나 하며 부정 속에서 걸어 나온다.


그렇다. 아이는 정말 많이 밝아졌다. 논리 없는 말대꾸나 고집도 많이 줄었고, 갑자기 할머니를 멀리 해서 곤란했는데, 이제 다시 할머니와 스킨십도 많이 한다. 


감사해야 하는 상황임을 되뇌고 또 되뇐다. 그러나 긍정으로 오기까지 참 험난하다. 솔직히 학교에도 죄송하고 엄마께도 죄송하고 늘 죄송한 사람이 되어 실컷 쫄아들었는데 설득 안 되는 아이의 거친 표현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진다. 그래도 난 엄마니까 버텨내야 한다.


내년엔 더 좋아질까

오늘은 어제와 같았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1년을 통째로 보면 확실히 좋아졌기에 내년을 기대해 본다. 부디, 아이와 맘이 맞는 단 한 명의 친구를 반에서 만날 수 있기를... 그래서 아이도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고 나도 부담에서 벗어나 다시 일하는 삶을 병행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내년에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실망은 이미 익숙해졌으니 괜찮다. 다만, 희망은 버리지 않으련다. 이제 만 2년이 되어가는 아이의 힘듦이 지나간 기억 속 한 점으로 남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올해를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 아이가 안전한 집에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안으며 웃는 지금의 시간을 감사하며 기다린다.


 



아이들의 등교 거부는 우리 집 만의 일이 아니다. 내가 그 삶 속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처럼 불우한 환경의 일부가 아닌, 일반적인 가정에서도 또래와의 관계를 힘들어하며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 갓 십여 년 산 아이들이 삶에 대한 면역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힘듦을 숨는 것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수 권의 책과 여러 사례들을 통해 부족하나마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지금 중요한 건 '아이와의 관계'라는 것. 정말 이 놈의 자식!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잘못된 것은 가르쳐주되 아이가 내 품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아이를 품어야 한다. 안전한 집에서만큼은 활짝 웃을 수 있도록. 그 웃음이 용기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같은 문제로 힘드신 부모님들께>

힘드시죠? 내 자식 욕하는 것 같아 주위에 속 터놓고 말할 수도 없고, 자칫하다간 아이 잘못 키운 걸로 보일까 걱정도 되죠. 전 너무 외롭고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우리가 인내한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숭숭 빠진 머리, 뒤집어진 얼굴, 훅 늙어버린 나에게 좋은 음식도 먹여주고 달래주며 하루하루 잘 버텨보아요. 우리도 행복할 자격 있으니까요. 



사진: UnsplashIvan Alek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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