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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ug 19. 2024

요즘 살만하니?

그렇다면 옛다 고민!

유난히 긴 장마, 가실 줄 모르는 폭염에도 이번 여름은 평온했다. 퇴사 후 불안함은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로 하면서 해결했고, 아이의 방학으로 등교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도 한몫했다. 아이도 예전보다 잘 웃고 잘 먹으며, 무엇보다 일본어와 수영을 열심히 하며 점점 밝아지고 있다.


'나 이제 좀 편해진 것 같은데?'

감히 이런 생각을 했다.

또 삶을 만만히 봤다.




전학시켜 줘

개학 후 첫 등교일, 머리 물기만 털고 썬그림만 바른 말끔한 아이는 늦지 않게 등교했다. 풀메이크업 하겠다고 늦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화장도 한 때'라는 육아 선배님 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다. 오랜만에 주인이 비운 방을 깨끗하게 치우니(정리는 금물, 티 안 나게 하는 게 중요) 개운하다.


스스로에 대한 미움, 세상에 대한 반항으로 우울감에 아팠던 아이와 우리 가족의 삶을 돌아보니 순간은 괴로웠지만 결론은 좋아지고 있음에 희망이 생긴다.


잠깐 눈물도 찔끔하고 꽤 상쾌한 아침이었는데.. 카톡이 울린다.


"엄마, 나 전학시켜 줘. 여기 도저히 못 다니겠어."


응?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 아이들이 투명인간 취급하고 너무 못되어 같이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근처 중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고집을 피운다.


"딸아. 힘든 건 이해하지만 그건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단다."


같은 학구 내에서는 이사를 해도 전학이 힘들며, 멀쩡한 집 두고 이사하기도 무리임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래도 말이 안 통해 대답 안 하기 시전으로 일단락.


하교 후 전학 얘기를 또 꺼낼까 걱정되었으나 잊은 건지 별 말이 없어 다행이다. 그러나 수영장 가는 길에 또 고집을 피운다. 그게 그렇게 쉬우면, 나도 해주고 싶다고.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심란하니 가져간 책의 글자는 둥둥 떠다닐 뿐이다. 수업이 끝나면 2차전이 시작될 텐데 끝까지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스스로 다짐만 해본다.


"엄마! 나 배고파"

수영 수업이 재밌었는지 아이의 기분은 리셋되고 장난도 친다. 그 기세를 몰아 좋아하는 초밥을 맛있게 먹고, 오는 길에 살짝 운을 떼어 보았다.


"네가 전학을 가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엄마는 정말 도와주고 싶어. 그러나 엄마가 할 수 없는 일도 있더라. 수업받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근처는 전학이 안돼. 그렇다고 할머니 두고 멀리 이사 갈 수도 없잖아."


"엄마, 내가 아깐 친구들 다니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고집 폈던 것 같아. 이젠 괜찮아."


오잉. 많이 컸다 내 딸.

그리고 우린 주말 동안 행복했다.



됐고, 전학시켜 줘

일찍 준비한 아이를 기분 좋게 학교에 데려다주고 에어컨 청소 하느라 부지런한 아침, 또 카톡이 울린다.


"전학시켜 줘. 나 진짜 못 견딜 것 같아. 이 근처 아니어도 좋아. 제발 전학시켜 줘."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친구들과 관계가 소원해 보인다. 친구들이 우리 아이를 싫어하는 건지, 아이가 싫어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다.


방학이 시작될 무렵, 파자마 파티 한다고 같은 반 아이들 셋이 와서 자고 갔었다. 내 동의도 없이 해수욕 계획까지 세워버린 터라 여중생 넷을 바다에 데려가느라 고생했는데.. 그 애들은 친구가 아닌 걸까?


깔깔대고 웃고, 친구집에서 자고, 다음 날 친구의 엄마와 놀러 가는 정도면 친구 아닌가? 깊게 물어보면 밀어내니 혼자 궁금하고 답답할 뿐이다. 담임 선생님과 상의해 보겠다 하니 펄쩍 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큰 비용을 지출해 이사를 해야 하고 단독주택인 우리 집은 텅 비어 버린다. 초등학교 전학은 근처라 가볍게 이사하고 왔다 갔다 하며 지냈지만 중학교는 그럴 수 없다. 현실적인 문제만으로도 전학은 무리다. 집을 구하고 이사하고, 전학 절차를 밟으며 드는 시간적 손해도 발목을 잡는다.


그럼, 끝까지 안된다 고수하면 부작용이 없을까? 지독한 등교 거부를 겪어서 그런지 작은 신호도 조심스럽다. 비용과 시간적인 손해가 크지만, 무리한다면 전학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조율할 만한 상태인 건지 가늠이 안 된다.


일단, 기분 좋게 마무리된 줄 알았던 전학 문제가 다시 떠오른 이상 가볍게 지나갈 것 같지는 않다. 아이의 속마음을 들어보고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도 이야기해 주며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아주 잠깐 편했다. (눈물 좀 닦고)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나도 아이와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고2 때 키 순서대로 앉다 보니 모르는 아이와 짝이 되었다. 늘 혼자 있는 그 아이가 신경 쓰여 내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자 했고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OO가 그러는데, 네가 내 욕했다며? 네가 우리 집 세 산다고 했다며? 하며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끝에 팔짱 끼고 서서 쳐다보고 있던 그 애가 잊히지 않는다.

'네가 한 말이잖아. 난 듣기만 했잖아.'

지금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함이 후회된다.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그 아이 집 앞에서 전화를 했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고 나는 학교에 가기 힘들어졌다. 부모님께 전학시켜 달라고 졸랐다. 우리 부모님은 당시 너무 무서웠기에 안된다는 윽박 몇 번으로 전학은 포기했지만, 그 뒤로 꽤 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고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 전학을 시켜주셨더라면...

지금은 알겠다. 전학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설명이라도 해주셨으면 지난 시간 부모님 원망은 안 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난 아이에게 다 설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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