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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10. 2023

널 가둔 게 아니야. 엄마를 용서해 줘

등교 거부, 치료 시작

아이가 입원한 지 5일째이다. 이 글을 남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정신의학과 보호병동에 입원한 아이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여러 힌트와 상담 조언에도 시간이 없다며 우리 아이는 문제없다며 귀를 닫아버린 나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한결 편안해진 아이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 본다. 아직도 아이의 아픈 마음을 어디서부터 치료해야 할지, 어떻게 치료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할 부모님들이 많을 것이기에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2023.09.06

일주일 풀근무를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다행히 1시간 단위로 시간차를 쓸 수 있기에 알뜰하게 쪼개어 아이와 관련된 일을 보고 있다. 이 날도 드디어 병원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라 새벽출근을 하여 오전 근무 후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진료는 기본 한 달은 기다려야 하기에 제때 진료를 받기 어렵다. 다행히 위클래스 선생님이 알아봐 주신 덕분에 대기 후 당일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을 알게 되었다. (혹시 비슷한 경우, 거주하는 지역구의 정신건강센터에 문의하면 정보를 주시니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진료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 전날 밤에도, 아침에도 집에서 두 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아이는 편안하게 알았다 했었다. 그래서 우선 믿고 급하다던 게임머니도 충전해 주었었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동안 아이와 연락이 되질 않는다. 굳게 닫힌 방문에 할머니도 손 쓸 방법이 없고, 일반 전화와 보이스톡을 번갈아 하며 아이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잠에서 덜 깬 목소리의 아이는 아침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아이의 이런 반응은 충분히 익숙하지만, 오늘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꽤 힘든 시간이 예상된다.


똑똑. 똑똑.


여러 번 노크하니 드디어 반응을 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이는 피곤해서 나가기 싫다는 생각만으로 내 기준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가며 병원에 가길 거부했다. 최대한 좋은 말로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대기 가능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다 물거품이다. 게다가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앞으로 계속 휴가를 내어 진료를 가야 할 텐데 이 날 내버린 4시간의 휴가가 너무 아깝다. 문 앞에서 설득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꼭 간다고 약속 후 게임머니를 받아간 아이가 괘씸해진다. 이게 도대체 몇 번 째인가. 아픈 건 인정하지만, 이런 식으로 날 이용하는 건 충분히 잘못된 행동이다. 그래서 엄마는 널 믿고 충전해 주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에 게임 고객센터에 부정 충전으로 글을 남기면 네 계정은 정지될지도 모른다는 강수를 던졌다. 강수로 표현했지만, 사실 협박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 분 뒤… 우리 집엔 경찰관들과 119 대원들, 사복을 입으신 분들로 꽉 차게 되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경찰관 님은 아이는 긴급입원이 필요한 상태로 보인다며 나에게 동의를 구하셨고,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강제 입원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다행히 너무 감사하게도 119 대원과 경찰관들이 아이를 오랜 시간 설득해 주셨고, 응급입원을 자의로 하게 되었다. 응급 입원은 경찰과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최대 72시간 입원이 가능하다. 그것 또한 거부하면 정말 강제로 입원하게 되는데, 그분들의 노력덕에 아이는 스스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다만, 나와 같은 차에 타고 싶지는 않다고 하여 아이는 구급차에, 나는 경찰차를 타고 따로 갔다. 난생처음 타 본 경찰차, 참던 울음이 터졌지만 크게 울 수도 없었다. 말없이 앞에 계신 경찰분께서 뒷자리 에어컨을 켜 주신다.


도착한 병원은 생각보다 깔끔한 건물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친절하고 밝으신 의료진들을 보자 과정은 험난했지만, 드디어 아이가 전문 의료진을 만나게 되니 꼭 안 좋은 상황만은 아닐 거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본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나와 일차 면담, 아이와 이차 면담 후 다시 돌아오셔서 아이는 입원이 필요한 상태라 72시간 응급입원이 가능하며 주치의 선생님께서 추가 입원이 필요하다 판단하시면 전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하신다. 물론, 자리가 있고 원한다면 본원에서 치료도 가능하나 최대 2-3주만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안전하고 어두운 본인의 벙커에서 강제로 꺼내진 아이는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크게 동요하는 듯 보였다. 나와 분리된 상태이기에 아이를 볼 순 없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칼로 도려내지는 것 같았다. 신을 믿진 않지만, 그 순간 신이 있다면 왜 우리에게, 안 그래도 외로운 가족 구성이어도 힘내서 열심히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흥분한 아이는 안정제 투여가 필요했고, 그전에 잠깐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응급입원이 결정된 건, 사실 아이 행동이 원인이었지만 아이의 눈빛엔 나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그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리 알아채질 못해 여기까지 왔어. 우리 병원에 오기 쉽지 않았잖아. 의사 선생님 만나고 힘든 거 말씀드리면 금세 좋아질 거야.”


뻔한 말만 남기고 다시 아이와 분리되었다. 아이가 병실로 가고 난 뒤 남은 수속 및 필요한 물품을 사 오느라 저녁이 다 돼서야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멀진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동네의 지하철역은 참 낯설고 불편하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애가 타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도 지금은 너무 힘들어 한 마디도 할 수 없으니 나중에 얘기하자며 잠시 멍하게 있었다.


어떻게든 가정 안에서 해결해보려 했었다. 아이와 여행을 가고, 아이가 원하던 고양이를 키우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 원래의 밝던 모습으로 돌아와 움직여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의지와 다르게 이미 진행 중인 마음의 병(아직 진단을 받지 않아 정확한 병명은 모릅니다.)은 아이를 붙잡고 또 붙잡았다. 힘든 아이는 게임과 휴대폰에 점점 더 중독되어 갔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애타는 내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다. 나도 내 힘으로 안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무지했던 내가 받아야 할 벌이라 생각한다. 이젠 안전한 병원에 있고, 전문 의료진들이 아이를 보살피고 있으니 죄책감은 내려두고 아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지 궁리해야 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마음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응급병동은 가끔 휴대폰을 쓸 수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느냐, 엄마 때문 아니냐며 나를 원망하는 아이의 메시지에 명쾌한 답장을 할 수도 없고 눈물만 하염없이 흐를 뿐이다.




2023.09.07

다음 날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이 일으켜지질 않는다. 울다 지쳐 잔 얼굴은 봐줄 수도 없게 부었으며 온몸이 맞은 듯이 아프다. 몸살이 안 난 게 용했지. 아깝지만 휴가를 내었다. 이 상태로 회사에 가는 것도 민폐이다. 그리고 이제 일은 벌어졌고, 이 상황에서 아이가 최대한 덜 상처받고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돌아와서 치료를 계속할 수 있게 내가 힘을 내야 한다. 돈 아까워 생각도 해보질 않았던 수액을 맞으러 내과에 갔다. 힘든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몸상태가 좋지 않아 수액을 맞고 싶다는 나에게 바늘 꼽는 김에 알러지 검사를 해봐라, 마늘 주사를 추가하면 더 좋다 등.. 장사를 해대던 병원에 불쾌했지만 그걸 표현할 기운도 없다. 어서 눕고 싶다.


한숨 자고 싶었지만, 꼬셔서 추가한 마늘 주사의 마늘 냄새가 올라와 토할 것만 같아 다신 이 병원에 오지 않겠다며 주사액이 다 들어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는 추가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본원엔 자리가 없으니 인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밖에 갈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 급하게 검색하니 후기도 찾기 어렵고, 오래된 병원홈페이지는 모바일에서 정보를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 전문병원이라 아이에게 맞는 치료가 가능할지도 알 수 없다. 심란하던 중 다시 연락이 와 본원에 자리가 나서 병동만 이동 후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신다. 일단 다행이다.


3일 후 퇴원만 기다리던 아이는, 추가 입원 소식에 또 한 번 크게 흥분했고 나에게 분노의 카톡을 계속 보내기 시작했다. 내가 독해져야 할 시점이다. 마음이 약해져 제대로 된 검사 한 번도 못 받은 상태에서 원망에 가득 찬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좋은 말로 계속 아이를 설득하고 달래었다.


2023.09.08

힘든 와중에도 밥벌이는 중요하다. 다행히 이런 상황에서도 버티는 건, 아직까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쌓은 신뢰 덕분인지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주고 있다. 이 날도 병동을 옮기기 위한 수속이 필요하여 오후 휴가를 내었다. 전 날 보다 나아진 몸상태지만, 퉁퉁 부은 눈과 얼굴은 참 봐주기가 힘들다. 그래도 새벽에 집을 나서 출근하는 길, 아이에게 카톡이 온다.


“엄마 미안해. 사랑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감동의 눈물이 흘러야 하는 순간, 왜 철렁하고 느낌이 싸했을까. 엄마도 사랑하다며 힘들지만 잘 이겨내 보자고 답장을 하자, 역시 예상했던 톡이 이어진다. 추가입원을 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수를 쓴 거였고, 미안하지만 너무나 허술하여 날 움직이진 못했다.


직계가족 한 명의 동의가 더 필요했기에 엄마와 나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아이가 병동을 옮기는 그 순간에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며 다른 방에 잠시 들어가 있게 했다. 아기처럼 우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마음이 미어진다. 하지만, 엄마가 옆에서 너무 우시기에 난 오히려 담담한 척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주치의 선생님과 아이가 자라온 과정에 대해 면담을 하는데, 그동안엔 몰랐는데 우리는 참 외로운 사람들이었구나 싶다. “아이가 엄마랑 할머니 말고 잘 따르는 어른이 있나요? 아이와 친하게 가깝게 왕래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요?” “아니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의 나는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꽤 피곤함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여행도 아이와 둘이 다니거나, 친구나 동생 모녀 정도 가끔 함께했을 뿐이었다. 너무 외롭게 키웠구나 싶다.


보호병동은 응급병동에 비해 꽤 까다롭다. 휴대폰이 반입 안되어 공중전화를 써야 한다. 미리 충전해 둔 공중전화카드와 나와 할머니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남겨두고 왔다.


아이가 없는 집이 낯설다. 그전엔 믿을만한 누군가가 이틀만이라도 아이를 데리고 여행이라도 한 번 가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와 떨어지고 나니 내 삶에 큰 뭔가가 빠져버린 느낌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맘 아파하던 그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엄마… 엄마 미안해, 고양이와 강아지는 다 잘 있어? 이름 많이 불러줘야 해”


너무나 순해진 아이의 목소리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우리 꼭 잘 이겨내 보자며, 금방 다시 만나자며 아이와 약속을 했다.





너무나 아픈 상황이지만, 지금 아이는 안전하다. 아이의 방은 안전하지 못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우울의 늪에 점점 빠져들어갔고, 의지는 점점 흐려져갔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치료의 길에 들어섰음에 감사하기로 한다. 아이가 어떤 진단을 받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급하게 읽은 책들에서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는, 우울증과 양극성 기분장애 등이 유력하다. 어떤 것이 되었던 아이의 불안과 무기력, 우울감이 꽤 깊기에 치료 과정은 꽤 장기전이 될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정말 힘을 내야 한다. 원망, 자책, 미안함은 다 내려놓고 내 삶을 유지하면서 아이와 함께 헤쳐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법륜스님께서 “아픈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리고 그런 아이를 둔 엄마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치료가 길어질 수도 있고, 아이가 학교를 그만둘 수도 있고, 나아졌다가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여러 부정적인 상황들을 아예 배제할 순 없지만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니 행복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이가 다시 방에 갇히지 않도록, 앞으로의 삶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그리고, 내 삶도 놓지 않을 것이다. 몇 달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아이는 치료를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좀 전에 온 전화..

“엄마, 또 울고 있었어? (아니) ㅋㅋㅋ 잘했어. 나 여기서 친구 사귀었다. 그리고 칫솔모가 이상해서 잇몸에서 피가 나. 칫솔 좀 다시 보내줘. (오 그래? 머리도 감았어?) 응! (불편하거나 필요한 건 없어?) 없어. “


고맙다, 우리 딸. 잘 버티고 있구나. 너무 보고 싶다.


(커버 사진: 친구가 아이 주라며 보내준 초콜릿을 들고 병원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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