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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04. 2023

너에게 가장 쉬운 존재, 엄마

등교 거부, 우울증에 기만당한 느낌

며칠 새 또 많은 일을 겪고 오늘은 꼭 생각 정리를 해야겠다며 퇴근하자마자 아이패드를 열었다. 그러나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잘 쓰는 것보다 솔직하게 내 감정과 고민을 남기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바보같이 아이한테 휘둘리고 병원도 못 데려가면서 징징대는 엄마로 비칠까 겁이 나는 걸까? 아니면, 아이가 욕먹을까 두려운 걸까?




2023.08.31

미용실에 다녀와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온갖 물건을 집어던진 뒤 다시 방에 파묻힌 아이가 솔직히 밉기도 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우울증은 성인과 다르게 공격적인 양상이 두드러지고, 본인이 노력하고 싶어도 움직여지질 않아 일상생활이 힘든다는 걸 이젠 안다. 솔직히 아이 마음 깊은 곳 우울한 감정이 어디서 온 건지, 어떤 감정인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관련 책들과 상담 선생님들을 통해 예상되는 여러 원인들이 ‘엄마와의 관계’로 좁혀졌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예뻐하고 늘 아이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전문가들이 그렇다 하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회사 근처 정신의학과를 예약했다. 사실, 임신 기간과 이혼 전까지 예쁜 아이와 별개로 나는 불행했었다. 오히려 배를 쓰다듬으며, 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위로를 구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아서 아이가 아픈 걸까? 아픈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떠오른다.




나의 상담과 별개로 방에 숨은 아이를 다시 꺼내야 한다. 옳은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원하는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 오사카 여행에서 밤낮이 바뀐 아이는 거의 반 조는 상태로 점심을 먹으러 나왔었다. 그러던 중 펫샵 쇼윈도에서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고 해맑게 웃으며 우리도 키우자며 오랜만에 떼를 썼었다. 반려동물을 들이는 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없고, 키우는 강아지가 질투할까 걱정도 되고 무엇보다 내가 하나 더 키울 자신이 없어 엄마 핑계를 대며 딱 거절했었다. 고양이를 데려오면 아이가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엄마에게 조심히 말을 꺼내니 엄마께선 너무나 흔쾌히 승낙하셨다.


똑똑 “꼬마화가, 우리 고양이 키울까? 할머니가 키워도 된대”


답이 없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문이 열린다. 아이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어디서 어떤 고양이를 데려 올 거냐며 수다쟁이가 되었다. 시간이 이미 10시가 넘었는데 당장 데려오면 안 되냐고 성화다. 정말 효과가 있던 걸까? 그리고 기분이 나아진 건지 먼저 학교 얘기를 꺼낸다.


“엄마, 우리 학교 언제부터 가?”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가자.”

“오! 그럼 이번주는 안 가도 돼?”

“그래, 이번주는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가자”


아이 방문은 다시 열렸고, 말 수도 늘었다. 금요일 저녁 마음에 둔 고양이를 데리러 갈 땐 먼저 나갈 준비까지 마쳤었다. 방배동 샵까지 가는 길에 아이는 아프기 전처럼 수다스럽고 밝았다. 그리고 우리는 초(새 식구 냥이)를 만났다. 사랑스러움 그 자체로 세상에 나온 존재처럼 너무 예뻤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귀여웠다. 그렇게 초는 우리 식구가 되고 아이는 방문을 활짝 열고 초의 밥과 배변을 챙기며 그렇게 오랜만에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2023.09.03

드디어 월요일이다. 또다시 새벽에 일어나 샤워와 화장을 마치고, 안 쓴 것처럼 욕실 물기를 닦았다. 7시가 되어 아이를 깨우려 잠시 대기 중, 아이가 먼저 나와 계단을 저벅저벅 내려간다.


“엄마! 이것 좀 봐! 초 여기까지 올라왔어!!”


아직 두 달된 아기라 못 올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새 커서 원형 계단 절반까지 올라와있었다. 자다 깨서 초가 보고 싶어 후다닥 나간 아이, 오늘 기분 괜찮아 보여 다행이다.

슬쩍 ‘곧 나가려면 아침 먹어야지~‘ 하면서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걸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자 어디를 가냐고 반문한다.


“아.. 우리 월요일에 학교 가기로 했잖아.”

“내가 왜 가야 하는데? 왜 엄마 마음대로 정해? (우리 약속했잖아) 엄마는 그게 문제야. 너무 잘 믿어서 그렇게 사는 거야.”

“학교에 왜 가기 싫은 건데? 다니던 학교에 가기 힘든 건 엄마도 이해해서 전학 가는 거잖아”

“누가 그렇게까지 해달래? 학교에 가면 뭐가 좋은데? 난 지금 재밌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데? 그림도 그리고 놀고.”

“(말문이 막혀 잠시 머뭇거리자) 네가 그림 그리는 거 엄마도 좋아. 그러나 네가 커서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려면 배워…”

“더듬거릴 거면 입 열지 마!”


엄마한테 말 함부로 하는 건 용납 못하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니 전처럼 욕을 하거나 하대하진 않았지만, 이런 대화는 정말 진이 빠진다. 이 외에도 휴대폰과 아이패드만 있으면 집 나가서 살 수 있다는 등 협박조의 말들을 쏘아댔고 내 마음속에선 폭풍이 쳤지만, 겉으론 담담하게 대했다. 그리고, 10분간 생각할 시간을 주었으나 달라진 게 없어 한 마디만 하고 출근을 했다.


“후회할 수 있으니 기회를 줄게. 지금 준비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는 그냥 회사에 갈 거야. 그리고 너에 대한 지원은 이제 끊을 거야”

“그러든지 말든지”


이제 눈물도 나지 않는다. 우울증상인 건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쉬워진 건가? 몹시 기만당한 기분이다. 멍하니 운전하여 회사에 도착하니 반듯하게 정리된 내 자리가 반겨준다. 출퇴근은 힘들지만, 회사에 오면 그래도 오롯이 나로 살 수 있어 숨통이 틔인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가는 길 아이에게 카톡이 온다.


“엄마 나 내일 학교 갈 거야”

“진짜?”

“그 대신 현질시켜줘”


그래. 원하는 게 있었구나. 순간 아이가 낮 동안 혹시 반성을 했나? 기대했던 내가 안쓰러워졌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새로운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아직 졸업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워(물론 최악은 항상 대비하고 있다)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무조건 후불이다. 오늘 덜컥 결제해 주면 내일 아침 “그러게 누가 믿으래? 엄마는 너무 믿어서 문제야” 이런 소리를 또 들을 수 있다.

희망과 실망을 반복해서 겪었더니 사실 크게 기대는 안 된다. 아이를 치료하려면 우선 나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남은 결석 가능일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대가 안 된다고 썼지만, 나는 또 내일 아침 휴가를 내었다. 이렇게 또 믿어 본다.



요즘 너무 힘들기에 이런 신파가 없다. 그러나 솔직하게 남기는 것은 혹시나 아이의 등교 거부 조짐으로 검색해서 오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람도 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조금 더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애매한 나이인 초등 고학년쯤 되면 꽤 골치가 아프게 된다.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이 모인 카페에서 많은 분들이 이런 아픔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인 건 아이들이 우울감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게 등교 거부라는 것, 그래서 미리 알고 있다면 등교 거부 조짐이 있을 때, 아직 일상생활을 할 때 얼른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상에만 집중한 채 아이가 아프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었다. 원래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꽤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며, 딸을 잘 알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증상이 나타나면 그 뒤론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그러니 부디 아이가 학교를 거부한다면, 혼내기 전에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일이 더 커지지 않게 대처하시길 바랄 뿐이다.


나는 장기전에 들어갔다. 만에 하나 유급이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닫힌 마음을 열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할머니에게 함부로 하는 건 단호하게 막을 것이다. 그로 인해 아이가 악을 쓰고 공격해도,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뜨기로 다짐한다. 쥐어 짤 힘도 없지만, 그래도 힘을 내야지.


나에게 더 힐링이 되는 초… 우리 가족 오래오래 즐겁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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