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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ug 31. 2023

이제는 우울증 이야기

등교 거부, 이제야 깨닫다

갑작스러운 전학 준비는 쉽지 않았다. 일주일 여행을 다녀온 덕에 빠듯해진 휴가를 시간 단위로 쪼개 쓰며 집 계약, 무더위 속 이사, 전입 신고, 다니던 학교 정리 등을 해치웠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안 해도 될 일들이었기에 마음도 몸도 무거웠지만 다시 시작할 아이 생각을 하며 이겨냈다. 전학 전 주말, 학교에 가지고 갈 소지품들을 거의 새로 다 샀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길 바라며...


노트, 필기구, 양치용품, 실내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의 물건을 살 때 잠시 이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익숙한 이 일이 왜 그렇게 반갑고 설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가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원점이다. 다음 날 학교 가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저녁에 일어난 아이가 걱정되지만 다행인 건 아침엔 깨있으니 피곤해서 조퇴를 하더라도 일단 학교에 갈 순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2023.08.28

샤워 후 축축한 욕실은 아이의 편안한 등교의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에 새벽에 먼저 샤워 후 물기를 모두 닦고 선풍기까지 틀어 뽀송뽀송한 욕실을 준비했다. 약속한 7시가 되어 조심스레 아침 식사로 뭘 먹을래? 했더니 그 시간에 돈가스를 시켜 달랜다. 문을 연 곳이 있더라도 배달시키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편의점 돈가스라도 사기 위해 급하게 빗 속을 뛰어 나갔다. 그러나 이른 아침에 돈가스 도시락을 파는 편의점을 찾긴 쉽지 않았다. 삼각김밥은 어떻겠냐며 전화하며 네 번째 편의점에 들어 서자 정말 딱 한 개 남은 돈가스가 눈에 띄었다. 비에 젖는지도 모른 채 뛰어와 전자레인지에 돌렸으나 밤새 냉장고에 있던 돈가스는 축 쳐져 아이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급하게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봤으나 애꿎은 시간만 가고 돈가스는 점점 돌이 되어갔다.


다행히 빵을 대충 먹고 아이는 씻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들리는 물소리인가. 그렇게 깔끔 떨던 아이가 3주 만에 샤워를 했다. 벗어놓은 잠옷은 세탁해도 쿰쿰한 냄새가 날 정도였으니 꽤 힘든 시간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8시 반까지 가려면 얼른 나가야 하는데 마무리 준비를 하던 아이는 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간신히 달래어 현관 근처까지 왔으나 이젠 못 가겠다고 한다. 이 얼굴로 어떻게 가냐는 것이다.


아이 기분을 살펴가며 완벽하게 준비를 했었다. 이제 저 문만 나가면 되는데 도저히 이 얼굴로 갈 수가 없다며 주저앉아 버리는 아이가 순간 실망스러웠다. 병원 가던 날 로벅스 충전해 준다고 했을 때 후다닥 씻고 거울도 안 보고 따라나서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며 쟤가 나를 갖고 노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화도 올라왔다. 그 와중에 아이는 또 나한테 모든 책임을 돌린다. 다 엄마 때문이며, 엄마의 얼굴, 목소리, 피부톤도 다 보기 싫다며 가슴을 후벼 판다. 날 닮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괴롭고 실망감에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부서져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죽어버리겠다며 악을 쓰는 아이를 슬프게 쳐다보다 119에 전화를 걸었다.


강제로라도 병원 진료를 봐야 할 상태이다. 자해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아이 입에서 그 말이 나왔으니 병원에 데려갈 핑계가 생겼다. 설득하고 달래서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119 대원들과 경찰분 들이 오셨다. 몇 분은 아이를 설득하고 몇 분은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어떤 걸 원하냐 해서, 근처 대학병원에 어린이 클리닉이 있는데 아이가 거부하는 데다 예약을 해도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기에 응급실을 통해 진료를 보고 싶다고 전했다.


119 대원 분들은 정말 친절하게 아이를 설득하셨으나 자리를 오래 비우실 수 없기에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셨고, 경찰분 들이 요청해 주셔서 자살상담센터 상담 선생님 두 분이 집으로 방문하셨다. 늘 세 식구만 있던 집에 사람들이 계속 오니 우리 강아지만 신이 났다. 선생님들께서도 아이가 거부하여 방에 들어가서 상담을 하실 순 없었다. 다만, 아이의 상태를 직접 보고 나를 통해 증상을 들으시곤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해 주셨다.


아이는 지금 깊은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어른이나 아이나 우울증에 걸리면 위생 관념이 사라져 씻지 않게 되는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씻을 힘조차도, 의지도 없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몸에서 나는 냄새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노숙하시는 분들 옆을 지날 때 훅 나는 냄새에 숨을 참으며 저 냄새를 어떻게 버틸까 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겠다.


여하튼, 아이는 많이 아픈 상태로 보이며 아이가 계속 거부하면 부모라도 정신의학과에 가서 상담을 통해 아이를 어떻게 케어할지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하시곤 돌아가셨다.


늦은 출근을 해서 억지로 집 일을 잊으며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퇴근 후, 자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다 기억을 할 순 없지만, 네 맘을 몰라주고 화낸 것과 나는 너보다 힘이 센 어른인데 팔을 세게 잡았던 것 등 기억나는 것들을 말하며 다 미안하다고, 엄마를 이제 용서해 달라고 사과했다. 그게 100% 진심이던 아니던, 일단 아이의 분노는 나를 향해 있기에 아이 마음을 돌려야 했다. 무표정으로 나가라고 하긴 하지만, 좀 누그러진 모습이다. 우리는 늦게 돈가스를 시켜 먹으며 다음 날은 꼭 학교에 가기로 했다.


2023.08.29

전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모두 마치고 욕실을 뽀송하게 만들어 둔 뒤 잠긴 아이 방문을 두드렸다. 어제 조금 순해진 표정으로 오늘은 가겠다던 아이는 머리를 자른 지 오래되어서 또 못 가겠다고 한다. 며칠 전 미용실 예약한다고 하니 싫다고 하지 않았냐 하니 그래도 했었어야 한다며 버틴다. 일단 등교는 포기했다. 그리고 가장 일찍 여는 미용실을 찾았고, 이왕이면 좋은 데로 가면 기분이 더 나아질까 싶어 비싼 곳으로 예약했다. 어제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 비에 가는 길이 험하지만, 자신이 한 말이라 그런지 순순히 따라나선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친절하고 예쁜 디자이너 선생님이 아이를 반갑게 맞아 주셨지만, 아이는 미용실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초점이 없고 상대방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눈빛에 아이 상태의 심각성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래도 일단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이고 새로운 학교에 가서 친구를 단 한 명이라도 사귄다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있고, 오랜만에 아이와의 외출에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커트만 하려고 갔는데 미용실에선 펌을 해야 한다 했고, 나는 전일 휴가로 변경했다. 아이가 머리를 하는 동안 깨진 아이의 휴대폰 액정커버도 교체하고 휴대폰으로 업무를 보며 아이의 기분 상태를 살폈다. 시간이 길어지자 피곤한 아이는 꾸벅꾸벅 자기 시작했고 마무리할 때는 앉은 채로 깊은 잠에 빠져 내가 손으로 아이 턱을 받치고 간신히 마무리를 했다. 오랜만에 만져 보는 아이의 작은 턱,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는 왜 자기가 그렇게 싫을까…


차를 가져오는 사이 잠이 깬 아이는, 분명 머리가 맘에 든다고 했었는데 차에 타자 머리가 맘에 안 든다며 저 딴 데를 데려갔다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가 온갖 물건을 던지는 소리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저 문을 열면 저 물건들에 내가 맞을 것 같고, 아이를 자극시킬 것만 같아 나라도 침착하자 하며 아이가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는 잠에 빠졌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가 다시 원점, 아니 더 후퇴한 것 같기에 많이 힘이 빠진다. 그러나 그 보다 심각한 건 아이의 상태이다. 사실 우울증에 대해 나는 거의 무지했다. 이제야 이런저런 자료들과 책을 통해 내가 모르고 살았을 뿐, 사실 우울증은 우리 사회에 꽤 심각하고 깊게 퍼져 있었다는 것과 그걸로 아픈 환자들과 가족들도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가족이 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가 등교 거부를 하기 전,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을 4월에 오사카에 여행을 갔었다. 즐겁게 간 여행이었지만, 트러블은 모두 아이의 외모 불만에서 시작되었고 그땐 그저 예뻐지고 싶은 사춘기 증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입국 심사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내려야 했을 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을 때도 아이가 우울증일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짜증이 조금 올라왔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아이가 일상생활을 할 때 조짐을 알아채고 상담이라도 받았었더라면… 후회만 들뿐이다.


등교 거부는 하나의 증상일 뿐, 진정한 원인은 아이의 깊은 우울감이라는 걸 이젠 안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엄마와 한 잔 하며 앞으로 아이의 치료에 전념하자고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가 우리를 믿어야 하고, 마음을 열어야 하니 아이가 하는 말은 그저 본인을 방어하기 위한 우울증 증상일 뿐이니 마음에 담지 말고 화내지 말기로 했다. 아이의 기분을 올려야 살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고, 나를 따라 병원이라도 가게 나설 것 아닌가.


그러나, 의무교육인 학교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앞으로 남은 등교일은 83일이다. 너무나 아깝지만, 혹시 유급을 하게 돼도 동요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왜냐면, 아이는 새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힘들었지만 욕실에 들어갔고, 깨끗이 씻고 속옷까지 꼼꼼히 챙겨 입었었다. 벗어놓은 옷들을 보며 무지했던 내가 너무 한심스럽고, 아이가 불쌍해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엄마가 옆에서 같이 아파해주셔서 힘이 많이 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기에 외로웠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전문가가 아니라 아이 상태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렇게 심각해질 줄 몰랐고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집 근처에 가까운 어린이 정신의학과를 찾았고, 한 달의 시간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 사이 아이 상태는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미인정 결석일은 늘어나고, 유급에 가까워진다는 게 현실이다. 병원에 가던, 학교에 가던 나 밖에 아이를 움직일 사람은 없는데 등교 문제로 관계가 좋아졌다가도 다시 안 좋아진다. 등교에서라도 해방이 된다면, 이제 공부니 뭐니 이런 건 다 내려놓고 아이만 챙기고 싶은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평가하며 탓하기엔 사실 난 지식이 없다. 그저 몰랐던 게 죄겠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딸이 어느 날 방안에 고립되어 생기를 잃고 세상과 멀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너무 힘든데 현실적인 문제까지 감당하려니 정말 정말 힘들다고 여기서라도 하소연해보고 싶다. 이렇게 힘들 만큼 워킹맘으로서, 모든 혜택을 쏙쏙 피해 갔던 2011년 생 엄마로서, 아이와 여행하며 시간 보내는 걸 그래도 즐겼던 엄마로서  이런 상황은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요즘 힘내란 말이 제일 듣기 싫다. 나도 우울에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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