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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Oct 08. 2023

우울의 늪에서 나오려 노력하는 널 응원해

나아지는 과정

입원 중이던 아이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이것저것 먹고 싶다는 말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었다. 오션뷰 캠핑장은 정말 구하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인천의 글램핑장을 찾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아이 상태가 안 좋으면 취소할 생각으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 다녀왔다. 그만큼 아이가 많이 좋아졌다.



등교 거부, 다시 시작인가

 전학 후, 드디어 등교 거부가 마무리되는 건가 싶었으나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아이는 발가락이 아프다며 결석을 했다. 그리고 6일간의 길고 긴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은 지각, 그다음 날은 또 결석을 했다. 이미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아이의 고집에 카톡과 전화로 도저히 설득이 힘들었다. 다행인 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며 12시 전에 자겠다는 약속과 그다음 날은 약속을 지켰다는 것. 그리고 처음 등교 거부와 다르게 지금은 정말 졸려서 아이 수준의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물러터진 엄마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아이가 한 약속을 믿고 싶다. 아픈 동안은 사실 우리 아이가 맞나 싶었지만, 지금은 분명 내가 알던 내 딸이 맞기에 점점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다행히 처방받은 우울증 약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만, 한 동안은 약을 거부하여 힘들게 먹이고 강도만 다를 뿐 짜증도 여전했다. 약으로 우울감을 조금 낮춰줄 수는 있겠지만, 정작 우울증에서 나아지려면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 스스로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무엇보다 병식 자체가 없었다. 아이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우연히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일러스트 학원, 매일 다닐래

어느 날, 아이는 일러스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으나 학교 앞 미술학원 수업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 유튜브 등을 통해 독학하며 만화 팬아트를 그리던 아이가 독학의 한계를 느꼈는지, 멀어도 좋으니 전문 학원에 가고 싶다고 한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는 건 긍정적이기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다만, 집 근처엔 초등학생이 갈만한 일러스트 학원이 없었고, 입시 미술학원 취미반에서도 초등학생은 받지 않았다. 아이는 언제부터 학원에 갈 수 있는 거냐며 조르기 시작했고, 난 검색어를 바꿔가며 아이가 갈만한 학원을 찾고 또 찾았다. 드디어, 집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딱 맞는 곳을 찾았다.


학원 상담일, 아이는 대화가 통하는 젊고 밝은 선생님들을 만나자 마음을 열었고 모의 수업 후 너무 만족스러워했다. 그렇게 일주일 두 번의 수업을 받게 되었다. 나는 퇴근 후 바로 아이를 데리고 학원에 가 두 시간을 기다려 데려와야 한다. 생각만 해도 힘들지만, 그 시간을 공부와 독서 등으로 활용하면 되니 나에게도 좋다. 마침 추석 연휴 기간에도 수업이 있어 아이는 연휴 동안 계속 수업을 받았고, 점점 눈에 띄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배움의 긍정적인 효과와 밝은 분위기의 환경이 아이 변화에 촉매제가 된 것 같다. 더불어 학원에 오며 가며 함께 있는 둘만의 시간도 우리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이와의 스킨십이 어색해졌는데 이젠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손을 잡아도 뿌리치지 않는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학원을 매일 가고 싶다고 하는 것. 수업료도 수업료지만, 주말까지 일주일 내내 학원에 데려가고 기다려 다시 데려오기엔 나도 좀 무리다. 주말만큼은 나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잘 얘기하여 일주일 세 번으로 합의했다. 학원 끝나고 만나면, 예전처럼 수다쟁이가 되어 배운 것과 칭찬받은 것을 전하느라 바쁜 아이가 너무 예쁘다.


아기 고양이 초의 큰 역할

아이가 한참 우울할 당시, 이미 키우는 반려견이 있어 아이의 소원에도 모른 척했던 아기 고양이를 분양했었다. 이름은 '초'. 아이의 우울증이 나아지는데 초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표정한 예쁜 얼굴로 정말 열심히, 너무나 열심히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 나 조차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아이는 초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한참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나 너무 행복해"


초가 반려견 밍밍이와 잘 지낼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젠 둘은 '질투'를 중심으로 우정 아닌 우정을 쌓고 있다. 식구 중 누구라도 움직이면 둘이 동시에 졸졸졸 따라다니고 누군가 들어오면 문 앞에 나란히 앉아서 반겨준다. '질투'라고 표현한 이유는, 초가 사랑받고 있으면 삐진 눈빛의 밍밍이가 슬금슬금 엉덩이를 들이대며 그 사이를 파고든다. 반대로 밍밍이가 사랑받고 있으면, 초가 조용히 다가와 밍밍이에게 냥펀치를 날리고 도망간다. 한 동안 우리 집 거실을 떠올려 보면, 우울감의 습기로 눅눅한 공기, 소파에서 티비를 보시는 무표정한 엄마와 그 옆에서 하루종일 자던 밍밍이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지금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사람 사는 공간이 떠오른다.


필요 없어진 마스크

마스크는 아이의 피부와 같았다. 마스크 벗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는지 미처 몰랐다. 그러던 아이가 이젠 마스크 없이 외출한다. 슬쩍 꺼냈다가도 이젠 다시 집어넣는다. 등교 거부의 시작이던 외모에 대한 불만, 물론 지금도 무언가 맘에 안 드는 면은 있겠지만 그걸 꺼내서 본인을 괴롭히지 않는 게 가장 큰 변화이다. 또, 아이 이마에 여드름이 많이 올라왔는데, 신경도 안 쓴다. 여드름 하나라도 나면 날 너무 괴롭게 하여 여드름이 참 원망스러웠는데, 최근엔 내가 먼저 약이라도 바르자며 얘기를 꺼낸다. 특별히 못나서가 아니라 바닥을 치는 자존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싫어졌던 그때와 지금은 다르기에 자연스레 외모 스트레스도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아이보다 내가 더 걱정되는 건, 아이의 시력이다. 한쪽은 약시, 다른 한쪽은 매우 낮은 시력으로 안경이 필수지만 너무 거부하여 궁여지책으로 드림렌즈를 사용했었다. 드림렌즈를 끼려면 거울을 봐야 하니 우울증, 외모 불만과 겹쳐 렌즈마저 끼지 않게 되었고, 나는 아이 눈이 더 나빠질까 노심초사할 뿐이었다. 드림렌즈를 안 낀 시간이 길어지자 슬슬 끼기 귀찮아지는 게 보이고, 눈이 안 좋으니 답답함이 느껴져 살짝 말을 꺼내 보았다. 안경을 맞춰 정말 필요할 때만 쓰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알았다고 한다. 안경 얘기만 꺼내도 화내던 아이가 맞나 싶다. 연휴가 끝나는 화요일에 바로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천천히, 하나씩 아이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다시 즐거운 모녀 삼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많이 아팠던 시간이지만 아이도 나에게도 어쩌면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 있겠다.


그리고, 나의 변화

힘든 기간, 물론 옆에서 응원해 준 가족과 지인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지만 좋은 책들을 통해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또 잡았었다. 처음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며, 내가 뭘 잘못했냐며 특정할 수 없는 대상에게 원망도 가져보고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나도 좀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은 현상일 뿐, 그곳을 불행한 곳으로 만드는지 아니면 그 안에서도 긍정적인 지점을 찾을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따르는 걸 깨달았다. 물론, 아이가 불쌍하고 안타까워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하지만 그 안에 갇혀 나를 잃고 내 주변을 잃을 필요는 없었다. 행복은 선택이라고 한다. 그래서 최근 아이의 결석에도 또 시작인가? 싶은 부정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우선은 아이가 나아지고 있고 이젠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방향을 튼다. 그러면 또 정말 괜찮아진다. 아이와 관련 없는 내 개인적인 삶에도, 그렇게 바뀐 삶의 태도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누군가 귀에 박힐 만한 말을 던지면, 이 전엔 그 말을 곱씹으며 점점 더 괴로워졌다면, 이제는 내 맘대로 의도를 해석하지 않고 이전의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훌훌 털어버린다는 거다. 이렇게 나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제 사춘기 초입, 아이를 건강한 어른으로 독립시키기 위해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아직도 사실 조금 불안하긴 하다. 그러나 이번 일로 엄마로서의 체력이 좀 더 강해진 것 같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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