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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Oct 16. 2023

님아 그 버튼을 누르지 마오

그림은 양날의 검

아이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약을 먹어도 3주는 되어야 효과가 있다더니 한 달이 지난 요즘 확실히 평온해 보인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멈춘 그림도 일러스트 학원을 다니며 다시 재미를 붙여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좋은 선생님으로부터의 배움과 칭찬이 아이가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 그림에 빠지는 거 아닌가 싶지만, 아직 우울증 치료 중이기에 성급히 개입하지 않기로 한다. 천천히 아이를 기다려야 할 때다. 그러나 그림이 긍정적인 역할만을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아이가 치료 중인 것을 잘 아는 엄마지만, 아이의 지인인 또래들은 그걸 알 수 없다. 아이의 모든 것인 '그림'에 대해 훈수를 둔다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면 위험하다. 게다가 십 대 초반 아이들의 표현에 배려를 기대하는 것도 욕심이다. 우울증 약 복용 후 한 번도 그 정도까지 화가 오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은 날 아이의 분노 버튼은 눌려지고 폭발했다.




우울증 치료 중인 딸의 엄마로서...

사랑하는 어린 딸이 한 달간 씻지도 않고 어두운 방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사그라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직 어려 병식도 없었고, 그러니 나아야 한다는 의지도 없었다. 길어진 등교 거부와 그로 인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방에 숨었을 뿐인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울이라는 늪이 아이를 집어삼켰다. 아이를 탈출시킬 수 있는 방법은 치료뿐이었다. 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멀쩡해 보이지만, 그것은 약기운과 아이 내면의 피나는 노력일 뿐 아직 아이의 눈빛이 맑아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아이가 평온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배우고 실컷 그리며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게끔 기다리고 있다. 사실 아직도 학교 보낼 때마다 끓어오르는 잔소리를 백번쯤 삼켜야 하고 자기 전 먹이는 약도 아이가 순순히 먹어줄 타이밍을 찾는데 에너지를 꽤 써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찾은 유일한 방법은 기다리는 것이다. 아이만 치료 중인 것이 아닌 나와 엄마의 육아 방식도 치료가 되고 있다. 급하기만 했던 우리는 이제 기다리며,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누가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본다면, 아이에게 절절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등교 거부 초반에 학교를 안 가려 한다는 사실 하나에 매몰되어 아이에게 독한 말과 표현도 많이 했었다. 그로 인해 멀어진 아이의 마음도 우울증과 함께 치료해야 한다. 그건 약으로는 안 된다. 가족이라는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의 마음이 열릴 수 있게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대화를 하던, 훈육을 하던 할 게 아닌가. 그러기 위해 절절매야 한다면, 절절매겠다.


분노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가족들의 노력으로 아이는 많이 밝아지고 있으나 문제는 아이의 상태에 대한 이해가 없는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새 학교 전학 후 새로운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반가워 아이들을 밝게 맞아주고 배웅까지 해 주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뒤 아이는 이제 저 아이들이랑 놀지 않을 거란다. 이유는, 반에 더 그림 잘 그리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거의 신급이며 너는 한참 못 그린다며 그림에 대한 평가를 하며 비교를 했더란다. 어른들의 입장에선 도토리 키재기일 뿐인, 그냥 에피소드겠지만 현재 그림이 전부인 아이에게 그것은 너무 상처가 되었다. 그 외에도 온라인, 친척 간에도 비슷한 일이 있으면 아직 마음의 체력이 약한 아이에겐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 된다. 그래도 분노가 터지진 않았는데 최근 아이의 분노가 터지고야 마는 일이 있었다.


"그러게 좀 잘 그리지 그랬어."

부정적인 피드백을 컴플레인하자 돌아온 이 말 한마디에 아이의 분노 버튼은 눌려졌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약 기운 때문에 그렇게 분노가 올라올 수가 없는데, 그 말이 주는 영향은 아이에게 꽤 컸나 보다. 한 동안 보기 힘들었던 분노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는 시간이 지나 자신의 모습에 또 괴로워했다.


이해가 필요한 마음의 병

아이의 분노에 상처받은 또 다른 아이,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던 내 아이.. 그걸 지켜보고 수습해야 하는 나는 죄인이다. 어른답지 않게 생각하자면, 아니 왜 그런 말을 해서 안 그래도 예민한 아이를 건드나.. 원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민함의 정도는 사람마다 모두 달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우선 내가 할 일은 아이의 분노에 놀랬을 또 다른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


"많이 놀랬지? 물이 100도에서 끓듯이 사람도 누구나 화가 나는 온도가 있어. 꼬마화가는 그 온도가 조금 낮아서 가끔 급하게 끓을 때도 있어. 그래서 주위에서 조금 더 이해하면서 온도가 빨리 높아지지 않게 도와줘야 해. 너도 아직 어려 많이 놀래고 상처받았을 거야. 꼬마 화가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 사과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우선 내가 그 마음 전할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더하지도 빼지 않고 전했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길 바랄 뿐이다.


우울증은 당사자나 가족이 아니면, 그 심각성을 알기 어렵다. 나도 몰랐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이겨내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 이제 고작 반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감히 아는 척을 해 본다.


우울증은 치료와 주변의 이해가 필요한 질환이다. 약의 도움을 받겠지만 본인의 의지와 주변의 이해와 기다림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똑같이 어린아이의 또래들에게 이런 것까지 이해시킬 순 없지만, 혹시 주변에 마음이 아픈 아이가 있다면 조금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얘들아, 그 분노 버튼을 누르지 마오"



아이의 치료와 별개로 나는 '행복'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다. 거기서 배운 걸 실천해 보기 위해 학원에 가는 차 안에서 심드렁하게 앉아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건네어 보았다.


"꼬마화가는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야?"


뭔 소리야? 하고 대답도 하지 않을 걸 기대했지만,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사. 랑. 해"


가슴이 철렁했다. 등교 거부가 시작되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가 힘든 것과 해결해야 할 등교 문제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부딪히지 않으면 다행인 하루하루를 버티며 아이에게 사랑 표현을 할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런 표현이 나올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와중에서도 내 사랑이 그리웠나 보다.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보답으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었다.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행복해"


차오르는 눈물에 머리가 지끈할 정도였다. 누가 보면 문제 있는 아이겠지만 난 아이를 믿는다. 조금 더 기다리고 응원하면 언젠가 아이 내면의 긍정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날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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