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ortrait. 2024년 5월 19일 일요일, 맑음.
광주 순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4주년을 맞았다. 어제였던 18일에 정부 기념식이 열렸는데 그 시각, 나는 새마을호에 몸을 싣고 광주로 내려갔다. 1년 만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 지하철로 문화전당역까지 갔다. 오후 3시 광주독립영화관에서 논픽션 영화 <송암동>이 상영될 예정이어서 표는 미리 예매하고 영화관에 도착해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를 만든 이조훈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있었다. 감독의 말씀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극장을 나와 모텔로 가서 짐을 풀고, 다시 나와 충장로 번화가에서 저녁을 먹고, 금남로로 나왔다. 금남로에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회를 구경하니 꽤 신이 났다. 특히 ‘광주출정가’를 부를 땐 다시 대학 시절도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팔뚝질을 했다.
옛 도청 건물은 복원 공사 중이었다. 가림막에 덮인 건물을 뒤로하고, 분수대가 자리한 광장 한쪽에선 마당극이 펼쳐지고, 또 한쪽에선 젊은 학생들이 사물놀이 연습을 진행하고, 전국에서 답사를 온 학생들이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으며 둥그렇게 둘러앉은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했다. 그래도 광주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내 마음도 뿌듯했다.
광주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이튿날, 오전 7시 반쯤 모텔을 나와 문화전당 쪽 정류장에서 518번 버스를 타고 국립묘지로 향했다. 한 40분 기다려 버스를 탔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강렬했다. 오전 9시쯤 국립묘지에 도착했는데 이곳도 답사를 온 학생들과 금속노조 노조원들로 붐볐다. 난 나 혼자 있겠지 싶었는데 이 사람들도 나처럼 어제 광주에 내려온 것 같았다.
우선 기념품을 사고, 유영봉안소에 가서 희생자분들을 찾아뵀다. 그리고 신묘역을 천천히 둘러보고, 기념탑을 배경으로 셀카를 한 장 찍었다. 그 사진이 마음에 들어 각종 프로필 사진으로 교체했다.
신묘역을 둘러본 후 구묘역으로 이동해 잠시 둘러본 후, 다시 518번 버스를 타고 전남대학교로 갔다. 윤상원 열사 조형물이 있는 공간을 비롯해 천천히 학교를 거닐었는데 이곳에도 국립묘지에서 본 사람들과 마주쳤다. 나와 동선이 같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웃겼다.
전남대학교를 나와 천천히 걸어 광주역까지 갔다. 그래도 열차가 출발할 시간은 조금 남아 느긋하게 서성이다가 12시 11분 용산행 무궁화호를 타고 익산으로 향했다. 익산에서 다시 새마을호로 갈아탄 후 홍성역에서 내려, 이번엔 시내버스를 타고 내포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이렇게 1박 2일의 광주 순례를 무사히 마쳤다.
1년에 한 번, 이렇게 광주를 다녀오는 일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처음의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잡생각을 모두 날려버리고 다시 핵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핵심은 바로 글을 쓰는 것. 나의 글을 쓰는 것. 특히 올해는 어떻게든 광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려고 하기에 이번 순례가 큰 도움이 됐다.
결국, 나는 내가 쓰는 글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치열하게.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그 길을 걸어가자.
사소하고, 하찮은 유혹에 더는 흔들리지 말고 올해 목표로 잡은 작품들을 모두 완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이번 주엔 교육원 연수반이 개강한다. 연수반에서는 합평 과제인 단막극 2편을 써야 한다. 그리고 졸업 영화 시나리오도 6월까진 줄거리를 완성해야 한다. 웹소설도 있고, 기초반에서 썼던 단막극도 수정해야 한다.
쓸 게 정말 많다. 이럴수록 당황하지 말고, 하나씩 해 나가자.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다른 거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을 거다.
오직 졸업 시나리오 집필과 인물 에세이 필름 촬영, 그리고 단막극 집필과 웹소설 집필에만 몰두하자.
이게 광주의 가르침이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