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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Oct 23. 2021

그 섬에 가고 싶다

단돈 1 유로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면? 일견 낚시성 기사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사실이다. 의무적으로 시설을 보수해야 하고, 약정된 기간 동안 실제로 거주해야 하는 등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과장된 보도라고 할 수는 없다.  인구 유출에 따른 불가피한 자구책이라는데, 매물로 나온 지역은 아프리카, 남미, 극지방도 아닌 이태리 시칠리섬 시골마을이다. 영화 '대부'나 '시네마 천국'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휘리릭! 떠오르지 않는가?


서쪽은 지중해, 동남쪽은 이오니아해와 면하고 있는 시칠리는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수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젊은이들이 대처로 빠져나가 쇠락하고 황폐해진 곳도 더러 있지만, 긴 굴곡의 역사와 신화, 예술과 철학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특히 섬의 북동쪽에 있는 에트나 화산은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활화산으로 시칠리의 상징이라 할만하다. 화산의 역사가 자그마치 6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화산 폭발의 첫 목격자는 아마 현생인류가 아닌 호모 에렉투스였을 것이다. 


신화만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었던 먼 옛날,  에트나산은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패한 반인반수 티폰이 갇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분노와 모멸을 삭히지 못해 치를 떨 때마다 용암이 분출한다. 간혹 내 안에 있는 원한도 이게 진짜 원한인지 의심스러운데, 60만 년 동안 식지 않는 저 도저한 분노라니! 패배로 인한 수치심은 또한 얼마나 절절한 것이었을까? 


에트나산에 얽힌 또 한 명의 기인이 있다. 기원전 그리스 사람 엠페도클레스가 바로 그다. '신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당시의 통념으로 볼 때, 그는 헛소리나 하는 미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닌 자연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최초의 자연철학자 이자 시인이었다. 그는 당연히 그 시대와 불화했고 마침내 에트나 산 끓어오르는 분화구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만다. 용암 속으로 뛰어들자마자 그가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이 화산 밖으로 튀어나왔다.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지상에 남겨진 신발 한 짝.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시인이었다. 신발 한 짝의 메타포에 대한 해석은 아직까지 분분하다. 


현지인들은 이 산을 몬지벨로 (Mongibello), 즉 아름다운 산이라 부른다. 직접 가보지 않아 그곳이 얼마큼 아름다운지 알 수 없으나, 간혹 하이네의 시를 읽으면 지나간 청춘에 대한 묘한 상념에 젖어들곤 한다. 


노르웨이 숲에서

가장 큰 전나무를 뽑아

에트나 산 타오르는 분화구에 그것을 찍어

불에 타는 거대한 붓으로 

캄캄한 밤하늘에 쓰리라

아그네시카여! 그대를 사랑해

하인리히 하이네 / 고백 중


그곳에 간다고 없는 사랑이 생길 리도 만무하고, 누추하고 허접한 현생이 나아지지도 않겠지만, 엠페도클레스의 신발 한 짝과 1유로짜리 집이 있다는 그 섬이 아직 미련처럼 남아있다. 귀소하는 새처럼 이민 간 친구들 하나 둘 돌아오는데, 이 무슨 엉뚱한 생각인가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도처청산골가매' 到處靑山骨可埋, 뼈를 묻을 산이 어디엔들 없으랴. 어디 불끈 용기를 내어 그 섬으로 떠나볼까? 


※ 엠페도클레스의 사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그의 사인을 실족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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