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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까스 Oct 09. 2022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2022.09.30)

세상은 점점 살만해져가고 있다?!

 Fact 라는 말은 어느새부턴가 우리 사회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이 책은 제목에 걸맞게도, 그야말로 '팩트 덩어리'이다. 작가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자로, 인류의 온갖 측면에 대한 팩트로 무장하고서 세상을 실제보다 나쁘게 보고 있는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싸운다. 그가 고안한 무기 중 하나는 책의 서두에 나오는 퀴즈 문항이다. 짧은 질문에 대한 3개의 보기 중 답을 고르는 문제인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30% 미만의 정답률을 보인다고 한다. 셋 중 하나면 찍어도 정답률이 33%인데 정답률이 그보다 낮으니, 작가는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이 침팬지가 찍는 것 보다 못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물론 이는 무지에 대한 비웃음이 아니라 머릿속에 존재하는 편견을 일깨우기 위한 에피타이저일 뿐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내용에 따르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생활 수준과 소득 소준이 높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똑똑하고, 환경에 관심이 많은 세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보다 과거가 나았고, 갈수록 세상이 나빠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배운 낡은 지식은 30년 전의 것이므로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세상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흉흉한 일들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참 많이 일어나니까. 그러나 세상이 모든 면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니? 우선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반론은 자살률이었다. OECD 자살률 2위 국가에서 살아가는 나는 자살에 대한 뉴스를 정말 많이 접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검색해보았더니, 이게 웬걸. 2000년 이후 전세계 자살률은 무려 29%나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전체 인구가 증가하여 자살한 사람 수 자체는 많아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자살률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통계자료로 의견을 구축하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묘한 반발감은 학교에서 배운 낡은 지식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닌 듯 했다. 나를 포함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가 느끼는 생각은 작가가 제시하는 결론과는 거리가 멀다. MZ 세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생각은 되려 "살기 참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작가가 주장하는대로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면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20년 동안의 입시지옥을 거치면 취준을 위한 레이스가 시작된다. 간신히 취업을 하더라도 야근과 주말출근, 내부적인 경쟁과 스트레스으로 힘겨운 나날이 이어진다. 생애 가장 행복한 이벤트가 되어야 할 결혼을 향해 가는 길 역시 험난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인생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다.


 작가와 나의 세상에 대한 인식 사이의 괴리는, '세상이 나아지고 있음'을 판단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영아사망률 감소, 탈문맹, 과학발전, 성평등, 자원 보급률 등의 수치를 제시하며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매크로적인 시각에서 인류의 건강, 지능, 권리, 복지수준의 발전을 세상이 나아지고 있음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그것은 분명히 위대한 발전이기는 하나, 통계의 포장을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 내부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어두운 현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1인당 소득수준은 세계 최고이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를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입소스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상위 1%의 사람이 전체 부의 37%를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99%는 상위 1%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부자들이 요트를 타고, 한 끼에 몇십만원씩 하는 코스 요리를 즐기고,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은 오직 그런 꿈을 꿀 뿐이다. 게다가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인하여 부자들의 그런 일상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되므로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커져만 간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상위 1%의 사람이 전체 부의 34%를 차지한 한국 역시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는 생활의 '절대적 수준'과는 무관하게 '상대적 수준'은 오히려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 독서모임을 진행했던 책인데, 이 책을 추천하고 발제를 올리셨던 분이 한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논지를 전개함에 있어 주로 통계를 사용하는 점을 비판하며,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는 말을 하셨다.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수많은 통계는 모두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통계들을 이용하여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결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이 본인의 기준 상 4단계 국가(1일 수입 32$ 이상...인데 이 기준에 대한 신뢰도 역시 문제이다)의 국민들이라고 한다. 나 역시 4단계 국가에 살고 있는데, 이 때문에 내가 '생활의 절대적 수준의 향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예측대로 세상이 점점 좋아져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차이가 없게 되고 모두가 일정한 (절대적) 생활 수준을 누리게 되는 날이 오면, '상대적 생활 수준'이 문제가 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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