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차 〈내가 꼰대가 될 줄 몰랐다〉

『혼자여서 괜찮은 날들』

by 박동욱

‘꼰대’.
정말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다.
특히 40대를 넘어서
회사나 모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조용히 있으면
“왜 이렇게 무서워요?”
한마디 하면
“그런 말투가 꼰대 같아요.”
이쯤 되면
숨도 꼰대처럼 쉬는 기분이다.

한때 ‘꼰대’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말이었다.
“그때 그 시절의 아저씨들” 이야기.
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이
점점 그 시절의 ‘그 아저씨’를 닮아간다.

스타벅스에서 20대들이
크게 웃으며 대화하는 걸 보면
“아이고, 저건 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내가 있다.
겉으론 “요즘 애들은 자유롭네~” 하면서
표정은 이미 오만 가지 감정을 말하고 있다.

그 순간 깨닫는다.
“아… 나 지금 꼰대였다.”

사실 40대는
요즘 감각으로 보면 젊은 축이다.
운동도 하고, 옷도 나름 트렌디하게 입고,
SNS도 하고, 유머도 나름 잘 챙긴다.
우리끼리는 말한다.
“아직 꼰대는 아니야.”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이미 반쯤 넘어간 거다.
꼰대는 늘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말할 때
가장 꼰대스럽다.

요즘 2030 세대를 보면
기특하다가도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솔직한 건 좋은데 너무 직설적이고,
자기 주관은 뚜렷한데
듣다 보면 예의가 없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속에서 한숨이 훅 튀어나온다.
“우린 안 그랬는데…”

그리고 다시,
그 말을 삼킨다.
표정을 관리하고, 말투를 낮춘다.
“그럴 수 있지. 요즘은 그런 시대니까.”
조심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 눈에도 내 속마음은
투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지?”

요즘은 ‘꼰대’도 두 종류인 것 같다.
말 많은 꼰대와 말 없는 꼰대.
나는 되도록이면
말 없는 쪽에 가깝고 싶다.

가르치기보다는
내 얘기를 해주는 사람.
답을 주기보다는
함께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 조언을 구하면
이렇게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면
진짜 꼰대 되는 거 알지?”
그리고 한 템포 쉬고,
“근데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어.”
라고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 말이 꼰대 같다면,
그건 세대 차이보다
경험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실,
꼰대가 된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경험 많은 사람에게
지혜를 듣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지혜를
강요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보다
**“생각까지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꼰대 소리 한두 번 듣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내 사고가,
내 감정이,
내 시야가
굳어가는 건 슬픈 일이다.

요즘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너희 방식으로 해.
나는 그냥… 살아본 얘기를 해줄게.
듣고 싶은 만큼만 가져가.”

그리고
그 말을 전한 나 자신에게도
말없이 덧붙인다.

“너, 아직 괜찮아.
귀여운 꼰대 정도면 충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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