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차 〈오래된 것들의 위로〉

『혼자여서 괜찮은 날들』

by 박동욱

나는 글을 웹으로 쓴다.
디지털 시대의 작가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플랫폼 위에
감정을 얹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넘기는 감성을 잊지 못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의 바스락.
활자에서 풍기는 잉크 냄새.
책갈피 사이에 끼워 둔 누군가의 쪽지 같은 기억들.
그건 어떤 최신 디지털 화면도 대신할 수 없다.

나는 기억한다.
라디오에서 밤공기처럼 서늘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시절을.
사연을 보낼 땐
직접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엽서를 사서 우표를 붙이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를 답장을 기다렸다.

지금처럼 알림도 없고,
즉각적인 피드백도 없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오래도록 품었다.

기다림이 설렘이었고,
천천히 닿는 마음이 더 깊게 새겨졌다.

노래 한 곡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처음부터 돌려야 하던 시절.
그때는 ‘스킵’이란 기능조차 없었다.

한 곡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흐름대로 듣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엔 별 감흥 없던 곡이
어느 날 문득 마음을 건드렸다.
그게 바로 느림의 미학, 우연의 선물이었다.

지금은 원하는 곡만, 원하는 순간에 골라 듣지만
가끔은 그 무작위의 감동이 그립다.

요즘 사람들은 그걸 ‘레트로’라고 부른다.
트렌디하고 힙한 감성처럼 소비한다.

맞다.
레트로가 유행하고 있다.
필름 카메라, LP판, 테이프, 다마고치…
하지만 나에게 레트로는
한때 유행했던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저장된 감성 창고다.

그 시절 물건들 안에는
그때의 내가 들어 있다.

라디오를 들으며 몰래 울던 밤,
좋아하는 가수 앨범을 들고 자랑하던 복도,
비 오는 날 테이프에 빗소리 섞인 발라드 한 곡.

그건 단지 예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다.

오래된 것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보다 더 큰 위로가 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감정의 언어다.

먼지가 쌓인 노트의 삐뚤빼뚤한 글씨,
흐릿해진 사진의 가장자리,
손때 묻은 카세트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

그것들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너, 지금도 괜찮아.”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넘긴다.
가끔 라디오를 켜고,
영화 속 아날로그 장면에서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건 단순히 옛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시절의 내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
그 마음 덕분에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조금은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아날로그는 사라져선 안 된다.
그건 감성의 저장소이자, 기억의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도서관의 문을 가끔 열어
다시, 내 마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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