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차 〈중년의 이별법칙〉

『혼자여서 괜찮은 날들』

by 박동욱

사랑을 시작할 때는 늘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이별을 마주할 때는
항상 마음이 너무 늦는다.

중년이 된 지금,
나는 이별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예전처럼 소란스럽게 무너지지 않는다.
감정을 쏟아내지도,
붙잡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한 발짝 뒤로 물러날 뿐이다.

그게 어른스러운 이별일까?
아니면
그저 지쳐버린 마음의 방어기제일까?

예전엔 이별하면 눈물부터 흘렀다.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보고 싶다는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
휴대폰 사진첩을 뒤적이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누구를 향해
목이 메게 울지 않는다.

대신,
함께한 시간들을
곱게 접어
마음 서랍 깊숙이 넣어둔다.

언젠가 다시 열어볼 수 있을까?
모른다.
다만 그 감정을 다시 꺼내보는 일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다.

이별은 이제
사랑의 끝이라기보다
한 시절의 자연스러운 퇴장처럼 느껴진다.

꼭 누가 잘못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저 서로의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른 풍경을 향해
걷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왜 헤어졌어?”라는 질문엔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그럴 때가 온 것 같더라.”

그 말 한마디에
후회도, 아쉬움도, 이해도, 체념도
고요하게 스며 있다.

중년의 이별은 조용하다.
티 내지 않으려 애쓰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않는다.

그 사람의 사진을 지우는 데
며칠은 걸리지 않지만,
함께 주고받았던 말들은
문득문득 떠오른다.
하루의 중심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중년의 이별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버려진 기억이 아니라,
조용히 옆에 남아 있는 그림자처럼.

가끔은 그 사람이 그립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도 커피는 연하게 마실까.
창가 자리를 여전히 좋아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유치한 걸까?
아니면
진심이었던 시간을
아직 완전히 보내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사람을 좋아했던 마음까지
지울 필요는 없다는 걸.

이별했다고 해서
모든 감정까지 폐기되는 건 아니다.
그 마음은
살아 있었고,
아름다웠고,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

중년이 되면
이별도 하나의 과정이 된다.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하고,
그리고 언젠가는
떠나보내는 일.

그건 실패가 아니다.
경험의 곡선이다.

더 이상 사랑을
영원히 붙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머물렀던 시간이
내 안에서 충분히 빛났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안다.
붙잡지 않는 것이
진짜 사랑일 수 있다는 걸.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일이
사랑의 마지막 예의일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혼자 앉아 있다.

그리움이 찾아오면
반가운 손님처럼 맞이하고,
떠나면
고요하게 문을 닫는다.

그게
내가 배운
중년의 이별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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