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2. 오랜 시간 동안 무뎌진 감정
어느 순간부터였다.
울지도 않고,
화도 나지 않고,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예전의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졌고
작은 눈빛에도 밤을 설쳤다.
세상과의 모든 접촉이
곧 내 마음의 울림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조용하다.
감정이 둥글고, 뭉툭해졌다.
모서리 없는 감정은 편안하긴 한데
어쩐지… 조금 무섭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도
쉽게 기대하지 않고
사랑이 다가와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처음엔 이걸
성숙이라 생각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가끔
혼자 있는 밤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는 이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마음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벽을 쌓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버린 건 아닐까.
세상이, 시간이,
그리고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든 걸까.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나 자신조차 어쩌지 못하는 마음.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두려워졌는지도 모른다.
무뎌진 감정은
아프지 않지만,
설레지도 않는다.
그건 슬픔보다 더 조용한 슬픔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안다.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깊이 잠들어 있을 뿐이라는 걸.
언젠가,
어떤 사람, 어떤 순간,
어떤 노래나 냄새 하나가
다시 내 심장을 깨워줄 수도 있다는 걸.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조용히 기다리기로 한다.
아무 감정이 없어도
내가 무뎌졌어도
나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작게, 작게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