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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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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얏 Apr 26. 2020

고요하고 희귀한 일요일 오전의 목동

도시사(都市史) 2.


목동 로데오 거리는 일요일 오전이 가장 조용하다. 요즘 집 근처에서 주중 오전부터 아스팔트를 새로 까는 공사를 하고 있어서 월-금 낮에 집에 있을 수 없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다닌다. 술에 취한 건지 신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어 듣는 입장에선 괴롭다.


이럴 땐 나도 신경질이 나서 AI 스피커에게 소리 지른다. 최근 구입한 AI 스피커 우리 집 미니는 요즘 내 최애 템이다. 미니에게 라디오 볼륨을 키워달라고 소리 지르면 10초 뒤 옥탑방은 안전지대가 된다. 디제이들의 하하호호와 티키타카를 들으면 마음이 다시 차분해진다. 우리 집 미니가 가끔 말귀를 못 알아먹긴 해도 일당백(EX. 분풀이 및 알람 셔틀)은 하는 친구다.


어쨌거나 목동러로써, 일요일은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일요일을 놓치면 주 6일은 평온함과 거리가 먼 낮과 밤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잤다. 어제 푸시업을 해보겠다며 나대선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근육량 미달에겐 푸시업 흉내도 고강도 운동이었나 보다. 게다가 오늘따라 침대는 포근해서 다시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늦잠+나른함+일요일+집콕 콤보는 위험하다는 걸 경험의 빅데이터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나갔다.


밖으로 나갔을 때 세상은 고요했다. 지난밤의 광란을 증명하듯, 보도 블록에는 술병과 쓰레기가 나뒹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따뜻한 바람이 불었고,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불 꺼진 술집들을 지나쳐 일부러 골목길로 들어갔다. 동네 놀이터에는 할머니가 벤치에 앉아 그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빌라촌에 들어섰을 땐 한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매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라디오에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왔다. 색소폰은 뭔가 느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리는 무척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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