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하라 켄야, 안그라픽스, 2023)
미래 자원은 '풍토'와 그곳에 뿌리를 내린 '전통'에 있으며, 문화의 매력은 다른 문화와 접촉해 뒤섞이며 생겨난다. (한국어판 서문 중)
'글로벌'과 '로컬'은 반대말이 아니다. 1대 1의 개념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p.4)
판에 박힌 나열에는 깊이 없는 감동만 존재한다. (p.14)
글로벌한 문화라는 것은 없다. 문화는 그곳에만 있는 고유성 그 자체다. (p.70)
인위와 자연이 대립하는 '적당한 편안함'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정원의 본질이다. (p.198)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교통과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세계는 가까워지고 '편리'는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것', '전통적인 것'은 '인공적인 것', '현대적인 것'에게 '실재'를 내어주고 '관광'과 '꾸밈'의 객체가 되어 뒤로 물러 앉았다.
하지만 문화는 절대적인 '우세종'이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저공비행'은 속도와 편리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느림과 여유 있는 조망의 가벼움을 통해 문화의 대립적 우열을 뭉개고 조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한 건축가의 발칙한 상상이 만든 도전이자 가치다.
한동안 '로컬'이 유행처럼 번졌다. 골목에 '복고'를 집어넣고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아닌 '재생'이 깃발을 들고 섰다. 물론 스스로 우세종임을 의심치 않았던 편리와 깔끔의 문명세는 불편과 저효율, 낡음과 촌스러움의 영역으로 이들을 내몰았다. 그 사이 판에 박힌 나열만 재생산되었다. 담벼락에 그림만 그려 놓으면 그게 재생이고 복고이자 문화였다. 영혼이 깃들지 않은 옛 것이 판박이처럼 양산되고 감동 없는 패스트 패션마냥 소비되기 바빴다.
건축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뒤로 밀린 가치들에 주목했다. 물론 우열을 가려 전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1대 1의 위치에 공평하게 올려놓고 조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 시도했다. 고도 1,000m 아래 높이, 즉 적당한 조망권을 시야에 둔 저공비행은 그 시도에 걸맞은 효과를 발휘했다. 비로소 속도를 줄인 현대와 전통, 문화는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적당한 편안함'의 추구. 그것은 단순히 일본의 정원 문화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문화의 중요성이 더해갈수록 미래는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과 새로운 것들의 적당한 조화와 융합 속에서 지속 가능한 적응과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저공비행'은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건축물을 인터넷에서 탐색해보기도 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속 책갈피를 꽂으면서. 어쩌면 지금 내게 '적당한 편안함'이 절실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