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수지 크립스 엮음, 인플루엔셜, 2023)
내 자신이 행운이므로,
지금부터는 행운을 찾지 않으리라.
지금부터는 더 이상 투덜대지도,
더 이상 미루지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불평과 도서관과
논쟁적인 비평이여 안녕.
만족한 상태로 씩씩하게
열린 길로 여행을 시작한다. (중략)
가자! 시작이 없었듯이
끝도 없는 곳으로
(월트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 중)
책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가장 큰 울림을 준 문구다. '내 자신이 행운'이기 때문에 더 이상 행운을 찾지도, 투덜대거나 미루거나 무엇을 원하여 집착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환희에 찬 열정으로 길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희망이, 마치 순례자의 길 위에 선 여행자의 뒷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 많은 요즘이다. 어딜 가도 빨리빨리, 뭘 해도 빨리빨리. 특히 대한민국 사회는 다른 곳보다 더 '빨리빨리!'를 외치는 시공간이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에 하나가 '빨리빨리!'라는 사실은 뭐,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설사 걷을 일이 있다 해도 시선은 몇 인치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죽하면 '스몸비'라는 신조어가 등장할까. 스몸비들이 불의의 사고라도 당할까 싶어 횡단보도 경계석에는 신호등 조명이 깔리고 가뜩이나 눈부신 세상, 바닥조차 눈부시게 바꿔 놓고 있다.
엮은이가 시간을 거슬러 18~20세기 사이 작가들의 '걷기'를 더듬어 찾아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은 있다. 처음에는 분명 '걷기'에 집중하며 그 즐거움과 깨달음을 나누고 있는 반면, 뒤로 갈수록 '여행', '사색'에 대한 예찬으로 빠진다. 특히 시대적 관습과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으로써 '걷기'를 활용하는 작품들이 나열되면서부터는 '걷기'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저 멀리 밀려나는 것이다.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기'는 분명 '덕후질'할 존재로서 가치가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명상과 사색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걷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문명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걸음으로써 생각이 발전하고 도전이 샘솟으며 꿈이 이뤄진다. 그러니 걷자. 혼자든, 여럿이든. 골목길이든, 시골길이든. 그리고 밤이든, 낮이든. 걸음이 쌓여 여행도 되고 사색도 되는 것 아니겠나. 가장 실천하기 좋은 수양의 방법, 바로 '걷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