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든 실패든 동일한 무게로 성장을 견인할 수 있어야

성공과 성장 사이

by 시소

성장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도 실패도 그저 ‘성장’의 과정일 뿐이다.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성공들을 경험한 뒤 때때로 더 큰 좌절을 겪곤 한다. 시험에 합격해서 원하던 상급 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면 한층 고된 학습과 훈련 과정이 기다리고 있고, 바늘 구멍을 통과하듯 힘겹게 취업에 성공하고 나면 ‘신입’이라는 딱지를 달고 취준생 때보다 더 낯설고 냉정한 사회로 내동댕이쳐진다. 분명 ‘성공’을 거머쥔 것 같은데 인생은 꽃길이 아닌 더한 시궁창 속으로 자꾸만 나를 끌고 가는 것 같다. 살면 살수록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닥쳐온다. 어른이 되면, 원하던 뭔가를 손에 쥐면, 조금 더 시간이 가면 인생은 조금 더 내게 익숙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매일매일 이토록 서툴고 낯선 삶이라니.


너무도 익숙한 한학기의 사이클이 끝나고 방학을 맞았다. 방학 첫날부터 한 학부모님이 담임선생님을 고소하겠다고 흥분해서 전화를 했다. 고소하겠다고 한 담임선생님은 올해 새로 발령을 받은 신규 교사다. 흥분한 학부모님과 한 학기동안 낯선 학교 생활을 하다 겨우 방학을 맞은 신규 교사 사이에서 핑퐁 전화를 하며 진땀을 뺐다. 임용고시 합격의 기쁨이 얼마나 지속됐을지, 교사 생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곁에 있는 선배 교사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방학식 전날까지 선도위원회로 퇴근이 늦었던 터라 방학을 맞은 첫 날만큼은 정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학폭, 선도, 교권, 고소, 고발… 언제부터 학교에 이런 말들이 일상어가 되어 버린 걸까. 한 학기동안 해야할 일들에는 익숙해졌으나 매 학기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나는 매 학기 놀랍고 충격적인 일들 앞에서 항상 서툴기 일쑤고, 넘어지기 일쑤고, 마냥 혼란스러워하다 흠뻑 지쳐 나가떨어진 채로 방학을 맞는다. 누군가는 방학이 있는 직업이라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방학 없이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답한다.


매 번 실패하고 좌절하는 교사들 속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동안은 이 질문이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여전히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학교는 ‘성공’하는 곳이 아니라 ‘성장’하는 곳이라는 것! ‘성공’과 ‘성장’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과거에 나는 성공하는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학급 안에서 유일한 어른으로 성공적인 모델링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고, 학생들 역시 그런 나를 보며 성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매번 실패했다. 성공적인 학급 경영을 목표로 아무리 애를 써도 담임 교사를 싫어하고 욕하는 학생들은 존재했고, 내가 제시하는 학급의 방향에 반발하는 학생들도 존재했다. 여러 해 동안 무참히 실패하고 나서 나는 나의 목표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성공’이 아닌 ‘성장’하는 학급을 목표로 두자 나도 학생들도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우리 학급 안에서는 학생도, 교사도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공언했다. 단,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 교사를 욕하거나 담임 교사에게 반발하는 학생들은 존재했다. 달라진 점은 더 이상 그런 일에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의 실패는 당연한 일이고, 성장은 그 이후에 일어난다. 나는 1년간 ‘우리 선생님 정말 좋다’가 아니라 ‘우리 학급 정말 좋다’라는 말이 늘어나는 데 방점을 두었다. 나와 학생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이 목표가 됐다.


2번이나 남극 탐험에 실패한 ‘어니스트 섀클턴’은 실패의 본보기가 아니라 훌륭한 리더의 본보기로 종종 회자된다. ‘남극 정복’을 위해 떠난 여행 속에서 실패가 확실시되는 순간, 섀클턴은 좌절하기 보다 바로 목표를 수정했다. ‘전원 무사 귀환’으로. ‘남극탐험대’라는 이름으로는 실패했지만, 그들은 혹한의 남극 땅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은 채 모두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소중한 성장의 경험을 안고서.


남극 탐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번 학기도 성공적인 학교 생활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학폭과 선도 사안은 산적해 있고, 방학동안 위태로워 보이는 학생들도 많다. ‘성공’은 커녕 조금이라도 ‘성장’했는지 의심스러운 학생들이 태반이다. 방학 첫 날의 통화로 인해 동료인 신규 교사에게도 내가 어떤 의미의 실패나 좌절감을 준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학교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찌됐든 학교란 서로의 성장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간이니까. 학교에 죽도록 오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는 끈질기게 전화하고 찾아가며 학교에 얼굴이라도 비추기를 독려하고, 학습 활동이나 과제를 안 하고 버티는 학생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배우기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밀어붙인다. 조직이든 사회든 함께 욕을 하면서라도 끊임없이 실패하는 동료 교사들의 좌절감에 절절히 공감하며 위로를 건넨다. 이토록 서로의 성장을 바라고 독려하는 조직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것이 학교의 본질이고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나 역시 앞으로도 학교와 멀어지려는 학생들에게 욕을 얻어 먹으면서까지 계속 전화하고, 버티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도록 계속 독려하고, 실패하는 동료 교사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한마디 말이라도 건넬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조금씩 성장하리라 믿는다.


성장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도 실패도 그저 ‘성장’의 과정일 뿐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나 역시 끊임없이 실패할 것이고, 또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다. 인생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므로. 성공이든 실패든 동일한 무게로 성장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부터 성공이든 실패든 삶 속에서 그 두 가지를 동일한 무게로 받아들고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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