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같은 대화를 이어가며

말과 말 사이

by 시소

치열하게 싸움같은 대화를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산다. 조금은 힘을 얻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교사와 엄마로 사는 일은 ‘말’과 ‘말’의 연속이다. 수많은 말들을 해야 하고, 수많은 말들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안에서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는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학교에서 진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업’ 활동을 진행했다. 우선 학생들이 모둠별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한 뒤 PPT를 만들어 반 친구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이를 통해 자체적으로 보완한 사업 계획서를 가지고 축제 때 팝업 스토어 형태로 마켓을 열었다. 학교구성원을 대상으로 학생들은 인생에서 첫번째 창업 경험을 하게 됐다.

평생직장이나 평생직업이라는 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VUK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의 약자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미래 환경을 뜻하는 말) 시대를 살아갈 앞으로의 세대는 인생에서 최소 한두번은 창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창업을 계획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로 소비자를 만나는 경험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축제 때 학생들의 팝업 스토어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나 나름대로는 의미있는 소비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이 사전에 현금을 준비해 와서 불필요한 물건이나 음식 앞에서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학생들이 몰려와 조르면 껄껄 웃으며 뭔지도 모른 채 돈을 건넸고, 심지어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지도 않은 채 돈만 주고 온 경우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들이 기특했고, 그 과정 속에서 그들만의 가치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경험에 동참한다는 것 자체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실제로 돈이 오가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모둠끼리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했으나 문제가 해결되는 대화보다 문제가 심화되는 다툼이 많아졌다. 결국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모둠은 교사인 내가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한 모둠이 쿠키를 만들어 개당 2,000원씩 팔아서 약 60,000원의 현금을 받아쥐었다. 모둠원이 모두 6명이었는데, 그 중 A학생이 자신이 창업 계획 단계와 PPT 제작에 가장 많이 기여했으므로 1/2인 30,000원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5명의 학생들이 그건 너무 과하다고 하자, 그럼 양보해서 1/3인 20,000원을 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원활하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중재를 시작했다. 모둠원 전체와 대화를 해 보니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창업을 위한 재료비는 대부분 학교의 예산으로 지원해줬고, 팝업 스토어를 위한 장소나 팝업 스토어를 홍보하거나 꾸미기 위한 도구, 현수막 등 대부분을 학교에서 대여해 줬는데도 B학생이 약 50,000원 정도의 개인돈을 사용한 일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모둠의 수익은 60,000원이 아니라 10,000인 것이다. 그런데 B학생은 모둠원 전원이 다 수고했으니 자신이 사용한 개인돈은 고려하지 않고 60,000원을 1/6로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파악하고 A학생을 개인적으로 불러 1/3이 아닌 1/6로 나누는 것으로 정리하자고 설득했으나 끝까지 자신이 이 창업 활동에 가장 많이 기여했으므로 1/3을 가져야겠다고 주장했다. 원래 1/2인 30,000원을 가지려고 했는데 1/3인 20,000원으로 양보한 것이라며, 그 돈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양보가 아니라 욕심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더이상은 대화가 안 되겠다 싶어 참았다. A학생은 대화보다 모둠원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나 역시 제대로 싸워서 중재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너희들의 진정한 수익은 60,000원이 아니라 10,000원이라고 설명하고, 50,000원은 개인돈을 쓴 B학생에게 준 뒤에 10,000원을 나누는 방법을 논의하라고 했다. A학생은 반발했다. B학생은 이미 자신이 사용한 개인돈에 대해 고려하지 않기로 했는데 왜 선생님이 끼어들어 방해를 하냐는 식이다. 나는 ‘A학생이 자신의 노동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B학생 역시 자신이 투자한 자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응수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A학생의 기세에 눌려 아무말 하지 못하고 있던 다른 모둠원들도 자신들이 이번 창업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함께했던 친구들이 아니라 오로지 20,000원이라는 돈에만 집중했던 A학생은 20,000원은 커녕 2,000원도 받아가지 못하게 됐다.

이 문제 후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이번 축제 창업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진정한 우정과 사회경제적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적 활동이므로 지나치게 ‘돈’에 혈안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여러분들이 손에 쥔 돈은 여러 선생님들, 친구, 선후배들의 호의와 배려로 번 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필요없는 물건조차 조르면 사주기도 했고,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로 충동적으로 구매한 소비자들도 많았으므로 오로지 내가 잘 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의 창업 경험을 통해 돈도 좋지만, 함께 한 친구들과의 협력의 경험이나 창업 계획과 실행 사이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잘 챙겨 배우기를 바랐다. 학교의 다양한 활동 속에서 학생들은 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그 결과로 다양한 문제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교사들은 보완책을 고민한다. 내년 축제 때 또 다시 창업 활동을 하게 된다면, 교육적인 의미보다 돈에 집중하지 않도록 가상 화폐를 만들면 어떨까. 무조건 학생들의 활동을 긍정하고 칭찬해주기보다 창업계획서 발표 단계에서 설명회를 갖고 펀딩을 받으면서 보다 냉정하게 소비자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등등.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학급에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수업 시작 전에 제출했던 휴대폰 중 하나가 종례 시간에 확인해 보니 파손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휴대폰 도우미가 휴대폰 가방을 함부로 다뤄서 생긴 일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함부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휴대폰이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알기 때문에 휴대폰 도우미도 나도 조종례시간에 휴대폰 가방을 신경써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러 행사로 수업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선생님들도 많았고, 동아리나 외부 활동이 있는 날은 휴대폰 도우미가 일과 중에 휴대폰 가방을 여러번 들고 왔다갔다 하는 일도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일부 휴대폰이 파손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학급 전체 앞에서 유독 고생하는 휴대폰 도우미의 책임을 확정적으로 말하거나 따지고 들 수 없어 ‘꼭 집어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배상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교실 안에 대놓고 생각없는 말들이 오고 간다. 큰 소리로 휴대폰 도우미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럼 우린 맨날 폰 인증샷 찍어놔야 되겠네요? 야, 내가 니거 찍어줄게, 하하’하며 어이없다는 말투로 내 말을 우습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 또 파손되면 우리가 알아서 고쳐야 되는 거예요?’ 하며 항의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휴대폰 도우미가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됐고, 이렇게 생각없이 쏟아지는 말들에 내가 일일이 다 대꾸를 해야 하는 걸까 피곤해졌다.

학급에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은 대체로 한두명 학생의 책임을 거론하며 따돌리는 듯한 말을 쏟아내거나 나에게 어디 한 번 문제 해결책을 내놔봐라 하는 예의없는 태도로 따지고 든다. 그래서 학생들과의 대화는 매번 지친다. 싸움을 걸듯이 달려드는 학생들과 싸움이 아니라 대화를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휴대폰도우미가 개인적으로 휴대폰을 만진 것도 아니고 학교의 교육 활동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이므로 휴대폰 도우미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수업 중 휴대폰 수거를 정한 학교 교칙, 그리고 그 교칙을 정한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휴대폰도우미에게 빨리 휴대폰을 가지고 오라고 재촉하거나 휴대폰도우미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탓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다. 다른 학생들은 학교의 교칙에 의해 휴대폰을 제출한 것이므로 휴대폰도우미에게 일 똑바로 하라거나 빨리 하라고 재촉할 권리가 없다. 등등… 주저리주저리 학생들의 생각없는 말을 맞받아치며 종례를 마쳤다.

학급 전체 아이들과 싸움같은 대화를 마치고, 휴대폰 도우미에게 개별적으로 다가가 잠시 살핀 뒤 휴대폰이 파손된 아이의 학부모님께 전화해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학교공제회에서 보상이 될 것이므로 파손된 휴대폰의 사진과 수리 후 견적서를 보내주십사 말씀드렸다. 정확한 보상 절차나 보상 범위는 공제회에 문의해 알려드리겠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고, 말을 요구받고, 말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지친다.


이런저런 회의 끝에 드디어 퇴근이다. 퇴근길에는 오로지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오늘 잠들 때까지 더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지친 상태로 누군가와 대화하기 시작하면 나부터 싸움을 걸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하는 말이 싸움이 아니라 대화가 되려면 살얼음을 걷듯이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가족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집에서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잠 자기 직전, 그러고보니 오늘 아이들과 너무 대화를 안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잠든 아이의 마른 얼굴을 쓰다듬으며 곁에 누웠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매일 말을 하고, 말을 듣는다. 치열하게 싸움같은 대화를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말과 말 사이에서 자꾸만 지쳐간다. 내일은 또 어떤 말을 하며 살게 될까. 조금은 힘을 얻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전 14화먹고 사는 일의 고귀함과 징그러움, 아름다움과 비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