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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25. 2020

분만실 앞 대기 행운도 가진 남자

짧은 기다림과  보물 1, 2호 

"여보, 진통 간격이 좀 빨라진 것 같은데.."

"몇 분 간격인데"

"이제 5분 간격 된 지 세 시간 넘었을걸?"

아침에 이슬이 비치더니 오후 2시쯤부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저녁 6시가 넘어서면서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다.

입맛이 없어서 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때 먹은 라면 냄새가  진통할 때 속에서 올라와서 고생을 했다.

그 후로 산모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아기 낳는 날 라면 먹지 말라고.

진통의 강도가 점점 더 세졌다.

그런데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분들이라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진통이라는 것이 아플 때는 정말 아픈데 잠시 후가 되면 언제 아팠냐는 듯 

괜찮아지는 것이다.

"형수가 너무 일찍 가서  결국 고생만 하고 제왕 절개했는데 우리는 좀 늦게 가자"

남편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나보다 한 달 먼저 조카를 출산한 우리 형님은 진통이 5분 간격 되자마자 병원 가서 

24시간 고생하다가 결국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다. 

그렇지만 이러면 안 되지 않나?

"9시 뉴스 좀 보고 가자" 한다.

"왕과 비 보고 가자"한다

주말 방송이었던 KBS 대하드라마가 시작되자 그걸 보고 가자고 한다.

병원은 바로 앞이고 아직 5분 간격이었다.

아파서 방바닥을 기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렇게 무식했던지...

오로지 최대한 시간을 늦춰서 가겠다고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곧 감이 왔다. 이건 가야 하는 거였다.

"여보 가자"

"잠시만"

"여보"

"어 준비해라"

"준비 다했거든. 아파 죽겠다고 이 씨"

드라마가 끝나기 조금 전, 밤 10시 40분경 부랴부랴 일어섰다.

병원에 도착하니 10시 45분.  차에서 내려서 걷는데 진통이 온다. 

3분 간격이 시작됐다.

바로 분만 대기실로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했다.

분만 대기실엔 나까지 산모가 5명이었다.

하루 전부터 있었던 산모부터 대부분 한나절은 거기 누워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는 순간부터 한 명, 한 명 분만실로 가고 결국 나만 혼자 남았다.

두어 시간 혼자 있다가 분만실로 옮겼는데 당직 의사가 오기 전에 자꾸 잠이 온다.

간호사가 자면 큰일 난다고 자지 말라고 하는데 분만대에 누워서 몇 분이 몇 시간 같았다.

결국 분만실에 들어간 지 세 시간 반이 지나 첫 아이를 만났다.

소리 지른다고 간호사한테 야단도 맞고, 

두 번 정도 남편이 들어왔다 갔는데 남편을 보니 또 눈물도 나고.

그렇게 분만대기 세 시간 반 만에 입원실로 올라갔다.



둘째는 예정일 전인데 한 밤중에 자다가 진통이 와서 일어나 보니 새벽 두 시.

시계를 보니까 5분 간격이다.

급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미역국을 하나 끓여 놓으면 좋겠단다.

큰 애 먹을 게 없다면서.

'시어른이 같은 도시에 사시는데 국 하나 못 끓여주시나'  마음속에서는 그런 말이 나왔지만

빨리 국을 끓였다.

그런데 끓이는 사이에 진통이 갑작스럽게 강해졌다.

자고 있는 아이 돌돌 말아 안고 가방 하나 들고 세 시쯤 집을 나섰다.

병원은 가까워지는데  차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악' 소리가 나왔다.

"브레이크 밟지 말고 가라고!"

결국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세상에나 3분 간격이 시작됐다.

병원에 도착해서 잠긴 문을 두드렸다.  

잠시 서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모른다. 

겨우 걸어가서  분만대기실에 누웠더니 80% 진행이라고

 힘 잘 주면 30분 있으면 아기가 나올 거라고 했다.

분만 대기실에 또 나 혼자다.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간 아무도 없었다.

힘을 잘 주라는데 진통이 없을 때는 또 꼬박 잠이 온다.

50분쯤 지나자 분만실로 옮기자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출한 당직 의사가 기다려도 안 온다.

새벽시간에 분만 산모가 없으니 푹 잠들었는지 

간호사들이 호출 더 해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맨날 새벽 출산이라 담당 의사는 못 보고 

자다 나온 당직 의사들이 자다가 애를 받아주는 격이다.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이번엔 또 힘주지 말란다. 의사 선생님 아직 도착 전이라고.

에휴....

그나마 아기는 의사 선생님 손으로 받아줬다.


아이 둘을 새벽 두 시 반, 새벽 네 시 십분 경에 낳다 보니 

대기실에 혼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의사 선생님,

그래도 무사히 건강하게 출산해서 좋았다.

툭히나 분만실 앞에서 딱 적당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진 남편에게

난 늘 '행운아'고 말한다.

세 시간 반,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산모에게나 보호자에게

최고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고생할 거 다 고생하고 제왕절개를 하거나 

12시간, 18시간을 기다려 아기를 만나는 부부도 있는데 말이다.

 



예전에는 아기 낳기 전까지 밭일도 하고 

새참을 머리에  이고 들에 배달도 갔다고 한다.

일손이 부족해 다섯 살짜리도 밭일 거들러 나갔을 테니

배부른 임산부인들  집 안에서 호사를 누릴 수 없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근대를 지나 현대에 태어난 게 행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결혼해서 손자, 손녀를 출산하게 되면 

산부인과 보호자실에 앉아볼 수 있않을까 생각해본다.

분만실이 쿵쿵 쿵쿵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곳이라면

보호자 대기실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 때문에 

오들오들 떨고 있지 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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