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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10. 2020

어묵반찬으로 박사 논문을?

어느날 남편이 말했다.. 어묵 반찬 논문 쓸거냐고

신혼 초, 여느때와 다름없이 식사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웃으면서 한마디를 했다.

"어묵반찬으로 박사논문 도전할거가?"

"어?"

"어묵반찬이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오는거 보니까 혹시 어묵으로 만드는 음식 뭐 이런걸로 박사논문 준비하나 싶어서"

"논문? 참내...!"

1초 정도 무슨 소린가 싶었다.

밥 잘먹고 있다가 갑자기 논문이라니?

어묵반찬이 주구장창 올라오니까 놀리듯 말한것이었다.

사람 기분나쁘지 않게 말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웃을 수 있었다.

좀 오래전 일이지만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건 

자존심 상했을 이야기를 웃으며 들을 수 있게 한 남편의 단어선택 때문이다.


된장국이나 콩나물국  끓일줄 알고 달걀말이, 라면 끓이는 솜씨정도 있었던것 같다.

쌀이 몇 컵인지 헤아려서 밥솥 옆에 쓰여진 숫자만큼 물 부을 수 있었으니

밥도 할 줄 알았다고 해야겠지.

결혼 후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서

반찬만드는  솜씨가 바닥을 드러냈다.

심지어 소고기 국을 끓일때조차도 엄마한테 전화해서 순서를 물어보아야했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가 아니어서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제일 확실했다.

그러다보니  밑반찬으로 가장 쉽게 고르는 재료가 어묵이었다.

간장조림, 고추장 혹은 고춧가루조림, 어묵탕..

둥글게 자르기도 하고 길게 채썰기도하며 변화도 주었다.

양파랑 볶기도 하고 당근이랑 볶기도 했다.

떡볶이도 만들었다.

값싼 재료로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살림초보였던 내가 

꽤 자주 식탁에 올렸던 것 같다.

게다가  남편이 맛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논문을 쓰기위해 계속 어묵반찬을 

실험적으로 올리느냐는 말에 그만 웃고 말았다.

나는 남편이 좋아한다는 생각에 자주 반찬을 했고

남편은 마누라의 반찬도전을 응원하다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어묵반찬 앞에 드디어 포기 선언을 한 것이었다. 

초보 주부였던 시절,

물론 지금도 경력에 비해 모자라는 음식 솜씨지만

만약 그때 남편이 나에게

"맨날 이거만 하나. 좀 다른거는 없나?" 혹은

 "음식이 맨날 왜이러노, 이제 어묵은 사오지마라"

뭐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나는 또 핑계거리를 찾았을 것이고

결국 서로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이 오고 갔을수도 있다.

그런데 박사논문 쓸거냐는 그 한마디에  모든것이 해결됐다.

나는 다시 어묵이 먹고 싶어질때까지 어묵반찬을 자제했고

남편은 나의 새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경험한다.

나는 솔직한 의사표현이라고 했는데 

상대방은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표현이 능숙하지 못해 의도치않은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말을 거르지않고 그대로 뱉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사실 전달이 아닌 내 감정전달이 된다면 대화가 아닌 

질타가 될 수 있기때문이다.

가끔은 강한 표현을 해야 알아듣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분노나 당혹감 같은 감정이 생기게 된다. 


말을 지혜롭게 하는건 그 사람이 가진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나이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말의 지혜가 부족한 우리에게 

혹은 나이가 들어감에따라 아집이 늘어나는 우리에게

한 번 더 나의 입을 점검해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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