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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15. 2020

화가 날때 참지말고 쓰세요

남편에게 화가 나서 폭발 직전이 되면  화난 것을 글로 썼다.

"수십 년 동안 결혼생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요?"

"저요?  남편에게 화가 나는데 말로 다 내뱉기 위험한 내용은 글로 썼어요. 욕 노트를 썼어요"

"욕 노트요?"

"네. 집에 있는 공책 하나 꺼내서 화가 날 때마다 거기에 남편 흉을 쓰는 거예요."

"그럼 화가 좀 가라앉나요?"

"네. 입으로 못할 말을 거기다가 마구 적는 거예요. 속이 시원하다니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느낌?"

"저도 사용해보고 싶네요"

"하지만 주의할 게 있어요. 남편한테 들키면 큰일 나요. 자주 사용하는 공간에 무심하게 꽂아두고 자주 폐기 처분하셔야 해요."


사랑이라는 효소 한 방울 덕분에

상대의 모든 것이 좋게만 보였던 때가 있었다.

불꽃이 식을 때 즈음엔 편안하게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처음엔 서로를 고쳐보려고도 한다.

이때는 불꽃같은 사랑이 아닌 불이 나는 가정이 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따라

그대로의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포기하는 순간이 오면

서로에게서 자유를 얻게 된다.

결국 내 마음속 평안이라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포기는 평안이다'라는 그런 극단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부일지라도 남편이 혹은 부인이 내 소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연애할 때야 그런 상대가 멋있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조차 그러면 결국 상대방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차근차근 말 잘하는 남편하고 살다 보면 급한 성격을 가진 아내는 자꾸 말려들게 된다.

남편이 제공한 문제로 인해 부인이 화가 난 상태다.

그리고 그걸 따지는 중에  급한 성격이 나와서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게 된다.

"그게 무슨 말인데?"

"뭐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왜 초점을 벗어나는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더할 말 없다"

아니! 내가 뭔 생각을 했는데? 당신이 잘못한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중인데

내 말투 때문에 자기가 화가 나서 말을 못 하겠다니 참...


화가 나지만 나는 굳이 2차전을 하지는 않는다.

 부부싸움은 2차전이 의미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기도 미안했을 텐데 내가 자존심을 건드려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내 마음이 편하려고 하는 최면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책꽂이에서  노트를 하나 꺼낸다.

내 상담 전문가이자 해결사다.

볼펜을 들고 비장하게 써 내려간다.

노트 위에서는 남편 호칭도 '너'가 되고 내가 차마 남편 앞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쓴다.

아무 상관없는 시어른이 등장하는 날도 있다.

나중에 읽어보면 기함할 말에 나도 놀라면서 웃는다.

그러니 절~대 남편한테 들키면 안 된다.

그런데 효과는 좋다.  

들킬 걱정이 있다면 바로 버리면 된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못할 말을 노트에 쓰다 보면  화가 풀리고 내 마음은 평안해졌다.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았다.

사람은 위로를 받으면 치유가 되는 것처럼 나에게는 그 노트가 그랬다.

한참 힘들었던 시기에 내 이야기를 받아주었던 상담사 같았던 공책 한 권이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마웠다.


참, 그리고 노트는 최대한 잘게 찢어서 나눠서  버린다.

물에 담가 종이죽을 만들기도 한다.

소심한 마음에 조각들이 만나서 효과를 발휘할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다.

물론 태우는 것도 최대한 안된다고 본다.

불에 태우는 건 기원의 의미가 있으니까.

지금 되돌아보면 글을 처리할 때도 고심했었다는 걸  알겠다.


지금도 쓰고 있냐면...

'이해를 담은 포기'가 많아지면 그 노트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몇 년 전부터 내 책꽂이에는 누구나 봐도 되는 것들로만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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