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Oct 30. 2023

태양빛으로 물들 때면 (3)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궁금한 마음은, 봄날의 부드러운 지면을 뚫고 용감하게 돋아난 작고 연한 새싹 같은 것이 아닐까.


궁금하게 여기는 일은 잦지만, 내가 관심이 있어서 궁금한 것이라는 뻔한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어렵다. 나도 모르게 피어난 설레임, 그 이면엔 밟혀 죽거나 비바람에 망가져 버릴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관심이 있다 하면 부담스럽고, 관심이 없다 하면 머쓱해질 뿐이기에 그랬다. 


마시던 아이스커피의 얼음만이 남았을 때 나름대로 결론을 지었다. 너는 네 할 일을 훌륭히 해냈을 뿐이고, 나는 그저 필요의 대상이 되는 자신을 상상하여 존재의 의미를 느끼고 싶었던 것으로. 인간적인 애착도 좋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욕망의 대상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질답은 없을 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계절감을 느끼기 어려운 곳이었던 만큼 시간이 가는 것에도 무뎌졌다. 그저 매일이 월요일 같았다. 나이를 먹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거울을 보면 종종 없던 주름이 생겨 있었다.


기분가는대로 하루를 꾸렸다. 루틴이랄 게 없는 일상이었음에도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거르지 않았다. 허세 좀 부려보려 한 것 치고는 꾸준했달까. 


그러나 혹여 카페인 중독이 된 것일까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의지를 빼앗기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삶이라니. 그보다 무서운 것이 또 없다. 슬슬 카페에 발길을 끊고 커피도 끊어야 하는 게 아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는 나처럼 매일 아침 카페에 오지는 않았다. 정확히 언제 근무하는 것인지 업무 스케줄을 추적해보고 싶었지만,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나 싶어 그만두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날은 역시 신경 쓰였다.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건네받는 정도가 전부였다. 너는 업무 중이니 계속 분주했고, 나는 주로 핸드폰으로 쓸모없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러지 말고 독서라도 좀 하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자괴감의 시즌이었던 게다. 이럴 때면 늘 이대로는 안된다며,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며 새삼스럽게 생난리를 치곤 했다. 잘 팔린다기에 뭔지도 모르고 구입해서는 책장에 장식해 놓았던 베스트셀러를 집어 들고, 카페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커피와 함께 가장 볕이 잘 드는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어김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핸드폰은 가방에 넣어둔 채, 의기양양하게 가져온 책을 꺼내어 펼쳤다. 뻔뻔하게도 벌써 자기 계발이 다 끝나고 한층 성장한 기분이 들었다. 두 장쯤 넘겼을까, 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멈춰서는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지 얼굴을 확인하기엔 좀 귀찮기도 하고 어색하여, 책을 읽는 척 고개를 숙인 채로 옆을 흘끗 바라보았다. 사막 모래 색의 얇고 헐렁한 가을 셔츠였다. 여러 번 단정히 접힌 소매 밑으로 한 뼘 정도 드러난 건강한 팔이, 내 가슴팍 근처에서 봄바람맞은 그네처럼 흔들거렸다. 술 없이 취기가 올랐다.


너구나.


“그 책 너무 재밌죠?"



매거진의 이전글 태양빛으로 물들 때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