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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Dec 07. 2023

태양빛으로 물들 때면 (7)

시간이 꽤 걸렸지 싶다. 내 민낯의 마음을 관통하던 햇살이 사라지고, 어슴푸레해져 버린 방 안에서 네 얼굴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대책 없이 울기만 하는 나를 참을성 있게 달래주었다. 나조차 나를 달랠 수가 없는데, 넌 그걸 해냈다. 가까스로 긴장이 풀려 어깨가 제자리로 내려가 앉은 나에게, 카페로 놀러 오라며 귀엽게 졸랐다. 하루종일 있다가 같이 퇴근하자며. 


용기 내어 물었다. 


"거기서 정확히 무슨 요일에 일해?" 


"아, 언제 일하는지 몰랐어요?" 조금은 당황한 듯 너의 눈동자가 옅게 옆으로 굴렀다. 


"항상 똑같지 않았긴 해요. 그런데 보통은 화, 수, 금 일해요. " 


"일 안 하는 날은 뭐 해? 3일만 일해도 괜찮은 건가?" 


"음, 뭐...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쉬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요. 뭔가 창작하는 걸 좋아해요. 그림은 플리마켓 같은 데서 팔기도 하고요. 글은... 요즘엔 다 인터넷에 올린다길래 올려봤는데 아무도 안 읽고. 그리고 목요일은..." 


말을 멈추더니 장난기 어린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하루종일 같이 노는 날." 


"... 아니 우리 이제까진 안 놀았잖아. 원래 뭐 하는데...?" 


"하던 일이 있긴 한데..." 


영 말해줄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는 문장을 끝맺었다. 


"마침 잘려가지고."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도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얼버무리고 있었다. 난 눈치가 좋은 편이다. 그 정도는 읽을 수 있다. 걱정이 많은 편이다. 온갖 상상을 다했다.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매주 목요일마다 한 명의 표적을 살해했던 거다. 배우자, 자식 혹은 다른 연인이 있는 것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무척이나 반반하게 생겼으니 두둑한 용돈을 주는 스폰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상상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향을 틀어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 아픈 노모의 간병을 하는 날이었는데 필연 같은 우연으로 저번 주에 돌아가신 걸까.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러 다니는 날이었을까. 비밀로 하고 있지만 사실 재벌가 출신이라서 목요일엔 항상 집에 얼굴을 비치곤 했던 걸까. 


일주일에 하루, 목요일. 나를 만나기 전 목요일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아마 영원히 모를 터였다. 꼬치꼬치 물어본다면 대답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역시 진솔한 답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눈치챌 것이고, 실망만 더해질 것이다. 괜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렘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기적과도 같은 지금을 잃고 싶지 않았다.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영원을 믿고자 했다. 




하루가 이렇게 짧은지 몰랐다. 네가 출근하는 날엔 나도 카페를 향했다. 이제는 마침내 당당하게, 널 하루종일 바라보았다. 지루하지 않았다. 짐작했던 대로 너는 카페의 서브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나와 달리 너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반복적인 업무가 없었다. 


중간중간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지만, 또 종종 갑작스레 나타나 케이크나 쿠키를 건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떠나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으면 분명히 온다는 사실이 좋았다. 잊히지 않은 거니까. 


퇴근 후에도 별 다른 일이 없으면 우린 함께였다. 너희 집과 우리 집을 번갈아 가며 함께 쓰곤 했다. 나와 달리 너는 아담한 집을 무척 깔끔하게 꾸며놓고 살았다. 항상 커피내음이 살짝 섞인 레몬향이 은은하게 깔려 있었다. 턴테이블로 올드 팝송을 듣는 걸 좋아했고, 집 안 구석구석엔 자신이 그린 다양한 크기의 그림들을 전시해 놓았다. 내가 그토록 고민하다 포기한 커피머신도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수동, 하나는 자동. 


내가 카페에 가기로 결심하게 된 사연을 듣더니 웃으며, 둘 중에 마음에 드는 거 하나 집에 가져가라고 했다. 난 한사코 사양했다. 제대로 쓸 자신도 없었고, 분명히 고장 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집에서 네가 끓여주는 걸 마시는 게 훨씬 좋은데 어째서 굳이. 

 



금요일부터 일요일, 3일간의 휴일에 너는 정말 밤낮없이 열심히 그리고 썼다. 마치 그려내지 못하면 네가 죽을 것처럼. 써내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내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방해하지 말고 혼자 있도록 배려해야지 다짐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매주 3일간 너를 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랬다간 내가 죽고 존재를 부정당할 판이었다. 너에게 글과 그림, 그리고 내가 있다면, 나는 오로지 너밖에 없었다. 


나와 있는 것과 창작에 매진하는 것, 둘 중에 너는 어떤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일하는 데 3일, 창작에 3일. 나를 밤낮없이 바라봐주는 건 고작 하루, 그 수상한 목요일이었다. 


애초에 나는 네가 나를 어째서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왜 나와 함께 있어주는지 모른다. 한 번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 주지 않았다. 물을 때마다 나를 끌어안으며 듣기 좋은 사랑의 연가 같은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너무나도 달콤하여, 단 한 번도, 정확히 말해달라며 되묻지 못했다. 


진실이 두려워 하지 못하는 질문이 참 많다. 그리고 이렇게 차마 던져지지 못하는 질문은, 상처입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 본 적 없는 괴물로 변한다. 그리고 그 괴물은 어느 날 실수로 기침을 하면 목구멍에서 튀어나와 버린다. 


"너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거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엄청 열심히 하는데, 아무도 관심도 없고. 별로 재능 없는 게 분명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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