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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an 13. 2024

괜찮아, 언제든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니.

아직도 17살, 고등학교 1학년 때 소중하게 적은 교환일기장을 가지고 있다. 20대 중반까지는 1년에 한 번은 들춰봤다. 그 후엔 3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점점 그 빈도가 낮아졌다. 


하지만 일기장을 열 때마다 나는 정확하게 17살이 된다. 교실에 앉아있기도 하고, 과거 분당 야탑동 아파트 내 방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책상에 앉아있기도 하다. 독서실에 있을 때도, 그 앞 놀이터 그네를 탈 때도 있다. 기억 속의 난 언제나 웃고 있고 행복하다. 좋은 일만 있었을 리가 절대 없는데도. 


그렇게 17살은 나의 인생 최고의 한 해로 자리 잡았다. 어른들은 분명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을 교환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기억에서 사라졌을 보석 같은 한 때다.   


2~30대엔 남은 기록이 별 것 없다. 이것저것 자잘하게 있지만, 솔직하지 못하고 허깨비 같다. 나에게 솔직하고 자신 있고 친절한 시간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도 세상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살아내기 바빴고, 그마저도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잘 몰랐다. 어쩌다 기록을 남겨도 절망을 토해내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냥 매일이 고통인 와중에 일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다행히도 점점 더 좋은 오피스에서 일을 하고, 더 멋진 곳에 여행 가고, 더 맛있는 것을 먹게 되었지만 그 과정마저도 좋았는지 힘들었는지 어쨌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심정적인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들어가거나 관공서에 제출하는 인생 이벤트라면 남아 있지만, 어쩐지 그건 다 고통이다. 밑도 끝도 없이 고통을 쥐어짜서 얻어낸 금싸라기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뿌듯하지만 생각만으로도 아프다. 어딘가 분명히 존재했을 행복한 순간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정말 없었던 걸까 아니면 기록하지 못해 전부 날려먹은 것일까. 나는 왜 불행을 읇조리고 고통을 전시하면서 행복은 외면했을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세월이 야속하여 후회가 되려던 차에, 의도치 않게 카톡에 쌓여있는 대화들을 보았다. 디지털 교환 일기처럼, 전례 없이 행복했던 솔직한 순간들이 잘도 박혀 있었다. 앞으로 10년, 20년, 계속 보면 된다. 언제든 과거로 날 돌려놓을 테니. 그때 그 순간 속에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 테니. 




기록된 문자. 카톡창의 대화부터, 이메일, 소셜미디어, 개인 일기장, 출판을 꿈꾸는 책 등등이 얼마나 커다란 자산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은행 잔고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나의 마지막을 채우는 것은 생을 기록한 문자, 혹은 문자가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확장된 형태 일 것이다. 


시야도 흐리고 귀도 먹먹하고 머릿속에도 뿌옇게 안개가 낀, 미래의 나의 외장하드. 생이란 살면 살수록 조금씩 더 외로워지는 것인 듯 하지만, 나의 지난 인연과 사건의 기록과 젊은 나의 여정이 있다면 든든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이후 글을 쓰기는 계속 썼다. 주로 예전처럼 고통을 읇조리거나, 내가 아는 것을 공유하거나,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하며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글이었다. 그런 글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 이제는 나중에 호호 할머니가 되었을 때 보면서 반가운 희로애락을 느낄 법한 글도 쓰고 싶다. 당장 2023년은 내가 가장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었던 해임에도, 난 그에 대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밀스러운 민낯의 글들, 혹은 과하다 싶도록 감정적 거리가 가까운 다정한 글이 좋겠지 싶다. 분명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마음이 굳어있을 미래의 나다. 웃어도 좋고 울어도 좋다. 화가 난대도 상관없다. 생동감 있는 기억이 소환되어 감정의 풍요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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