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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돈은 좋다

by 박수민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2024. 2. 26. 월]


정월대보름이라 부스스한 머리, 반쯤 잠긴 목소리로 엄마아빠께 영상통화를 건다. 어느 날 유난히 화장이 잘 됐다는 이유로 한 번 해보았는데 딸을 얼굴을 보는 게 좋으셨는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자꾸 웃으셨다. 엄마아빠의 미소에 행복한 마음이 들어 곧잘 영상통화를 한다. 둘이서 조그마한 화면에 얼굴을 비추는 귀여운 모습을 보는 건 덤이다. 아빠가 핸드폰을 들고 있으니 엄마가 잘 보이지 않네 라고 생각하는 찰나 엄마의 손이 쑤욱 들어오더니 화면 가득 엄마가 보인다. 영상통화할 때 엄마는 얼굴이 가득 들어오게 핸드폰을 쥐고, 아빠는 여백이 많이 보이게 핸드폰을 쥔다. 두 분 다 자기 얼굴보다는 딸의 얼굴이 더 잘 보이게끔 한다는 점에서 같다.


엄마아빠와 이제 막 이야기를 하려는데 엄마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이모 오고 있어 나가야 해, 우리.”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나는 느긋하다.


“어디가?”

“외갓집”

“왜?”

“설에 못 가서 가려고”

“응. 안부 전해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는 외갓집에는 막내 외삼촌이 살고 있다. 트럭 운전수인 외삼촌은 집에 잘 계시지 않아 외삼촌이 계실 때 이렇게 가끔 들러 안부를 묻는 듯했다. 엄마의 아빠, 엄마도 보고. 외갓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효녀인 엄마는 일 년에 두어 번쯤 들른다. 시누이를 불편해할까 동생이 있는 날만 골라서 간다. 그런데 이건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내 동생이 보고 싶지. 안부가 궁금하긴 해도 내 동생의 짝이 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이렇게나 비좁은 마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오늘 엄마는 바쁘다며 쑤욱 들어온 것처럼 갑자기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아빠는 누워 딸의 얼굴을 찬찬히 보더니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하신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49분. 아직 오전이니까 나는 아침에 일어난 부지런한 딸이 됐다. 엄마아빠집에 가면 이상하게 잠이 잘 온다. 갈 때마다 섬유유연제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뽀송한 이불을 준비해 둔 엄마의 정성을 함께 덮고 오후 한 시까지 쿨쿨 잘도 잔다. 그런 나를 걱정하는 아빠의 목소리 “배고프겠다. 깨워서 밥 먹어야 하는 거 아니가?”. 아빠는 규칙적인 분이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밥을 먹고, 창문 밖에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옷을 입고 산책을 가신다. 그러니 오후까지 밥도 먹지 않고 자는 딸이 자꾸 민 신경 쓰인다. 엄마는 “놔둬요. 수민이 요즘 밤늦게 잔대” 그때 깨어있었는데, 엄마아빠의 말을 베고 조금 더 누워있었다. 따스하고 포근했다.


오늘은 엄마의 동생을 모두 만나는 날. 엄마와 이모는 자주 만나는데 오랜만에 외삼촌까지 만난다니 설레나 보다. 정이 많고 따스한 우리 엄마. 또 무언갈 바리바리 싸가겠지. 짐을 드는 건 아빠 몫. 수고할 아빠를 생각하며 둘이서 쓰시라고 용돈을 보내드렸다. 곧이어 아빠에게 온 메시지. “박수민(하트)고마워. 잘 쓸게” 역시 돈은 좋다. 평소 (하트)를 쓰지 않는 아빠다.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아빠가 기뻐하니 좋다. 용돈을 받은 엄마도 함박웃음을 짓겠지. 역시 돈은 좋다.


@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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