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엄마아빠는 농촌의 삶을 시작하셨다. 일주일에 5일은 도시, 2일은 농촌을 일컫는 5도 2촌이 각광받는다는데 우리 엄마아빠는 마음 내킬 때면 언제든 농촌으로 향했다. 아는 분의 자투리 땅에 깨와 대파를 심고,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수박을 심으셨단다. 그곳 밤나무 아래 그늘에 평상을 짜 넣고 간이 화장실까지 만드신 걸로 봐서는 농촌 체험이 아닌 귀농 체험판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퇴직하신 후로 서예에 빠지신 아빠였는데 요즘에는 서예학원도 빼먹으시고 농촌으로 달려가신단다.
봐. 이러니 눈에 밟히지
주말 엄마아빠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언니와 함께 농촌에 들렀다. 아빠는 한참 작물들에게 물을 주고 오시더니 “봐. 금세 얼굴에 생기가 돌잖아. 이러니 눈에 밟히지”라며 아빠가 심은 깨와 수박을 마치 자식인양 대하신다. 내 눈에는 물을 주기 전에도 싱그러웠고, 물을 주고 난 후에는 땅이 촉촉해졌고, 잎사귀에 물방울이 송송 맺혀 좀 더 반짝거릴 뿐이었는데 아빠 눈에는 생기를 한껏 머금은 듯 보였나 보다. 이런 마음으로 농작물을 키우니 서예보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아빠 마음의 우위를 점한 건 당연한 듯했다. 서예는 매일 아침에도 하니 한 번쯤 학원을 빼먹는다고 크게 실력에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었다. 근면성실의 아이콘인 아빠가 학원을 빠졌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울 뿐이다.
아빠는 농막에 진심이다. 오랜만에 보는 큰 딸과 작은 딸 그리고 사위까지 함께 농막에 간다니 아빠는 기분이 퍽 좋으셨다. 가면 평상이 있어서 시원하고 간이화장실을 두어 깔끔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셨다. 아빠 말대로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풍성한 밤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햇살이 찬란했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감동스러운 풍경이었다. 나와 달리 언니는 “저기 거미 기어가. 어쩌지?”하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옛날부터 언니는 벌레를 무서워했다. 둘이 살 때도 벌레가 나오면 나를 불렀다. 문제는 나도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거였다. 두 겁쟁이는 손톱보다 작은 벌레 하나를 두고 청소기를 웽웽 거리며 돌아다녔다. 벌레가 무서운 언니는 엄마아빠가 좋아하시니 따라온 거라며 세상 불편하게 앉아있더니 한두 시간 후에는 어느덧 내 옆에 누워 “왜 엄마아빠가 좋아하는지 알겠다”라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낮잠까지 잤다.
그 사이 아빠는 농작물을 돌보고 오셨는지 땀을 뻘뻘 흘리시고 계셨다. “옷이 땀으로 다 젖었어”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손바닥에 열을 내어 갖다 댔다. 아빠는 질색을 하시며 “덥다. 덥다. 하지 마라”라고 하셨다. 아빠를 골려주고 다시 누워 땀을 식히는 아빠를 한가로이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아빠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우리를 키울 때도 두 분은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아빠가 사줬다는 분홍색 모자를 고쳐 쓰고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드신다. 어릴 때 낮잠에서 깬 나를 달래던 때처럼 “일어났네. 우리 아가”라고 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