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주 아주 나쁜 버릇은 지각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지각의 역사는 고등학생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의 도움으로 간신히 지각은 면했지만,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는 것도 한몫했다. 늦은 날이면 발바닥에 불날 듯 와다다 소리를 내며 뛰었기에 지각은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학교가 멀었기에 서둘러 등교할 수밖에 없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어쩌다 한두 번 늦더니 고3이 되고부터는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0교시 시작인 8시, 아슬아슬 교실에 들어서면 항상 담임 선생님이 교실문을 막아섰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의 지각은 멈출 줄 모르자 선생님은 하루에 500원씩 벌금을 걷어가셨다. 나는 매일매일 500원씩 선생님께 드렸다.
학급 벌금으로 샀어. 근데 거의 수민이가 다 냈어
그러던 어느 더운 여름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학급 벌금으로 샀어. 근데 거의 수민이가 다 냈어. 모두 수민이한테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먹어”라는 선생님에 말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잘 먹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무더운 날 천장에 매달린 네 개의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만 흘러 보냈지만, 입안을 시원하게 해주는 아이스크림 하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때였다. 그때를 지나쳐 대학생이 된 나는 1교시는 거의 지각이었다. 그런데도 1교시 수업은 왜 그렇게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지각은 했어도 학교는 꼬박꼬박 열심히 잘 다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지각은 단순이 벌금과 마이너스 점수로 해결되지 않았다. 오전 내내 눈치를 살펴야 했고, 나의 평판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출근길이 유난히 예뻤던 회사는 출근 시간에 관대해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여름이면 해바라기를, 가을이면 단풍을 보며 여유로이 걸었다. 그 회사에 3년 가까이 일할 수 있었던 건 느긋한 출근 시간 덕분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며 걸었다. 지각을 하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회사는 늦어지는 퇴근 시간은 관심이 없었지만, 출근 시간 1분은 칼같이 지켜야 했기에 아침은 전쟁이 따로 없었다. 머리카락은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 대충 털고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마을버스가 도무지 오지 않아 결국 지각을 해버렸다. 그때의 나는 지각을 거의 하지 않는 성실한 일꾼이었는데도 그날 하루종일 뒤에 앉은 팀장의 눈치를 봤었다. 이만저만해서 늦을 것 같다. 죄송하다는 말을 메시지로 남겼는데, 읽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역시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나는 그때 "다음부터 일찍 다녀요”라거나 “내일은 늦지 마요”와 같은 당부의 말이라도 듣길 바랐다. 그 싸늘한 무관심이 무서웠던 나는 지각을 하지 않았다. 그 후로는 다행히 지각하는 버릇을 고쳤다. 가끔 1~2분씩 늦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제시간에 맞춰 움직이게 됐다.
나에게 "지각하지 말라"며 주의와 관심을 주던 사람이 사라지니 나는 오히려 지각을 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관심이 더 무섭다’라고 하나 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어 막막하게 눈치 보던 순간을 떠올리면 절로 눈이 번쩍 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