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헤어짐은 아쉽다지만 영영 이별이 아닌데도 마음이 저릿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 언니와 객지에서 둘이서 생활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때론 살벌하게 다투며 1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자그마한 원룸에서 시작해서 점점 방을 키우고 동네를 옮기며 6년 정도는 방 두 개짜리 주택을 구해 살았다. 각자의 방이 생기면서 우리는 조금 더 친밀해졌다. 개인의 공간이 있다는 게 제법 마음의 여유를 준 건지 아니면 지겹게 싸운 끝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는 사이좋은 자매로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언니와의 10년간의 동거를 끝낸 건 내가 결혼하면서부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어 그 많던 짐을 정리할 때 나는 대부분 신이 났던 것 같다. 반대로 언니는 대부분 눈물지었다. 평소 같으면 펄쩍 뛰었을 텐데 자신의 물건을 슬쩍 챙기는 나를 보고서도 언니는 순수히 내어주며 조용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삼켰다. 언니의 눈물에 얼마간 먹먹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신혼의 단꿈에 젖어 함께 사는 공간을 정리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언니보다 덜했다.
그렇게 떠나온 지 3년. 나는 여름과 겨울 그리고 친구들과의 약속이 생길 때면 언니가 있는 서울에 간다. 캐리어를 끌고서 언니네 초인종을 누른다. 언니의 취향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 발을 들일 때면 늘 낯선 기분이 들곤 한다. 내 짐이 하나도 없는 언니의 공간에 나는 들고 온 캐리어를 열어 짐을 옷방에 하나둘 쌓아둔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럼 언니는 늘 그렇듯 묵묵히 내 옷가지를 다시 정갈히 정리하고 내가 좋아할 법한 섬유향수를 뿌려준다. 칙칙 소리를 내며 뿜어지는 향과 함께 나는 비로소 언니 곁에 왔음을 실감한다.
무뚝뚝한 언니의 다정함과 상냥함은 몇 시간이 채 못 가지만, 메시지와 음성으로 만나던 언니가 곁에 있음에 안도감과 행복함을 느낀다. 언니는 대체로 나를 보며 “아 좀 귀찮네”라고 하지만 몸을 일으켜 동생의 이부자리를 봐주고 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살뜰히 챙긴다. 언니 옷장을 뒤지며 들고 갈 만한 옷이 없는지 살피는 얄미운 동생에게 이 옷 저 옷 꺼내어 입혀보며 기꺼이 자신의 옷을 동생의 캐리어에 차곡차곡 넣어준다.
한번 안아보자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며칠 동안 언니네 보살핌을 받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언니네는 매번 향기 나는 꽃과 싱그러운 식물이 곳곳에 있고 벽과 문 그리고 테이블에 언니가 좋아하는 그림이, 포스터가 걸려 있는 언니의 취향이 그득그득한 공간인데 말이다. 떠나기 전날 밤까지도 우리는 아쉬움 없이 함께 맛있는 것을 나눠먹으며 깔깔깔 웃었다. “한번 안아보자”라고 언니가 말하기 전까지. 언니의 품에 안기는데 이상하게 조용해 언니를 들여다보니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나의 눈과 마음에도 언니의 눈물방울이 옮겨 온다. 괜스레 언니네가 커 보이고 ‘이곳에서 언니가 또 홀로 있겠구나’하며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짐을 챙기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훔치며 언니 책상에 놓인 탐나는 물건 슬쩍 챙긴다. 그렇게 나는 눈물을 머금고 언니의 온기가 담긴 물건을 품고서 서울 나들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