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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만 쉬어요

숲숲숲

by 박수민

열한 번째 이야기 [2024. 1. 31. 수]


습관처럼 핸드폰을 쥔다. 그리고서 SNS를 둘러본다. 업로드한 콘텐츠 반응을 살피고 댓글을 달면 10분 정도 흐른다. 여기서 앱을 닫을 생각 없다. 다른 계정을 보고 또 다른 계정을 보고 시작점은 콘텐츠 관리였지만, 앱을 닫을 때면 최초의 목적을 잊는다. 한참이나 릴스를 보다 보면 무언가 아쉽다. 이제 유튜브 쇼츠로 넘어간다. 귀신같은 알고리즘은 내가 혹할 만한 영상을 끝도 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종종 찾아보는 유튜버가 한둘이 아니다. 이쯤 되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유튜브의 과도한 친절에 마음을 뺏겨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1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급하게 창을 끄면 밀려오는 생각들. ‘아, 그 시간이면 글 한 편은 더 썼을 텐데’, ‘어제 못한 홈트를 했을 텐데’ 그런 생각에 휩쓸리다 보면 이미 상쾌한 아침은 내 것이 아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스피커를 켜고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 재생한다. 나의 오랜 버릇이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듣고 듣고 또 듣는다. 내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우선 가사가 좋아야 한다. 가사를 먼저 듣는 나는 한두 구절만 마음에 들어도 바로 재생한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정독한 뒤 그래도 좋으면 며칠간 그 노래만 듣는다. 어느 날은 도입부 가사가 좋았는데, 어느 날은 역시나 후렴구의 가사가 좋다. 그러다 문득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궁금해진다. 나는 보통 처음에는 그 가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해질 만큼 듣다 보면 나 혼자 친해져서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듯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거다.


친구의 얼굴을 볼 겸 애써 껐던 유튜브 창을 다시 켠다. 그리고 내가 빠져 있는 가수와 노래를 검색한다. 그런데 추천 영상에 ‘한 시간 연속재생’이 떠 있으면 그만 기분이 상한다. 나만 알고 싶었는데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던 거다. 샐쭉한 기분으로 그의 라이브 영상을 본다. 이 가수가 라이브까지 잘해버리면 난 기꺼이 내 마음을 왕창 준다. 그리고 다시 그의 노래를 재생한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가수는 최유리 님이다. 그녀의 맑고 청아한 음색으로 부르는 <숲>은 듣고 또 듣고 다시 들어도 좋다. 이미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나를 베어도 돼” 부분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방심해서 들으면 심장에 무언가 확 꽂힌다. 그녀는 정말 내 귀에서 속삭이는 요정 같다. 난 요정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데 그녀의 음색은 이슬방울 같은 느낌이라 요정이라는 말이 퍽 어울린다. 그녀의 노래를 한번 들으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질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나 최유리 님을 향한 진득한 애정을 늘어놓고선 언제 그랬느냐듯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아이돌 노래는 스피커를 끄고 핸드폰으로 듣는다. 혹시나 쿵쿵 소리가 밑에 집까지 울리지 않을까 염려스럽기에 핸드폰 소리를 조금 더 키워서 가까이서 듣는다. 비록 현실에서 만날 수 없지만 그들은 지금 내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을 들키면 부끄럽지만, 다행히 난 혼자다.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왔다 갔다 하며 듣다 보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출근할 때는 다시 <숲>을 듣는다. 오늘도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나의 귓가에서 속삭여주는 그들 덕분에 마음은 감미로움이 넘친다.


나는 오늘도 디지털 디톡스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좋아하는 가수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난 오늘도 그들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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