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번 째 이야기 [2024. 2. 1. 목]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밥은 꼭 차려 먹는 사람이 있다.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이 나를 만든다는 말에 아주 공감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오늘만 해도 밥을 먹으려고 하니 밥이 없었다. 아무도 하지 않았으니 밥이 없는 건 당연하다. ‘어떡하지?’ 고민하는데 저기 식빵이 보였다. 달콤한 식빵 이래서 사봤는데 잼 없이 먹어도 맛있어서 놀랐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렸다. 향긋한 빵내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신나게 식빵 두 개를 먹고, 세 개째를 입어 물었는데 갑자기 먹기 싫어졌다. 하지만 이걸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게 뻔해 그냥 욱여넣었다. 냉장고에 있는 잼이 생각났지만, 밀가루를 먹으면서 당까지 얹을 수 없어 참았다. 평소에는 곡물빵을 먹는다. 그래서 잼의 힘을 조금 빌리는데 오늘은 단 빵을 먹으니 참아야 했다. 커피와 함께 먹으니 그래도 금방 먹어졌다. 나는 억지로 먹으면 속이 편치 않다. 체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속이 편하지 않았다. 커피에 빵, 맛은 있어도 빈속에 건강한 조합은 아니었다.
속을 달랠 시간 없이 출근했다. 분명 속이 불편했는데 4시 반쯤 되니 급격히 허기가 몰려왔다. 초콜릿이라도 있으면 삼키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물과 카페라테밖에 없었다. 라테를 들이켰지만 손만 떨릴 뿐 허기를 달래주지 못했다. 빵은 허기를 빨리 달래주는 만큼 금세 배가 고팠다. 오늘따라 먹을 게 하나도 없어 물과 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배고픔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지금 배고픈 건 거짓 식욕일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그렇게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누웠는데 엊그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눈에 띈다. 배우 양희경 님의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제목을 보고 뜨끔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한 장 한 장 해 먹는 밥의 소중함과 집밥을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마음에 대해서 쓰여있었다. 오늘 먹은 것들을 떠올리며 나는 내 몸을 위해 영양제 하나 먹은 거 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책에서 그녀는 부엌일이 하기 싫어 부엌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나는 부엌놀이는 별로다.
우리 엄마, 외할머니, 심지어 시어머니까지 요리를 잘하는데 언제쯤 나를 키운 혀의 맛을 재현할 수 있을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식탁을 채울 반찬은 금세 차려지지만, 내 몸과 마음 둘 다를 위로하는 식사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는 안 끓여주면서 꼭 사위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엄마표 김치찌개는 투덜대지만 언제나 밥 한 공기 뚝딱이다. 먹고 나면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내 국그릇에 담긴 고기며 버섯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걸 특별히 더 담으신 걸 깨닫고 마음까지 뜨끈해진다. 아무리 사다 먹는 반찬이 맛있어도 마음까지 데우진 못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직접 요리를 해 먹나 보다. 나도 주말에는 꼭 내 손으로 밥을 해 먹겠노라 생각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