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마주하며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도 혈압약 받으러 오셨죠?”
“네 잘 지내고 있죠.”
“혈압 재 볼게요. 이번에도 혈압 좋네요. 집에서 재는 혈압은 좀 어때요?”
“비슷하게 나와요. 높은 수치가 120~130 정도 해요. (고혈압 환자의 혈압 조절 목표는 140/90 이하이다)”
“그래요. 요즘 운동은 어떻게 해요?”
요즘 매일 주변 공원 돌고 있어요. 좀 춥긴 한데, 그래도 매일 나가요.”
“그래요. 잘 관리하고 있어서 저도 참 좋네요. 이번에 같은 약 드릴게요. 다음에 뵈어요.”
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환자와의 대화이다. 여러 번 오시는 환자 보면 반갑기도 하고, 나에게 관리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구나, 하는 뿌듯한 생각도 든다.
고혈압 당뇨 환자들은 병원에 와서 혈당이나 당뇨 수치를 재고, 생활습관에 대해 상담하고, 정기약을 처방받고, 필요하면 정기 검진을 예약한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고혈압 당뇨 등록사업을 시행하고 있어 65세 이상 고혈압 및 당뇨 환자는 진료비 및 약값을 다소 할인해 주고 있다. 나는 이게 굉장히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고혈압 당뇨 수치가 괜찮은 상태이더라도, 병원을 정기적으로 오는 것 자체가 노인 환자분들에게 이롭다.
첫 번째로, 병원에 오면서 주기적으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게 된다. 정기적으로 혈압과 당 수치를 재면서 내 수치가 괜찮은지 보고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의사를 보며 그때 그때 자신의 건강 문제 -허리 통증이라든지, 계속되는 복통이라든지- 를 상담할 수 있다.
또 하나 작지 않은 효과가 있는데, 혼자 사시면서 밖에 잘 나갈 일이 없는 분들은 병원 오는 것이 한 번의 사람 만나는 외출이 된다.
나 또한 지속적인 진료를 하며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다. 환자의 당 수치가 조절이 안 되면 같이 걱정하며 생활습관에서 바꿀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묻는다.
“000 님, 이번에 당 수치가 높게 나왔어요. 어떡하죠?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운동을 지금 어떻게 하세요? 앞으로 매일 1시간씩 걷기를 목표로 해 둡시다. 제가 적어두고 다음에 오실 때 꼭 물어볼 거예요.”
환자의 당 수치가 떨어지면 같이 기뻐한다.
“이번에 당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동안 열심히 하셨나 보네요. 제가 다 기분이 좋아요. 이렇게만 잘해 봅시다.”
우연찮게 고혈압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예방접종하기 전 혈압을 꼭 잰다. 그때 고혈압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환자분에게 혈압을 몇 번 다시 재보고 계속 높으면 고혈압약을 드시는 게 좋겠다고 말을 한다. 급작스러운 소식이기 때문에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고혈압 약을 한 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고혈압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이유는, 고혈압 약 자체가 의존성이 있는 게 아니라, 고혈압이 이미 우리 몸의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 먹어야 하는 거예요. 혈압이 높으면 우리 혈관을 망가뜨려요. 특히 작은 혈관, 눈, 심장, 뇌, 콩팥 혈관을 망가뜨려요. 혈압약을 먹으시면서 건강한 게 혈압약을 안 먹고 합병증이 오는 것보다 앞으로의 건강에 훤씬 이득이에요. “
이렇게 설득을 하면, 많은 경우 약을 드시기 시작한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은 참 무서운 질환이다. 이 질병들은 혈관, 특히 작은 혈관들을 망가뜨린다. 눈 혈관을 망가뜨려 시력을 떨어뜨리고, 뇌혈관에 무리를 줘 뇌출혈이나 뇌경색의 일으키기도 한다. 심장 혈관을 망가뜨려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고, 콩팥 혈관을 망가뜨리면 신장 기능이 떨어져 몸의 노폐물을 잘 못 거르게 된다.
현대 의학은 이런 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높은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는 약들을 개발했으며, 이 약들로 인해서 질병들부터 우리의 혈관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의사들은 이러한 약물들에 대한 전문가로, 각 약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의 지식을 토대로 환자들이 쓸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을 세운다.
그러나 약이 전부는 아니며, 의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이다. 약으로 수치들을 낮출 수는 있지만, 생활습관의 효과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질병에 대한 치료, 즉 약을 매일 챙겨 먹고, 집 밖으로 자꾸 나가고, 덜 짜게 먹고, 술 담배를 줄이는 것은 환자 자기 자신의 노력이다. 결국 환자의 건강은 환자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요즈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등을 진료하며 만성질환은 마라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는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지속적인 달리기를 한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의 옆에서 뛰는 코치다. 의사는 약물에 대한 상담을 하고, 환자가 건강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의학적인 조언을 한다. 이렇게 환자와 의사가 한 팀이 되어 건강을 향해 달려 나갈 때, 만성질환은 어찌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징, 귀찮지만 꾸준히 관리해 나가는 질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