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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Feb 06. 2022

자본주의의 맛

영화 [퍼스트 카우] 리뷰


감독: 캘리 라이카트

출연: 존 마가로(쿠키), 오리온 리(킹 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천받은 캘리 라이카트 감독의 새 영화 [퍼스트 카우]를 보러 간 날이었다. 그날은 어쩌다 보니 극장에 5분 늦게 도착해서 상영관에 들어갔을 때 영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스크린에는 강물 위로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를 실은 거대한 배가 조용히 지나가고, 강가에서 개와 산책을 하던 한 여자가 땅에 묻힌 백골을 발견했다. 나란히 누운 두 구의 백골.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순간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면서, 서부 개척 시대의 거친 사냥꾼 무리와 그들의 요리사인 쿠키가 나타났다. 따뜻한 컨트리 풍 음악을 배경 삼아 쿠키는 세심한 손길로 버섯을 채취하고 뒤집어져 죽은 척하고 있던 도마뱀을 조심스럽게 원위치 해 주었다. 그의 다정한 손길이 러시아인들에게 쫓겨 숲에 숨어서 떨고 있던 킹 루를 구해주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들은 친구가 된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 쿠키와 사업 수완이 있는 킹 루가 훔친 우유로 빵을 만들어 돈을 버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당연히 둘 중 한 명이 상대방을 배신하고 돈을 훔쳐서 달아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첫 부분에 나란히 누운 백골이 그들임을 짐작하면서 과연 그들이 어떻게 그 강가에 가서 눕게 될지 궁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들이 만들었던 빵의 재료가 팩터 대장의 암소로부터 훔친 우유였다는 것이 들통나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서로 헤어진 그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아, 이렇게 해서 서로 배신을 하게 되는구나. 둘 중 한 명이 나무속에 숨겨둔 돈을 훔쳐서 달아나겠지?’라고 짐작을 했다.


내 예상대로 쿠키를 버려두고 강을 건너 도망쳤던 킹 루가 먼저 돌아오고, 그는 뒤를 쫓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숨겨둔 돈주머니를 꺼내 든다. 그리고 잠시 후 뒤늦게 돌아온 쿠키가 엉망으로 망가진 텅 빈 집을 둘러보는 순간, 창 너머로 먼저 떠난 줄 알았던 킹 루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는데, 나는 왜 그 순간을 돈 때문에 서로를 배신하는 장면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은연중에 나의 마음속에서는 돈이 우정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이 돈과 우정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라이카트 감독의 의도일까? 영화 내내 그들의 따뜻한 우정을 보면서도 배신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내가 자본주의 속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인 것일까? 



함께 도망치던 그들이 드디어 강가에서 쉬어가는 장면에서도, 편안하게 누워 잠든 쿠키 옆에 돈주머니를 들고 앉은 킹 루가 언제든 홀로 도망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서로 머리를 기대어 나란히 누운 백골을 보았고, 영화 내내 둘의 동행을 보면서도 나는 왜 그들의 우정을 백 퍼센트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백골이 쿠키와 킹 루 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언제든 그들이 서로를 배신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들의 우정이 ‘돈’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노동과 그 노동의 결과물 그리고 그 결과물을 판매함으로써 얻는 화폐(또는 화폐에 상응하는 물건들)를 보여준다. 그들의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되는 노동(열매를 채취하거나 빵을 굽는)과 그것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필수적이다. 



늘 밀가루에 물만 섞은 빵을 먹던 사람들에게 우유로 반죽한 빵의 맛은 먹는 사람에 따라  “엄마의 맛” 또는 “런던의 맛”으로 표현된다. 만약 내가 그 빵을 먹는다면 나는 그 빵의 맛을 “자본주의의 맛”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밋밋한 밀가루 빵에 비하면 꿀을 바른 자본주의의 빵 맛은 기름지고 풍요롭다. 단지 홍차에 우유를 타서 먹고 싶다는 이유로 오리곤 지역에 처음으로 도착한 소(심지어 사람보다도 더 귀한 혈통이다.)는 자본주의 그 자체이다. 인디언 지역에서 생활하면서도 런던과 파리에서 유행하는  ‘카나리아 옐로와 터키 레드’ 색상을 찾는 팩터 대장을 보라. 




그런 이유로 나는 이 따뜻한 우정 영화에서 그들의 우정을 신뢰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내 배신의 순간을 기다리다가 영화의 마지막 그들에게 정해진 그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영화 시작부터 내내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서야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 자본주의의 맛 따위는 잊어버리고 따뜻하고 충만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리뷰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영화 시작 시간에 5분 늦으면서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 중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문구였다. 황금을 최고로 여기던 그 시대에도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정’이었다. 이 글귀를 읽은 뒤에 영화를 보았다면 그들의 우정을 조금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속 모든 장면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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