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리뷰
개봉: 2021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도코(미사키),
오카다 마사키(다카츠키), 키리시마 레이카(오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한국의 대형마트에 간 미사키가 식재료를 구입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스크를 쓴 채로 물건을 산 그녀는 가후쿠가 탔던 빨간 자동차에 타는데 차 안에는 윤수 부부의 강아지가 반겨준다. 코로나 이후 2년이 경과한 시점, 일상에서는 마스크가 너무나 친숙해졌다. 처음 답답하게 느껴졌던 마스크는 이제는 오히려 쓰지 않으면 어색하고 허전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일까, 마스크를 쓴 미사키의 모습은 영화라는 다른 세계에 있던 나를 바로 현실로 끌어내렸다.
예술가인 가후쿠와 오토의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오토의 불륜이 밝혀지기 전까지, 아니 심지어 불륜이 밝혀지는 그 순간마저 아름답다.), 그리고 각국의 언어와 수어로 연기하는 바냐 아저씨, 눈 덮인 산 위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프고 어두운 과거의 비밀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나누는 가후쿠와 미사키. 그들의 모습은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상처는 처절하게 바닥을 뒹구는 아픔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고통이었다.
미사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움직이는 가후쿠는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으나,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동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듣게 되는 오토의 목소리도 현실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느 때는 시간의 경계도 흐릿하다. 미사키의 고향 마을에 방문하는 길은 어느 순간 밤이었다가 다시 낮이 되었고, 다음 순간에는 밤이 되어 있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여정이라고 말했는데, 두 번의 밤을 보내고서야 도착한 것 같은 그곳은 갑자기 겨울의 풍경이다. 이러한 꿈같은 상황의 연속에서 미사키의 마스크 쓴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보고 있었던 모든 장면들이 어쩌면 미사키의 시나리오 속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후쿠가 아끼던 빨간 자동차를 미사키에게 선물로 준 것이 아니라, 원래 그녀가 오랫동안 타던 자동차와 그녀의 반려견이 등장하는 각본을 쓴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일본에서 미사키의 뺨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던 긴 상처 자국은 한국에서 마스크를 벗은 순간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가후쿠와 만남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료하고 미사키의 아픈 과거의 징표처럼 남은 뺨의 상처 자국마저 희미하게 지워졌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결말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이 영화에 나만의 상상력을 더하고 싶어진다.
가후쿠와 오코의 완벽해 보이던 관계가 깨어질 것 같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던 그 순간 오코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들의 이별이 지연된다. 가후쿠의 죽은 딸의 나이와 같은 나이인 미사키, 그리고 바냐 역할을 맡는 것을 주저하던 가후쿠가 결정적인 순간 다카츠키가 구속되면서 바냐를 연기하게 되는 것.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의 연속이다. 만약 이것이 미사키가 쓴 시나리오라면,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자동차 뒷좌석에서 앞 좌석까지의 거리, 상대방이 하는 말이 궁금해져서 수어를 배운 윤수씨의 행동, 딱 그만큼의 마음으로도 서로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작은 위로와 관심으로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고통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괴로운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또 하루를 살아나가는 것. 평온한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견디고 또 견디어 내는 것. 괴로운 순간 속에 잠시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인연과 관계를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버텨내야 하는 것. 이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주는 강력함을 통해 우리는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