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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05. 2024

여름, 북유럽 03

여름, 북유럽 03


나는 J의 자격이 없다. 아침 일찍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며 한갓진 시간을 보낸 뒤 미술관에 가는 간단한 오전 일정을 세웠는데 방문하려고 한 곳들의 오픈 시간을 모조리 틀리게 알고 왔다. 오늘은 토요일. 여기는 일하는 주중과 쉬는 주말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다는 걸,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곳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짜 온 일정을 시간 별로 반드시 소화해 내야 하는 J가 아니면 아니란 게 다행일까. 메모장에 적어놓은 리스트를 지우거나 옮기느라 분주한 아침. SNS에서 본 예쁜 곳, 일단 저장해 둔 관광지, 혹시 몰라 저장해 둔 식당 등이 규칙 없이 저장된 구글 지도에서 토요일임에도 비교적 빠른 9시에 오픈하며, 마침 가려고 한 미술관과 가깝기까지 한 카페 한 곳을 찾았다.


토요일 오전 8시는 부지런한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다. 배낭을 메고 바쁘게 걷는 사람, 관광지의 한산함을 사진에 담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등. 어떤 여유는 인위적인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몇 백 개의 동그라미가 찍힌 구글 지도에서 찾아낸 카페는 튜브홀멘Tjuvholmen의 오펜트 바케리åpent bakeri. 오슬로 내에 여러 지점을 가지고 있는 유명 베이커리 카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른 시간인데 동네 주민들이 모임이라도 하는 듯 수다스러움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너무 이르게 온 거 아닐까 싶었는데 아침 식사용 빵을 사러 온 듯한 편안한 차림의 사람들이 꽤 줄을 서 있었다. 계산대와 연결된 매대에 진열된 빵을 구경하니 여러 빵들 중 두 개의 샌드위치가 눈에 띄었다. 겉바속촉 사워도우 빵에 풍성하게 들어간 속재료. 생김새 자체가 "맛있겠지?"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낯선 언어들 속 유일하게 알아본 단어 아보카도. 내 주문 차례가 되어 아보카도라 쓰여있는 샌드위치 옆의 것을 주문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내고, 아이팟을 정리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무는데. 아뿔싸. 닭가슴살 샌드위치다. 모르는 단어로만 점철된 비밀 같은 샌드위치를 먹어보나 했는데 아보카도보다 더 익숙한 재료를 고르다니. 그 와중에 맛있다며, 실실 웃으며 먹었다. 남은 샌드위치를 포장하러 카운터에 향하면서 주민들로 보이는 테이블 위를 슬쩍 훔쳐봤다. 대부분 동그란 계피 롤빵인 카넬볼레kanelbolle 먹고 있다. 다음엔 저 빵을 먹어 봐야지. 


글 조금 쓰고, 바깥 구경하고 했더니 어느덧 한 시간을 넘게 있었다.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건너편 다리엔 포즈를 취하는 친구를 찍는 또 다른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날이 좋은 여행지엔 서로를 담는 아름다운 풍경이 흘러넘친다.


얇은 블라우스 하나에 긴 바지를 입었는데 바람이 무척 차다. 반팔과 경량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날씨. 추위를 좀 덜 타는 편인데도 이런 바람을 내내 맞으며 바깥을 돌아다니기엔 무리일 것 같아 근처 SPA브랜드에서 청자켓을 하나 사서 입었다. 오펜트 바케리åpent bakeri에서부터 쇼핑몰인 아케르 브뤼게Aker Brygge 등이 있는 튜브홀멘Tjuvholmen은 여유 있는 동네인 듯했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차들도 비싼 차들 뿐이고, 테라스가 예뻐 보여 검색한 호텔의 1박 금액은 내가 묵는 호텔의 두 배에 달하는 곳이었다. 평균 복지가 높은 수준의 도시도 이런 차이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하고 마는 걸까.


미술관 오픈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동네를 산책하는데 뭔가 위화감이 든다. 대체 무엇 때문이지 하다 깨달았다. 한 발 내딛으면 바로 바다인데 안전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안내 문구도, 안전바도, 약간의 방지턱도 전혀 없다. 잠깐 한눈팔면 그대로 바다에 빠질 것 같은 낭떠러지가 곳곳이다. 모두 조심하기에 괜찮은 걸까, 아니면 바다에 빠져도 수영쯤은 거뜬히 할 수 있는 걸까, 바다를 품고 산다는 건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일까. 유독 검고 짙어 수심을 알 수 없는 이곳의 바다. 수영을 전혀 못 하는 내겐 영영 다다르지 못할 미지의 경계다. 




튜브홀멘의 끝자락에 위치한 아스트럽 펀리 미술관Astrup Fearnley Museet은 오늘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방문지였다. 멀리서부터 삐쭉 솟은 흰 기둥들을 보니 역시 파이프 관을 밖으로 내보인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의 손길답다 싶었다. 


현대 미술은 역시 어렵구나. 나는 그저 이 작품의 형태 자체만을 감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이러면서 미술관을 좋다고 오는구나, 하며 전시관을 돌다 2층으로 향했다. 그러자 바다가 단박에 배경으로 기능하는 한 면 전체가 창으로 된 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마치 블루 카펫을 세로로 깔아놓은 듯한 형체가 있었다. 홀린 듯 다가가니 파란 셀로판지로 두른 사탕 무더기다. '어? 나 이거 본 적이 있는데?' 싶어 그 자리에서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니 역시.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북토크에서 저자가 현대 미술을 설명하는데 예시로 들었던 작가였다. 


에이즈로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인 로스에 대한 사랑을 작품에 담은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로스의 몸무게와 같은 양의 사탕을 미술관에 쌓아둔다. 관객들은 그 사탕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 로스가 소멸하듯 줄어드는 사탕의 무게. 다음날이면 다시 미술관 직원이 원래 무게에 맞게 사탕을 채운다. 없어지면 채우고, 또 없어지면 채우고. 그렇게 작품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매일 재생된다. 


펠릭스의 사탕 더미의 핵심은 점차 줄어드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채워지고 쌓인다는 점이다. 살다 보면 로스를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그를 향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것처럼 -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중


아스트럽 펀리 미술관의 사탕 무더기는 무제란 제목 뒤에 블루 플라시보Blue Placebo란 부제가 붙어 있었다. 설명란을 읽으니 이곳의 파란 사탕은 펠릭스와 로스의 무게를 합친 무게로, 예술가의 상실과 인간의 일시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한다. 난치병 환자들에게 처방한다는 가짜약 플라세보, 그 허망함의 이름을 담아.


미국의 이중적인 면에 대한 고발이나 꿈속을 재현시켜 놓은 것처럼 초현실적인 유니콘 설치물 등 현대 미술을 잘 몰라도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작품들이 무척 많았지만-작품의 형태 자체만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해 주듯- 무엇보다도 이 미술관 위치가 사기 그 자체였다. 어떻게 수영복 입고 바로 뛰어들어갈 수가 있는 바다가 미술관의 배경이 되어줄 수 있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가 닿고 싶었던 실재(實在)의 사랑은 이 작품이 맞닿아 있는 창 밖 너머에 가볍게 숨 쉬고 있었다. 


아쉽지 않게 미술관을 다시 한 바퀴 돈 뒤 굿즈 샵에 왔다. MODERN ART = I COULD DO THAT + YEAH, BUT YOU DIDN’T. 현대 미술은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다”와 “맞아. 근데 넌 안 했잖아”의 합이라니. 위트가 넘치는 문구를 담은 재미있는 상품들이 많아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아쉽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기회가 박탈되어 버린 상실감이 이런 걸까. 


점심을 맞은 토요일의 오슬로는 관광 도시 그 자체였다. 크기가 짐작되지도 않는 대형 크루즈가 부두에 정박해 있고 그 덕인지 현지인들보다 관광객들의 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오슬로를 여행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오슬로 내에서 가야 할 곳을 정할 때에도, 일부 여행기를 미리 읽었을 때도 이런 분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세계는 얼마나 넓은 것인가. 이걸 한 번 알고 나면 여행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에 왔으니 반드시 먹어야 하는 건 당연히 연어. 역시 세계 최대 생산국에서 먹어봐야 했다. 식당 이름부터가 연어 그 자체인인 더 살몬The Salmon이 점심을 먹기 위해 예약한 곳이었다. 예정 시간보다 살짝 일찍 도착했더니 아직 테이블이 준비되지 않아 내부에서 조금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해왔다. 아량 넓은 여행객은 그쯤이야 쿨하게 수용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 식당 안에 연어 박물관이 꾸려져 있었다. 재현된 선박의 조종석에선 여러 개의 모니터로 연어 잡이의 영상이 재생되고, 한쪽 벽은 연어 수출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데다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연어 잡이의 루트를 형상화해 놓은 조형물까지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식당 이름이 연어 그 자체일 수 있는 것일까.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다 보니 점원이 직접 찾아와 테이블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애피타이저로 굴을, 메인 식사론 노르웨이식 와플에 올린 연어란 메뉴를 시켰는데 굴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와플이 쫀득하고 짭조름한 스타일이라 마치 연어덮밥을 먹는 것 같았다. 역시 한 잔에 2만 원에 가까운 와인도 한 잔 추가. 여기 사람들이 왜 와인 한 잔을 시키고도 그렇게 오래 대화를 나누는지 그 비밀을 드디어 알게 됐다. 이 와인 값이라면 응당 그럴 수밖에 없다.




칼 요한 거리 끝자락에 있는 노르웨이 왕궁은 여름 일부 기간 동안 투어가 가능하다. 때마침 이번 일정에 왕궁 방문이 가능했고, 그중 영어로 진행되는 투어 시간을 확인해 놓았었다. 식당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도착하니 왕궁 앞마당에 무대 설치가 한창이다. 무슨 행사를 하나. 그러다 가림막으로 걸려 있는 플랑카드를 보니 일요일 밤 8시 30분에 오슬로 필하모닉 공연이 열린단다. 등받이 없는 긴 의자가 많지 않게 놓인 거 보니 유료 공연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오슬로 필하모닉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하니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공연이 무료로 열리며, 필요할 경우 개인 의자를 챙겨 와서 관람하면 된단다. 여기서 말하는 일요일 밤은 바로 내일 밤. 모레 오전 도시 이동을 할 예정이라 내일 저녁은 짐을 정리하며 쉬려고 했는데 이걸 보면 되겠구나. 생각하지 않았던 서프라이즈 이벤트까지 선물하는,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도시라니. 


노르웨이로서 지닌 짧은 역사를 들으며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지도 않은 내부를 둘러보는 투어였다. 독립기념일에 로열패밀리가 시민들에게 인사하러 나온다는 2층 발코니는 칼 요한 거리가 일직선상으로 내려다보이는 뷰를 가지고 있었다. 왕궁 자체의 물리적인 거리가 시민과 무척 가깝다. 여긴 사회적 거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알고 있는데 공적인 거리는 이렇게 가깝구나. 노르웨이 왕궁은 촬영이 불가해 내부는 눈으로 담을 수밖에 없어 투어를 마치고 나오며 외관을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 


바로 근처가 호텔이라 그대로 방에 들어와 조금 누워 있었다. 그러다 이대로 까무룩 잠이 들 것 같아 후다닥 정리하고 나왔다. 늘 조금씩 부지런을 떤 것을 절대 후회할 일은 없다.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에 대해 후회할 뿐이다. 그것이 꼭 여행이 아닐지라도.


뭉크가 <절규>를 그린 언덕이라니.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 없다. 당연히 가야만 했다. 그림 속 풍경을 생각하면 그 위치가 오슬로 어느 교외 지역이거나 오슬로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마을이지 않을까 했는데 호텔에서 트램으로 20분이면 도착하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오슬로 병원 정류장에서 하차했더니 시공간을 이동한 듯 너무나 다른 풍경이었다. 눈앞엔 사람의 손을 많이 안 받은 것 같은 가파른 산이 있고, 옆으론 그라피티와 벽보로 지저분하게 장식된 낮고 오래된 건물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게다가 지도는 눈앞의 가파른 산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라고 지시한다. 이게 맞나 싶은데 이따금씩 한 두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지도에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가 볼 수는 없지. 한숨을 훅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이건 분명 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봐 언덕이라고 이름 붙인 걸 거다. 느닷없는 산행을 하며 산이라고 했으면 물이라도 챙겨 왔지 싶었다. 조금 올라가다 멈춰 쉬고, 조금 올라가다 멈춰 쉬고. 그 시절 대체 어떤 길이었길래 뭉크는 여길 지나가다 자연의 비명을 들은 걸까. 10분 넘게 오르자 여기가 <절규>의 배경이라고 친절히 알려주는 표식을 만날 수 있었다. 직사각형의 포토 프레임 앞에서 가뿐 숨을 고른 뒤 그제야 제대로 풍경을 눈에 담았다.


사실 <절규>의 배경이 되는 곳이란 사전 지식이 없었으면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곳이었다. 당연하게도 당시와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바뀌었다. 저 멀리 해안가가 흐르는 땅의 모양이라던가, 정박한 배의 모습들은 시야를 가리게 비쭉 솟은 나무들로 보이지 않고, 사이사이 낮게 솟은 오슬로 도심의 건물들만 보일 뿐이었다. 그중 가운데에 우뚝 선 저 어두운 색 건물이 바로 뭉크 미술관. 뭉크의 <절규>는 정신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누이동생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길에서 들린 자연의 비명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나는 이곳을 오기 위해 오슬로 병원 정류장에서 내렸고 이 자리로 인해 뭉크는 <절규>를 그렸고 나는 지금 뭉크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다. 삶은 너무나 부조리하다. 


<절규>만 알고 찾아왔고, 이 짧은 산행조차 허덕이는 체력이라 이 산을 더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내려와 칼 요한 거리로 돌아왔다. 여길 벗어나질 않는구나. 일요일에 혹시 문을 닫을까 싶어 서둘러 기념품을 비롯한 쇼핑을 마쳤고 -그리고 이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려다 상당한 규모의 야외 좌석을 갖춘 가게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주 간단한 스낵에 주류를 주로 파는 간이 바Bar 같은 곳인 듯했다. 몇 걸음만 가면 호텔이지만 산도 탔으니 시원한 한 잔은 마셔줘야지. 국회의사당과 칼 요한 거리와 저 멀리 노르웨이 왕궁이 보이는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모히토를 거의 원샷하듯 마셨다. 


뭉크는 이곳을 생기가 넘치는 봄날의 풍경으로도, 사람들의 불안과 고독의 배경으로도 선택했다. 뭉크에겐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게 한 칼 요한 거리인데 내겐 여름의 축복이 가득한 곳이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모히토가 금세 바닥을 보여 브루클린 라거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가격보다 마시고 싶은 걸 우선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이제 겨우 오후 여섯 시가 넘는 시간이지만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 눈 뜨는 게 무섭게 나갔다가 도저히 피곤해 견딜 수 없을 때 겨우 들어오고도 아쉬워하던 때와 다르다. 무슨 차이일까. 관광 스폿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일까, 오랜만에 노트에 손으로 글을 쓰며 다녀서일까, 아직 여행의 초입이라 그런 걸까. 이렇게 하루가 아쉽지 않은 여행을 최근 들어 해 본 적이 없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노을도 보지 못했는데, 이제 고작 오후 여섯 시인데 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루가 충분히 충분했다. 정말 충분했다.


그러므로 써야 했다. 이제 겨우 조금의 날들을 보냈지만 분명 이번 여행은 매일 이렇게 충분할 것 같으니, 이 여행의 매일매일을 글로 써보면 그 이유를 알 수도 있겠지. SNS를 켜 여행 매일의 이야기를 하루씩, 글로 남겨야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했다. 알코올 두 잔의 힘으로 선언했으니, 반드시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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