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Sep 06. 2024

여름, 북유럽 04

여름, 북유럽 04

여름, 북유럽 04

여길 이제야 왔네. 호텔을 조식 포함으로 예약했어도 워낙 카페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 매일 새로운 카페를 찾아 아침을 먹었는데. 일요일인 오늘, 대부분의 카페가 늦게 열어 간단한 요기라도 하자 싶어 찾은 호텔 조식당이 세상에 이렇게 넓고 예쁜 곳이었다니. 섹션별로 다양하게 담긴 음식들에 눈이 돌아가지만 일단 침착해야 한다. 호밀빵과 베이컨, 연어 등을 담고 커피를 내려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담아놓은 모양새 자체가 예뻐 -어쩜 빵을 무심히 쌓아놓은 것마저 예쁜지- 이것저것 담아와 다양한 색깔과 질감으로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옆 자리의 사람을 보니 과카몰레 바른 빵에 연어를 올려서 먹는다. 다음 접시는 저거다.


12시에 예약해 둔 식당이 있는데 그렇게 아침부터 과하게 먹어버렸다. 점심을 취소하기엔 타이밍이 늦었고, 노쇼는 내가 허락지 않으니 그렇다면 배를 꺼뜨리는 수밖에 없다. 뭉크가 살았다는 그린네르로카Grünerløkka 지역까지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뭉크가 살던 때의 그린네르로카Grünerløkka는 주로 노동자와 이민자들의 주거 공간이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재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소문난 맛집, 개성 있는 옷집, 인테리어 소품점 등 다양한 예술 관련 장소들이 모여 있어 예술가들과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오슬로의 중심 지역이라는 설명에 일요일에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이었다. 


호텔을 나와 오슬로 중앙역을 지나쳐 조금 걸었을 뿐인데. 넓은 도로가 조금씩 좁아져 트램 왕복이 겨우 가능할 것 같은 좁은 도로로 이어졌고,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더니 그라피티가 그려진 건물이나 색색의 작은 상점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마치 차원은 이동한 양 어느 순간부터 그린네르로카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정말 집에서 쓴 물건을 직접 가지고 나온 듯한 작은 규모의 벼룩시장을 두어 곳 구경했고, 그런 나를 대형견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이 왕왕 스쳐갔다. 내가 그동안 오슬로의 일부, 그것도 대부분 바닷가 근처에만 있어놓고 오슬로의 전부를 본 양 하고 있었구나. 도시는 걸음을 옮긴 만큼, 거리를 넓힌 만큼의 시야를 보여준다.


오슬로 시내를 돌아다니면 곧잘 보이는 카페 브랜드 Kaffebrenneriet의 그린네르로카 Markveien지점에 왔다. 야외 자리가 조금 비어 있었는데 바깥에 앉기엔 약간 쌀쌀해 내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온 뒤 밀린 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를 꺼냈다. 몇 문장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카페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시 몇 문장을 쓰고, 원두를 가는 소리를 듣고.


나는 보기완 다르게 -대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하지만- 모두가 놀랄 정도로 집순이다. 퇴근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향하고, 주말에는 아주 큰일이 아닌 이상 절대 약속을 잡지 않는다. 대학 시절,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내내 집에만 있었던 적도 있다. 대체 집에서 뭐 하냐고? 나만의 동굴 같은 집 안에서 나는 책을 조금이라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언어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집안일이라도 한다.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는 편이 못되어서 TV를 보더라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찾으며 본다. 그러니까 무엇을, 끊임없이, 내내, 부지런히 한다. 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가장 죄악시하는 문장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는 걸까. 뭐라도 자꾸 해야만 하는 사람에게 쉼의 여유를 계산해 놓을 수 있는 여행을. 




뭉크가 열두 살 때 이사와 스물일곱까지 살았다는 집의 주소는 투르발드 마이에르Thorvald Meyers 거리 48번지. 카페에서 나와 그곳이 어디쯤일까 가늠하며 찾아가는데 아침 햇살을 차르르 하게 받으며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 공원이 나왔다. 지도를 확인하니 여기는 올라프 뤼에 광장Olaf Ryes plass이란 이름이었고, 이 공원을 바로 정면으로 마주한 어두운 회색 건물이 바로 뭉크의 집이었다. 당시엔 공터나 다름없던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분수대 앞에서 까르르 웃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으로 바뀌었다. 뭉크가 살던 집 앞으론 트램 정류장이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식당과 카페는 이 공원을 중심으로 수 십 곳이 영업 중이다. 뭉크의 아버지는 아무래도 부동산 장기 투자에 굉장한 소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네가 예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린네르로카는 베를린 노이쾰른Neukölln이나 시카고 웨스트 루프West Loop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했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 동네만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있는. 이들 틈에 완벽히 동화되긴 어려워도 이곳의 느낌은 흉내 내고 싶은. 작은 테라스에 소파를 가져다 놓은 집을 보며 이런 곳을 숙소로라도 얻어 살면 어떨까 싶지만, 그렇지 않아야 이 동경을 계속 간직하리라는 것을 안다. 이런 동네는 올 때마다 새롭고 좋은 곳, 살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여길 익숙하게 매일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린네르로카의 네드레 폭포에 가깝게 붙어 있는 식당 Nedre Foss Gård는 SNS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에 예약을 한 식당이었다. 작은 정원에 놓인 철제 테이블, 그곳에서 즐기는 주말의 브런치. 북유럽의 로망을 실현시키기에 이곳만 한 곳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분명 예약한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야외 테이블이 전부 치워져 있어 정원이 휑하다. 주방으로 보이는 건물의 문이 열려 있길래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마치 네가 본 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듯 아주 넓은, 그것도 아주 고급스럽고 화려한 식당의 홀이 나타났다. 혹시나 하고 프런트의 직원에게 예약한 시간과 이름을 말하니 바깥 정원이 아닌 아주 고급스럽고 화려한 식당의 내부로 자리를 안내한다. 이런 곳인 줄 몰라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 2인의 식기 중 마주한 1인의 식기를 치우는 직원의 손을 머쓱하게 바라봤다.


메뉴를 시킨 뒤 주변을 돌아보는데 아이를 안은 여성과 두 명의 여성이 분주하게 다니며 무언가를 준비한다. 헬륨 풍선 다발도 띄우고, 테이블 자리도 열심히 정리한다. 먼저 나온 식전 빵에 샤블리를 마시며 그들을 관찰했다. 풍선의 메시지를 보니 곧 출산을 맞이하는 친구를 위한 파티인가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석자들이 도착했고, 서로 반갑게 비쥬하고 허그하며 인사를 나눴다. 어느덧 네 다섯 테이블 정도 되어 보이는 자리가 꽉 찼다. 곧 오늘의 주인공으로 되어 보이는 여성이 나타났고, 여성은 금방 울음을 터트린 채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곧장 웃음을 되찾은 얼굴로 가운데에 앉아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12시에 딱 맞춰 식사를 예약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지 이 넓은 홀에 나 혼자 와인을 기울이고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들이 정면으로 보이는 좌석이라 본의 아니게 너무 잘 보여 그저 보았을 뿐이다. 꼭 미드 보는 것 같다, 영화 같다, 하는 중에 깨달았다, 이 위화감을. 참석한 모든 여성의 헤어스타일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진 금발이나 갈색머리고, 아이를 동반한 여성을 포함해 모두 아주 날씬하고, 모두 아주 잘 꾸민 차림을 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또 깨달았다. 점점 채워지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서빙을 하는 직원들도 모두 하나같이 백인이라는 것을.


여행을 혼자 하는데 익숙해 어느 곳이든 혼자 가는 것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이런 혼자임은 굉장히 생경했다. 그들만의 세계를 침투해 버린 기분.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에 발을 들인 기분. 궁극엔 얼른 여기를 나가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급하게 식사를 마쳤다. 따뜻한 식전빵에 수제 버터도, 메인으로 시킨 비프 타르타르도, 곁들인 샤블리도 전부 기대 이상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맛이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라는 팀 웬델보Tim Wendelboe에 들러 비싸고 양 적은 아이스커피로 소화를 촉진한 뒤 다시 뭉크의 집으로 돌아왔다. 목적지는 비켈란 공원. 뭉크의 집 앞에서 타는 트램으로 갈아타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 첫날 기념품 샵에 들러 마그넷과 엽서를 고르는데, 엽서의 상당수가 찡그리고 있는 아이의 조각상과 막대 기둥 모양의 조각 등을 담고 있었다. 우리 도시의 대표 이미지가 담기는 게 기념엽서인데, 뭉크나 오슬로 시청사, 노르웨이 왕궁보다 이 조각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그때 처음으로 검색해 북구의 로댕이라는 노르웨이 조각가 비켈란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각으로 담았으며, 그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는 공원이 오슬로 시내에 있으며, 기념엽서에서 본 조각상들을 그 공원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트램 창가에 앉았다. 아침에 내가 걸어왔던 거리를 정확히 반대로 거슬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공원 입구에 들어가니 아주 잘 관리된 듯 잔디와 이름 모를 나무들, 색과 종류 모두 다양하게 심어진 장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살짝 불면 황홀할 정도의 장미 향이 은은하게 몸을 감싸왔다. 저마다 잔디 위에 자리를 깔거나, 벤치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지나치니 금세 양 쪽에 조각상이 늘어서 있는 다리에 다다랐다. 저 멀리 엽서에서 본 막대 기둥의 조각도 보였다. 


다리 양 옆의 조각들을 고개를 돌려가며 보다 알았다. 보통 이런 다리의 양 옆에 동상들이 늘어서 있다 하면 대부분 종교나 신화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여긴 완벽히 인간이다. 비켈란의 조각들은 서로를 돌보고, 달래고, 싸우고, 장난치고, 웃고, 부대끼는 진짜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그게 못 견디게 좋았다. 스스로가 당황스럽게 살짝 울컥할 정도로.


찡그리고 있는 아이의 조각상을 <성난 아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무엇에 잔뜩 심술이 나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발을 쿵쿵 구르는 모습이다. 말이 부족한 아이에게 화는 몸짓의 표현이지. 어쩜 이 순간을 이렇게 담아냈을까. 이 <성난 아이> 동상의 왼 손을 만지면 소원을 들어준다길래 별 소원은 없어도 슬쩍 잡아 봤다. 표현주의의 창시자 뭉크, 인간군상을 다룬 비켈란. 새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시대에 발맞추어 시대에 맞는 주제로, 우리가 주체가 되는 예술로.


늘 잔디 주변으로 난 길을 걸었고, 잔디에 들어가더라도 가장자리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잔디 출입 금지’ 푯말이 없다. 잠시 후면 이 잔디밭 위에 모두들 피크닉 매트를 깔 것이다. 눕거나 앉거나 책을 읽거나 술을 마실 것이다. 늘 붐비는 그곳이 지금은 우리만의 것이다. 못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안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 <무정형의 삶> 중


평소에 잘 안 챙겨 먹는 아침을 과하게 먹어서인지, 괜히 불편하게 먹은 점심 때문 인지 속이 좋지 않아 호텔로 돌아가려고 나왔다. 흙으로 반질반질 닦여진 길을 밟으며 걷는데 갑자기 며칠 전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잔디밭엔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 있고, 그 누구도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하지 않는 잔디를 밟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방향을 틀어 잔디 위를 갈지 자로 마음껏 걸으며 공원을 가로질렀다.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혹시 몰라 약을 하나 챙겨 먹고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알람에 맞춰 눈을 떴는데 그 잠깐 잤다고 속도 괜찮고 컨디션도 나아진 기분이다. 오늘 밤은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으니 사실 반드시 괜찮아져야 했다. 


물 한 병을 챙겨 조금 일찍 서둘러 노르웨이 왕궁에 도착했다. 무대 앞 의자는 몇 줄이 벌써 차 있었고, 무대를 정면으로 보는 계단 -왕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그 계단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대와 가깝지만 단차가 없는 의자보다 자세가 불편해도 무대 전체를 볼 수 있는 계단이 훨씬 나은 듯하다. 서두른 만큼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공연을 30분 정도 앞둔 시간이 되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모니터에 잡힌 전경을 보니 무대 양 옆, 계단 뒤까지 해서 사람들이 빽빽하게 차 있다. 그 와중에 피자와 와인, 과자와 햄버거 등을 챙겨 와 식사를 하고 잔을 부딪히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 아닌 사람들의 여유, 이것이 짬에서 나온 바이브.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이 각기 다른 악기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조화가 무척 아름답다는 것, 음향과 수준 역시 최고 수준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너무나 익숙하게 아는 음악인 비발디의 <사계>가 나올 땐 소름이 끼쳤고, 전혀 모르는 음악을 들을 땐 처음이라 소름이 끼쳤다. 야외 공연인 만큼 갑자기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리거나 대형을 맞춰 이동하는 새들의 지저귐 같은 것이 섞여 들어왔는데, 소음이 아니라 꼭 합주처럼 느껴졌다. 모두 기분 좋게 웃고 자유롭게 박수를 쳤다. 


지미집 카메라 1대에 중계용 카메라만 6대? 7대? 인 것 같고, 남녀 2MC는 무대나 관객석 등 위치를 바꾸어가며 사회를 보고 잘 짜인 인터뷰를 한다. 콘서트마스터 솔로 공연 전에는 별도 제작된 영상 브릿지도 틀고, 곡이 넘어갈 때마다 박수를 유도한다. 아, 이건 방송 녹화구나 했다. 그럼 그렇지,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을 1회성 야외 공연으로만 휘발하기엔 아깝지 -실제 방송이 됐는지 알 길이 없다-란 생각을 잠깐. 공연 전체는 당연하게도 노르웨이어로 진행되었다. 모두가 당연하게 영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이들에겐 영어도 제2외국어인 셈인 것이다. 내 제2외국어도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참 좋을 텐데. 


예정된 90분에 딱 맞춰 공연이 끝났다. 칼 요한 거리의 야외 좌석엔 빈 테이블 없이 사람들로 꽉꽉 채워 있었다. 이들의 저녁 자리에 공연 음악이 배경으로 흘러들어왔겠지. 


하늘이 짙은 파란색이 되었다. 오슬로에 도착했을 땐 아주 늦은 밤이었고, 있는 동안엔 해가 떠 있을 때 호텔로 돌아왔던 터라 이 시간, 이런 색의 오슬로는 처음 눈에 담는다. 밤 10시. 내가 도시에서 제일 사랑하는 파랑. 결국 이걸 본다. 


내일 오전 5시에는 일어나 국경을 넘는 기차를 타러 가야 하니 더 지체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누웠다. 호텔 화재 소동으로 시작해 야외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마무리하는 오슬로 일정. 집에서 여길 오려면 만 하루가 걸리는 이곳에서 나는 무심코 행복했다. 감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