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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창 Jan 29. 2019

'중소기업 현장과 밀착한 지원',
그 말의 무거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에서 강조하는 슬로건 중에 ‘중소기업 현장밀착 지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분명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기업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필자는 기업 애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지원상담센터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기업들이 겪는 애로와 문제점을 접하였다. 


문제는, 기업 현장의 애로를 파악하지만 정작 해결은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해결할 수단이 많지 않다(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은 정책자금이 아닌, 중소기업 R&D나 사업화 자금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 업종과 업력, 주요 제품 및 고객, 재무상황 및 경영여건 등이 다른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매우 다양하기에 공공이 가진 자원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소기업 대표님의 고민과 하소연을 듣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혹자는 중소기업의 애로를 듣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중소기업 지원기관이라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모든 자원과 역량이 집중되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과감한 의사결정과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소기업 현장 애로를 파악하는 활동이 주는 부차적 의미도 있다. 첫째, 중소기업 입장에서 무엇이 어렵고 부족한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하여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기획하고 사업을 개선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중소기업 현장에 가면 배울 점이 많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대표님들은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계시고, 산전수전을 겪어온 인생의 선배로서 그분들이 살아온 길 자체가 산 교과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일 뿐 결국, 모든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의 애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하고, 이를 얼마나 잘 해결해주느냐가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기관 입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다수 설문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중소기업이 겪는 가장 큰 애로는 ‘자금’과 ‘인력’, ‘판로’ 일 것이다. 자금은 운전자금이나, R&D 또는 사업화에 필요한 돈이며, 인력난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중소기업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또한 어떻게든 제품은 만들었지만 제대로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접했던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 사례를 몇 가지 보자. GM이 군산 공장을 철수하기로 결정한 뒤, 납품물량 감소 등의 우려가 있는 GM 협력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다수 협력사는 해당 완성차 메이커에 최적화된 제품과 생산라인을 이미 구축한 상태여서 다른 완성차 메이커로의 거래선 변경이 쉽지 않다. 해당 협력사에게 현재 상황을 조금 더 관망하거나, 장기적으로 신규사업 아이템을 준비하시라는 말씀 외에, 애로를 해결해 드릴 수 방법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 번째 사례. 판교 소재의 바이오기업 A사. 판교는 필자가 근무하는 경기도에서 기업 입지 조건이 매우 우수한 곳 중의 하나이고, 해당 기업은 200억 이상의 매출액에 동종업계 대비 연봉도 높고, 복지제도도 나름 잘 갖추었지만 상시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시장논리에 따라 취업자들이 더 많은 연봉과 좋은 조건의 대기업을 선호하는 걸 한편으론 이해하지만, 젊은 구직자가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에도 이를 해결할 수단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실감한 경우였다. 


세 번째 사례. 새로운 방식의 시력 회복 운동기를 개발한 의료기기 업체 B사는 국내 의료기기 제품 허가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경험 많고 역량 있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면밀하게 제품을 검토하고 관련 서류 준비, 소관기관으로의 적극적 행정 건의 등을 통해 제품 허가를 받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네 번째 사례. 회사 은퇴 후 본인의 아이템으로 창업한 60대 대표님께서는 오랜 실전 경험과 본인이 가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했지만, 금융권 대출이나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아 추가적인 제품개발과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관련 분야 전문가나 유관기관을 소개해 드렸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1인 기업은 상용화 역량이나 자금이 부족하고 아이디어만 있는 경우가 있어 도움을 드리는 데 종종 어려움이 있다. 


다섯 번째 사례. 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을 통해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는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러한 경우 대표님들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나름 긍정적인 말씀을 주시기도 하지만, 아쉬움 또한 토로하시면서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사업에 대해 의미있는 제안을 해주신다. 가령 사업화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이 지원되도록 지원한도를 증액하거나(또는 기업부담 비율 감소), 보다 더 다양한 혜택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 그리고 신청절차나 제출서류 간소화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여섯 번째 사례. 공공이 지원하는 중소기업 지원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지원을 받는 적이 없다는 기업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공공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기업도 있지만, 관심을 보이면서 자세한 지원사업 정보를 물어보시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중소기업만도 78만 개이고, 경기도를 비롯한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추진되는 지원사업의 가짓수도 매우 많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효율적으로 지원사업을 안내하고 홍보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필자가 중소기업 현장을 다닌 결과, 현재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이나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중소기업의 근본적인 애로를 해결하는데 다소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인력' 문제이다(이는 중소기업 정책 차원이 아니라,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대학생 인턴들이 많아 간혹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 그들의 진로를 물어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예상하듯) '공무원'과 '대기업'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 합리적인 조직문화,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중소기업은 우선 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 젊은 세대가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기업 스스로가 인력 유입 노력을 해야 하고, 대학생들에게 ‘중소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며, 숨어 있는 알짜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젊은 세대가 중소기업 취직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중소기업 강국인 일본에서는 대학교와 중소기업 간의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공공이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는데 할 수 있는 장기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인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및 지자체에서는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2019년 중소기업 정책자금(중소벤처기업부)은 3조 6,700억 원으로 매년 중소기업 정책자금으로 중소기업 지원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기업이 성장하는데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성장할 의지와 역량을 가진 기업을 선별하고, 이들이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화와 판로개척에 필요한 자금을, 과연 시의 적절하게 지원하고 있는지는 공공이 풀어야 할 숙제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시대 변화에 따라 ICT기술을 활용한 제조업 고도화나 새로운 비즈니스 개척을 위한 R&D, BM(Business Model) 개발을 지원하는 것도 공공의 시급한 현안이다. 


때론, ‘자금’이 아닌 중요한 정보나 자문, 컨설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문제도 많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자사 제품에 특화된 해외 바이어를 찾고, 52시간 근무제 등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인사노무 규정이나 조직문화를 재정비하고, 수출하는데 필요한 통관 절차를 확인하는 등 중소기업은 경영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자금’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간단한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 대상으로 ‘컨설팅’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의 애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애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매칭하는 것이 그 시작점일 것이다. 


다양하게 추진되는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사업을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정보 접근 편의성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활용한 사업 홍보와 함께 다양한 지원기관 간 정보를 통합하여 제공할 수 있는 ‘중소기업 지원 온라인 플랫폼’을 단계적으로 구축하여, 많은 중소기업들이 최대한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한 많은, 필요한 중소기업 지원사업 정보를 빠르게 획득할 수 있도록 고객지향적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중소기업 현장 지원’의 한계와 문제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우선, 공공이 가진 정책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문제는 다소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중소기업의 애로가 워낙 다양하기도 하지만, 정책수단이 적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중소기업 애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지만, 공공은 기업애로를 청취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기업지원의 핵심고객인 기업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기업지원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이러한 행위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기업이 고객을 정기적으로 만나서 제품 사용후기나 개선사항들을 듣는 것과 같다. 다만, 우리의 그러한 행위들이 과연 공공의 지원사업이나 서비스에 얼마나 반영되고, 개선되고 있는지는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기관은 오랜 기간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이 있어 기업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공공의 중소기업 지원사업이 그 내용이나 프로세스가 크게 바뀌지 않고, 기존의 관행대로 지원되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기관은 누군가의 말만 잘 들어줘야 하는 상담사도 아니고, 현재 가지고 있는 제품만을 판매해야 하는 세일즈맨도 아니다. 우리는 ‘중소기업 애로 해결사’가 되어야 하며, 지금이 바로 '중소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공공의 자원이 적합한지, 자원의 양이 적정한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과 사업 틀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본 글은 지자체 중소기업 지원기관에 근무하는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므로, 일반화할 수 없는 특정 사안에 한정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개인의 의견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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