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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강 Sep 17. 2021

20세기형 인간 (1) 아날로그 인간 = 이고지고 인간

기록은 수기로 사진은 필름카메라로 책은 종이책으로


"아니 넌 뭐 허생원이야?"


듣고서 한참 웃었던 비유다. 꼭 문학에 관련된 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대한민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소설에 나오는 장돌림, 허생원처럼 짐을 이고 지고 다닌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소독용 알코올이나 손소독제처럼 실용적인 물품까지 추가되어 짐이 더 늘어났다. 전에는 사실 실용적 물품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그저 이고 지고 다녀서 '안 그래도 좁은 어깨를 학대한다' 등의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한 것이 내가 보기에도 나는 객관적으로 짐이 많다. 출퇵근을 할 때에는 물론이고 친구를 만나러 갈 때에도, 심지어 혼자 한적한 주말을 보낼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내 백팩 속 물건을 본 학원의 한 학생은 '선생님 아이패드를 사시면 가방이 5분의 1로 가벼워질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선생님은 쇄국정책 지지자라 미제 안 써'라고 농담으로 받아쳤는데 사실 아이패드를 사도 가방이 5분의 1로 가벼워지기는커녕 아이패드만큼의 무게가 늘어날 것이 뻔하다. 뭐든 내 눈앞에 물질로 존재해야 마음이 편한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그렇다. 


나와 동년배인 카메라


우선 필름 카메라와 여분의 필름. 

중고로 산 미놀타 X-300은 1981년에 발표된 모델이라고 한다. 아마 내가 산 중고 카메라도 나와 엇비슷한 세월을 살았을 것이다. 21년에 나온 아이폰이나 갤럭시와 비교하면 화질이랄 것도 보잘것없고 게다가 조리개며 셔터 값이며 조절은 할 생각 없이 오토에 맞춰놓고 찍는 허접한 사진 실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약속이 있거나 혼자 산책을 할 땐 꼭 카메라를 챙기게 된다.

사실 요즘은 필름 카메라 찍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사진 보정 어플에 '필름 카메라 감성'까지 따로 있을 정도니 필름 카메라만이 가진 채도나 색감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저번에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이라며 인화한 사진을 나눠주면 모두들 물끄러미 사진을 쳐다본다. 그리고 혹여 사진이 구겨질까 조심조심 가방에 집어넣는 손. 그 찰나의 순간들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아날로그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나에게 뭐니 뭐니 해도 필름 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은 필름 카메라가 가진 색감보다는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바로 확인하고, 바로 지워버릴 수 있지만 필름 카메라는 우선 찍고 나면 당장 확인할 수 없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주 불편한 일이지만 나에겐 그것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나가게 만드는 이유다.  

필름 카메라의 작동 방식은 기억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

무언가를 본다.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셔터를 누른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찍혔는지 바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필름을 현상, 인화하고 나면 내가 어떤 장면을 보고 셔터를 눌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카메라로 보았던 세상과는 조금 다른 색감의 사진을 본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본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웃고 말하고 곱씹고 새긴다. 그때 당시에는 어떤 기억이 될지 바로 확인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을 꺼내보면 내가 어떤 장면을 마음에 남겼는지 알 수 있다. 당시와는 다르게 채색된 장면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기억이 부드럽게 채색되면 결국 추억이다.

덧붙이자면, 아무리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고 해도 일단 잔상이 남으면 지워버릴 수 없다. 한 번 필름에 남은 사진은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셔터를 누르면, 그 장면은 좋든 싫든 남는다. 반드시. 그러므로 셔터를 누를 땐 신중해야 한다. 단순히 필름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영원히 남길 수 있다는 면때문에. 하지만 반대로 아무렇게나 누른 셔터에서 좋은 사진을 건질 때도 있다. 역시나 기억의 작동 방식과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을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신중하게 사람을 만나고 신중하게 결정을 해보지만 사실 지나가다 만난 강아지 한 마리가 오히려 삶을 견뎌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 종이책과 필기도구를 넣어 다니는 북커버

온라인 서점은 굿즈를 참 잘 만든다. '있으면 너무 유용하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이상하게 아까운' 물건들을 귀신처럼 알아내서 '책 사고 적립된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게 한다. 공짜가 아닌데 공짜인 이상한 기분이랄까. ―사실 북커버라는 말보단 책가방이 더 적확한 단어가 아닐까 싶지만―이 북커버 역시 꽤 오래전에 교보문고에서 포인트로 사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내 주변에선 민초냐 반민초냐보다 더 격렬한 논쟁이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의 논쟁이다. 사실 내 주위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출판업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전자책의 모든 편의는 알고 있으나 아날로그 인간들은 역시 종이의 물성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을 포기할 수 없다. 종이책을 넘길 때의 손에 닿는 촉감, 오래된 책에서 나는 약간의 눅눅한 종이 냄새, 밑줄을 그을 때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경쾌한 느낌, 책을 넘기는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소리. 시각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촉각으로 청각으로 후각으로 느끼는 독서의 진행.

무엇보다 나는 종이책의 부피감이 좋다. 

전자책 파도 종이책 파도 결국은 종이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공간을 차지한다'를 꼽을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전자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이책이 공간을 차지해서 싫다고 하고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종이책이 공간을 차지해서 좋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후자다. 부피와 질량을 가지는 것, 내가 만질 수 있는 것이 좋다. 책장에 '안 읽은 책' 칸에 꽂혀있던 책이 '다 읽은 책'칸으로 옮겨가면 내 뇌에서도 '이 책은 내 뇌에 신경회로망을 만들었다'라고 인식하는 것만 같다. 내 월급은 몇 개의 숫자로 통장을 스쳐 지나가지만 책은 우선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종이책지자자들의 물적 자기는 옷이나 전자기기보다는 책이다. 적은 돈으로 많이 쌓기 딱 좋은 물적 자기라는 생각이 들고 '지적 허영'이 허영 중에는 가장 생산적인 허영 아닐까 싶다. 

 


그리고 북커버의 다른 한쪽엔 기록을 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메모장들을 넣어 다닌다. 

'멍 때리는 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머릿속에 매 분매초 생각이 들어차 있어서 해야 할 일도, 정리해야 할 것도 금방금방 다른 생각들에 덮여버리는 기분을. 책은 순서대로 정리라도 할 수 있지, 생각과 기억은 그게 되지 않으므로 무조건 적는다. 출근하다가 '아 맞다 오늘 뭐 해야 하지' 생각하면 적고 아름다운 문장이 번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 적는다. '핸드폰에 적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손으로 기록하는 것의 의미를 믿는 편이다. 전자기기의 키패드를 누를 땐 머릿속에 자음과 모음의 모양이 입력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기로 적으면 자음과 모음으로, 음절로 기록이 된다. 손의 움직임을 따라 글자와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러면 태블릿을 쓰면 되잖아..?'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종이책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메모장에 기록하는 것이 좋다. 다 쓴 메모장이 쌓일 때의 뿌듯함이 생각보다 크고 한 해, 혹은 몇 달을 단락으로 잘 묶어서 간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기록하는 순간뿐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메모장을 넘기며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들에도 의미가 생긴다. 메모장을 넘기다 보면 그 찰나의 순간,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여백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여백과 행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노트북이나 태블릿+키보드가 추가된다. 그렇다. 놀랍게도 나에겐 태블릿이 있다. 쇄국정책 지지자이기 때문에 미제는 아니고 삼성산이지만. 노트북이나 태블릿은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는 일을 하기 위해 들고 다녔다. 학원에서 쓸 교재를 편집하고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그러다 본격적으로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 이후에는 '매일 1500자 쓰기' 다짐을 지켜내기 위해 들고 다닌다. 가방에 이렇게 이고 지고 다녔는데 안 쓰고 자면 억울하다란 마음이 들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충실하게 잘 적어 내려가고 있다. 정신의 나태함을 육체적 고단함으로 이겨내 보려는 얄팍한 수작인데 이 수작이 오래 가줬으면 좋겠다.


누가 보면 교보문고에서 소정의 원고료라도 지급받았나 싶을 정도의 지독함


여기까지가 거의 매일같이 가방에 들고 다니는 목록이다. 그리고 여기에 여행을 갈 때엔 추가되는 목록이 있다. 집 서재에는 좋은 문장을 기록하는 노트, 매일매일 적는 다이어리(있었던 일, 있었으면 좋았을 일, 없었다면 좋았을 일을 적는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상문을 적는 노트가 따로 있다. (이 기록광인의 기록 강박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 중에 한 두 개를 뽑아 여행 가방 안에 꼭 집어넣어야 마음이 놓인다. 대화장을 향하는 허생원처럼.


아이패드 하나로―노트북(혹은 태블릿과 키보드), 필름 카메라, 책, 기록장까지 모두 대체할 수 있는 시대다. 이 모든 짐들을 이고 지고 다니는 나는 21세기에 너무도 알맞지 않은 비효율적 인간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아날로그형 인간들은 '바리바리 스타' '보따리장수' '달팽이' 등등의 온갖 애정 어린 타박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날로그 인간들은 비효율적이더라도 내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할 뿐이다. 한 순간의 느낌을 셔터로 누르고, 펜을 들어 기록하고 책들의 자리를 정리할 때 나는 내가 인간임을 느낀다. 이고 지고 다니면 어깨는 무겁지만 그게 생생한 생의 감각이 주는 무게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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