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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 Oct 17. 2024

근면의 나라에서 게으름뱅이로 산다는 건

갓생에 반대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게으름은 죄란다. 그것도 대죄. 살인이나 불륜 같은 무시무시한 악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게으름뱅이는 죽으면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 불교에서는 초대형 원형 믹서기로 24시간 갈아버리고 천주교에서는 뱀 구덩이에 산채로 던져버린다. 그러나 가장 엄격한 벌은 바로 대한민국에 있다. 불교든 천주교든 저세상 가면 내리는 벌이라지만 여기는 게으르면 일생동안 고통 받는다. ‘네가 게을러서 안 되는 거야’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잉여인간’이라며 사회에 암적인 존재 취급을 받는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믹서기나 뱀보다 남한테 욕 먹는 걸 더 무서워 한다. 우리나라는 게으름에 대해 좀 무자비한 구석이 있다.




‘갓생’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건 그때 쯤이었을 거다. ‘주접 밈‘이 한창 트렌드였던 시기. 킹갓제너럴충무공마제스티… 누군가를 아주 인정한다는 의미로 온갖 좋은 수식어를 모조리 끌어다 쓰는 식의 밈이 유행이었다. 그중에서도 활용도의 으뜸은 단연 ‘갓(God)’이었다. ‘킹’ 보다도 높으며 가성비 좋은 한 음절 짜리 수식어 ‘갓’. 이름 앞에 ‘갓’을 붙이면 ‘인정’은 ‘찬양’으로 승격된다. ‘갓생’이라는 건 하루 가득 부지런하고 생산적으로 살아낸 인생을 찬양하는 말이다.


‘갓생은 무슨, 별 게 다 갓이래.’


나는 이것이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킹갓제너럴… 밈들이 그렇듯 너무 오버한다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알게 된 후 제법 부지런하게 하루를 보냈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앗, 오늘 갓생 살아버렸는데?’하며 자랑이 하고 싶어졌다. 이상하게도 다른 데에는 갓 어쩌구를 붙이면 으레 창피해지면서도 갓생 만큼은 썩 나쁘지 않았다. 아마 인정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인다면 정말 ‘유느님’이나 ‘갓흥민’처럼 인간계를 초월한 위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갓생에 최적화 되어있다. 종족값이 기본적으로 좀 부지런하다. 애초에 ‘아침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작한 조선(朝鮮)은 그 빠릿빠릿한 DNA로 ‘한강의 기적’도 이루고 초고속 통신망도 구축해냈다. 너무 바지런해서 국가번호도 +82(빨리(…))를 줬다는 농이 있다. 거기에 앞서 말했듯 게으름에 무자비하기 때문에, 그만큼 반대로 부지런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갓생을 사는 것이 이 근면의 나라 컨셉에도 부합하며 남한테 욕 얻어먹지도 않는 길이다.




‘갓생’이 이렇게 ‘갓벽’한데도 점점 ‘탈갓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나같은 놈들이 갓생 같은 거 때려치자고 시위해서가 아니다. 갓생을 시도해본 사람들이 직접 그 부작용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갓생의 가장 큰 부작용은 ‘자기혐오’다. 인간이 언제까지고 영원히 갓생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 인간을 초월한 부지런함이란 하루 이틀 쯤은 마음 먹고 시도해볼 수 있다. 어떤 작정이 있다면 그보다 오래 지속할 힘을 얻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인간이 평생 바짝 힘을 주고 빈틈 없이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실수를 하거나 마음이 해이해지는 그때, 덜컥 스스로가 한심해지고 만다.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의 크기 만큼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혐오감이 커진다. 자기혐오는 ‘걍생’이나 ‘게생’보다 명백하게 더 해롭다.


게다가 단순히 일만 잘 해낸다고 갓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일 뿐 아니라 여가 생활까지 하루가 완벽하게 완결되어야 갓생이 된다. 생각해보라.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음악이나 듣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과들을 누가 갓생으로 쳐 주겠는가. 하루가 이상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져야 갓생이 된다. 나도 갓생을 경험한 처음에는 ’좋은 것들로만 하루를 채우는 완벽한 기분‘에 매료됐었다. 그렇게 며칠간은 대단히 고양된 기분으로 살았다. 그러나 매순간마다, 심지어 휴식을 하는 동안에도 ’이건 나에게 유해한가 무해한가‘를 의식하는 것은 상당히 고되고 피곤한 일이었다. 휴식이라는 건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 뇌를 쉬게 해주는 일이다. 사람은 긴장과 이완을 번갈아 반복해야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이다. 갓생에는 ’긴장‘만 있고 ’이완‘이 없다. 결국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갓생의 무대가 SNS라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갓생의 연료는 ’인정‘이다. 갓생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가열된 까닭은 고질적인 경쟁 심리와 인정 심리가 한몫 했을 것이다. SNS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면만 보여주는 곳이고, 갓생에 대한 기준은 더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겨우 그거 했다고 갓생이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 갓생이란 퇴근하면 초과근무도 좀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부캐도 하고 재테크에 부업에 자기관리에 퍼스널 브랜딩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 보태져서 갓생러가 아니라 무슨 ‘캡틴 아메리카‘처럼 됐다. 아마 캡틴 아메리카 보고도 그거 다 하라고 하면 다시 냉동실로 돌려 보내달라고 할 거다.




그렇다고 이 틈을 타 ’그러니까 게으른 게 짱이야‘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갓생이 너무 부지런해서 문제가 생기듯 너무 게으르면 그거대로 문제가 많겠지. 뻔한 말이지만 뭐든지 극단적이면 문제가 된다. 애초에 ‘갓생’이라는 말의 유래도 자신의 삶을 혐오하는 ‘혐생’의 반대격으로 생겨난 신조어였다. 너무 과하다는 거다.


나는 그저 게으름뱅이들이 여기 이 땅에 살면서 너무 자기혐오 안 했으면 좋겠다. 다리 찢는 뱁새나 접시 핥는 두루미 보단 생산력 떨어져도 자기 리듬대로 사는 나무늘보가 낫다. 이완, 수축, 이완, 수축, 자연스럽게. 연약한 우리는 매일 힘껏 살아간다고 갓이 될 수 없다. 인간은 너무 힘을 주면 쉽게 부러지고, 부러지면 많이 아프다.





그런데 갓생이 실패했다기 보단 그냥 트렌드라는 게 원래 그런 식인 것 같다. 사실 갓생이 있기 몇 년 전만 해도 YOLO라며 ‘어차피 인생 한 번 뿐이야’를 외쳤고, 그보다 몇 년 전엔 다시 반대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쳤다. 또 그보다 이전엔 ’편하고 소박한 일상이 최고야‘라며 휘게라이프가 트렌드였고… 인간이란 원래 왔다리갔다리 쏠려 다니면서 시끄럽게 구는 동물이다.


아직까지 갓생 다음은 딱히 뭐가 안 나왔다. 분명 그 반대격일 것은 확실하다. 뭔가 마땅한 게 없다면 이 책을 다음 트렌드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김난도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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