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 대하여
세상에 나이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있지 그럼. 지금이야 지긋지긋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신도 나이 먹는 거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말이다. 그때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가지고 손꼽아 날짜를 세고 떡국을 막 두 그릇 씩 먹고 틈만 나면 어른 흉내를 냈다. 그렇게 나이를 못 먹어서 안달이었던 건 어른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정확히 말하면 ‘내 어른‘은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기대. 그 시절 나는 디지몬에 상당히 빠져있었는데 성장기 디지몬이 성숙기 디지몬으로 진화하면 덩치도 막 커지고 엄청 세졌다. ’공기팡‘ 밖에 할 줄 모르는 파닥몬 같은 애완용 디지몬도 진화하면 갑자기 짱 센 엔젤몬 돼서 데블몬 때려잡을 때 1인분 톡톡히 하고 그랬다. 그 장면 보면서 인생 처음 전율이란 걸 느끼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 어쨌든 내가 디지몬이 될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크면 어떤 짱 센 모습이 될까 같은 걸 기대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아니 너무 많이 지나서 서른두 살이 됐다. 그 시절 상상 속 서른이란 ‘아빠 나이’, ’돈도 왕창 많은 나이‘, ’무슨무슨 전문가가 될 나이‘, 아무튼 무지 어엿하고 노련한 나이 쯤이었다. 나는 그 중 한가지도 이루지 못한 채로 서른보다 두 살이나 더 먹어버렸다. 물론 20년 전 서른과 지금 서른은 다르지.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사람은 점점 더 천천히 늙는다. 몸이든 마음이든. 그럼에도 시대를 초월하는 사실은, 서른이란 반박 불가 어른 나이라는 것… '서른'하고 '어른'은 생긴 것도 닮았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제법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서 어른, 어른, 어른… 되뇌다 보면 하릴없이 게슈탈트 붕괴에 빠진다.
얼마 전 대학교에 특강 같은 걸 하러 간 날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대학로 치킨집에서 학생들과 저녁을 먹는데 자연스레 나이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에, 내 옆에 앉은 신입생 여자애가 원숭이띠란다. 나랑 띠가 같다고? 찬물 끼얹듯 실감이 끼친다. 나는 정말로 스무 살보다 12살 많은 서른두살이 된 거구나... 그래 요즘 스무살은 뭐하고 노느냐, 실감이 나느냐 같은 별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 명절에 조카 만난 삼촌 같았다. 괜히 뻘쭘해져서 자학을 덧붙였다.
“아휴 너무 아저씨랑 이야기하는 것 같죠?”
“어차피 같은 어른인데요 뭐. 애아빠도 아니시고…”
태연한 답변에 고마운 마음과 함께 꼰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엥, 스물이면 그냥 고등학교 4학년이지 뭐가 같은 어른이야. 스무살 됐다고 저절로 어른 되는 게 아니란다?’ 사실 심술에 가깝다. 나도 아직 어른 그거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러다 문득 조숙한 그녀와 미숙한 내가 같은 과도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 다 분명 애는 아니지만, 어른이라고 하기엔 ‘이제 막 풋내기’이며, ‘아직도 철부지’인 시기. 성숙기로 채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가 말이다.
어른 : (명사)
1) 다 자란 사람 2)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
어른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렇게 나와있지만 사실 좀 안 와닿는다. 1번, 만 18세를 경과하거나 2차 성징이 끝난 시점은 ‘성인’이라 부르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그래서 갓 성인이 된 애들한테는 어른이라고 차마 못하고 ’으른 다 됐네‘하고 놀리기도 한다. 2번,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 사회적 책임은 다할 수 있으나 그걸로 어른이 되었냐 하면 꼭 그렇진 않다. 내 친구들 중엔 애아빠가 됐는데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놈들이 천지다. 솔직히 걔네는 죽을 때까지 ‘언제 어른 될래’ 소리 들을 것 같다. 어른이 아니라 ‘사람 됐네’ 소리도 어림없다.
자꾸 디지몬 이야기 꺼내서 미안하다. 근데 본질만 두고 보면 디지몬 진화 과정이 사전보다 어른을 더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디지몬은 유년기, 성장기를 지나 완전체로 진화하는데 그러려면 성숙기 형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런데 디지몬 세계에선 성숙기 기간이 가장 길다. 이처럼 인생 또한 완전한 형태가 되기 위해 성숙해지는 과정이 긴 시간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어른인 게 아닐까? 그렇게 치면 성숙이란 필살기 같은 걸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는 거랑 비슷하다.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 여기엔 직업적인 스킬 외에도 감정이라던가 자아 같은 것도 포함한다. 반대로 말하면, 나를 능숙하게 다룰 줄 모른다면 어른이 아니라는 게 된다. 성숙하지 못한 방법으로 암흑진화해서 팀원들한테 민폐 끼치는 ‘스컬그레이몬’처럼. 와, 디지몬 진짜 명작이었네. 원고 작업 끝나면 정주행 해야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른스러운 사람 되는 법 같은 건 나도 모른다. 이 글은 그런 조언을 주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고 네이버에 그런 걸 검색해봤자 그런 척 하는 방법이 몇 줄 나와있을 뿐이지 실제로 성숙해지는 일은 없을 거다. 다만 내가 살면서 만났던 참어른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만의 흉내낼 수 없는 압도적인 포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그 사람의 묘한 긴장감 만큼이나 넉넉한 여유에서도 그런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말하자면 긴장과 이완, 자기만의 리듬 같은 것. <생활의 달인>에 나온 웍 장인이 생각 난다. 그 할아버지는 마른 몸으로 그 큰 웍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설명하기로는 무조건 힘만 세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리듬이 있다고 했다. 강약중강약.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분야를 막론하고 능숙해진다는 건 그렇게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 빼는 요령이 필요한 것 같다.
어른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언제 긴장되고 언제 이완되는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 되는 지점에 성장의 완성이 있을 거다. 그러니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서 취향 같은 걸 열심히 찾을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하면 너무 뻔한가. 그렇지만 다들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미래를 위해 부지런하게 일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나.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면서. 물론 어른이 되는 일에는 책임과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정말로,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에 대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그런 사람은 행복이나 자아를 찾는 일에도 무지하게 많은 시간을 들였을 거다. 자기 색깔을 덧칠하고 덧칠하는 끈질기게 집요한 시간이. 뭐 꼭 그런 것만을 어른이라고 정의하기엔 비약이 좀 있겠지만, 어릴 때 되고 싶던 멋진 어른은 적어도 그 비슷한 거 아니었을까.
나는 털이 부숭한 다 큰 어른이지만 내면은 여전히 허둥지둥하는 으른이다. 감정 조절이 서툴고 자주 어리석다. 주체가 안되는 나를 다루는 일에 항상 애를 먹는다. 이 방황은 아무리 내가 애아빠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행여 마흔이 된다고 해도 저절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벗어날 수 있는 거였다면 사회에서 이렇게 어른답지 않은 어른을 많이 마주칠리 없었겠지. 그들 또한 나처럼 세월에 비해 지체된 미숙을 안고 헤매는 중인 으른이들인 거다. 오춘기니 육춘기니 하면서.
서른이 지나고 나는 자주 으른을 벗어나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어른스러운 사람들을 보며 질투한다. 때때로 조바심이 나서 누군가를 흉내도 내보고 척도 해본다. 허나 그러다 보면 쉽게 헝클어지기 때문에 외려 내 밑천이 드러나기 일쑤다. 벌거벗은 사람처럼 부끄러워진다. 음... 역시 어른이 되는 건 자기 앞가림하는 일부터 시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