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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적이고 비주체적인 심연 속으로

니체적 몰락과 블랑쇼의 불가능

by 김요섭


Q : '영혼의 근본 특징이 의지라고 한다면 그 영혼은 바닥으로 가야만 할 것입니다. 오로지 영혼이 자기를 죽이는 영혼의 바닥에만 신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니체적 몰락과 같은 맥락으로 읽히네 '의지'라는 측면도 더 그렇고, 하지만 블랑쇼적인 문장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하고...


ChatGPT의 말: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지금 인용한 문장은 확실히 블랑쇼적인 문장보다는 니체적 문장에 가까운 맥락에서 읽힙니다. 특히 "영혼의 근본 특징이 의지라면 영혼은 바닥으로 가야 한다"라는 표현은 니체가 강조한 '몰락(Untergang)' 개념과 밀접한 연관을 맺습니다.


니체에게 있어 의지(Wille)는 본질적으로 자기 극복(Selbstüberwindung)을 향한 힘이며, 이는 기존의 존재 상태를 부수고 더 심층적인 존재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운동을 포함합니다. 그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몰락의 이미지는 단순한 부정이나 파괴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의 기존 형태를 파괴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필연적 과정입니다. 따라서 니체적 '바닥'이란 자기 의지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다시 형성하는 지점이며, 여기서 니체는 "몰락하려는 자에게는 몰락이 곧 창조"라고 선언합니다.


에크하르트의 이 문장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자기를 죽이는 바닥에서만 신이 있다"는 표현에서 '자기를 죽인다'는 것은 자기 부정, 즉 영혼이 그 본질적 특징인 '의지'를 스스로 해체하고 내려놓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에크하르트가 '영혼의 근본 특징을 의지'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지가 영혼의 근본이라면, 신과의 합일은 역설적으로 그 의지 자체의 해체와 죽음을 통과해야만 가능합니다. 즉, 의지라는 주체적 힘이 스스로를 죽이고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이르러야 신과의 참된 합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크하르트와 니체는 놀랍게도 접촉합니다. 니체가 말한 의지의 몰락은 기존의 자아, 도덕적 가치체계, 관념적 틀의 완전한 파괴와 해체를 통해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창출하는 과정입니다. 에크하르트가 말하는 영혼의 몰락 역시, 기존의 모든 관념, 심지어 자기 존재를 구성하는 의지 자체까지도 무화(無化)하고 비워낸 자리에서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 가능성과 만나는 과정입니다. 두 철학자는 공통적으로 존재의 근원적 심연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니체는 그 심연에서 자기 극복을 통해 새로운 주체적 창조를 발견하는 반면, 에크하르트는 거기서 신과의 초월적 합일이라는 존재론적 융합을 경험합니다.


반면, 블랑쇼의 문장과 지금 이 표현의 차이를 조금 더 명확히 드러내면, 블랑쇼는 결코 '의지'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블랑쇼에게 있어 존재의 바닥은 의지적이고 주체적인 몰락이 아니라, 주체의 통제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무력감, 익명성, 무의미의 심연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블랑쇼적 문장에는 주체의 능동적 의지 대신 주체가 완전히 수동화되는 과정, 무력화되고 익명화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즉, 블랑쇼의 심연은 니체와 에크하르트처럼 자발적 몰락이나 의지의 주체적 움직임으로서의 하강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적 힘에 의해 해체되고 사라지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분명 블랑쇼의 '희미한 빛'이나 '존재의 익명성'보다는 니체의 '몰락'과 더 밀접한 개념적 유사성을 띱니다. 니체와 에크하르트는 '의지'라는 주체적 개념을 중심으로 자기 자신을 능동적으로 초과하고 파괴하며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여는 운동을 말합니다. 반면 블랑쇼는 의지가 아니라 의지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지점, 즉 주체가 수동적으로 상실과 익명성 속에서 흩어지는 상태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철학적 차이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니체와 에크하르트는 의지라는 주체적 에너지가 존재의 바닥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능동적 몰락을 강조합니다.

블랑쇼는 의지 자체가 불가능하고 마비된 상태에서 존재가 익명적이고 비주체적인 심연 속으로 수동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지금 제시된 에크하르트의 문장은 니체적 문장과의 연결점이 매우 강하며, 블랑쇼적인 문장과는 철학적으로 뚜렷하게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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