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건축사사무소) 퇴사 후 미래계획자, 여, 27세
명동성당 혼인교리 5시간
가정의 달이 조금 일찍 왔다. 약속을 지키며 보냈다.
7일 | 나무 반지
서촌의 공방을 찾아 나무 반지를 만들었다. 대패질로 나무를
깎아 만든 얇은 면을 돌돌 말아 원기둥을 만들고, 손가락 치수에 맞춰
다듬으니 반지가 만들어졌다. 1시간에 10만 원이 들었다.
13일 | 혼인교리
명동성당에서 혼인교리를 받았다. 2명에 3만 원을 지불했다. 5시간 동안의 교리는 나에 대한 이해와 우리에 대한 이해로 구성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라. 사랑의 언어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라. 천주교에서 출산은 reproduction이 아니라 procreation이다. 천주교가 바라보는 사랑과 혼인과 출산의 의미를 전달받았다.
비신자인 남자 친구에게도, 신앙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딸에게도 종교와 부모님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학교 수련회 처럼 노래를 틀어주고 편지를 적으라 하니 자동으로 눈물이 나온다. 약 100명의 젊은 남녀가 서로 편지를 읽어주며 눈물 훔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런 게 종교의 한 역할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인생 그래프를 그렸다. ‘출생 시점은 0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있다.’ 출생이 0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 좋았다.3 나는 출생 100에서 시작해서 마이너스 시절이 2번 있다.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 하성이는 자신의 장점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 삶의 의미가 삶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신부님이 8년간의 로마 생활에서 얻었다는 말. 내 삶의 의미를 우열 없이 생각해 본 지 오래되었다.
14일 | 상견례
상견례를 했다. SSG몰에서 도라지 정과 2개를 126,000원에 구입했다. 분홍색 보자기 하나, 파란색 보자기 하나. 이런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사다니, 새삼스러운 감정이 문득문득 튀어나왔다.
“이 사람이 고생 많이 했어요.”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집에 가서 표현하세요.”
새삼스러운 마음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20일 | 혼인 성사
혼인성사를 했다. 넓은 성당에 우리만 있다. 비 오는 날 불 꺼진 성당에 구두 소리가 울린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뒤에 앉아있다. 손에는 힘을 줘보지만 다리가 조금 떨렸다. 성사는 생각보다 엄숙했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존경하는 부부가 있으세요?”
“아는 부부가 몇 없어서… 부모님이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부모님 만큼만 사세요.”
혼인성사 전 면담에서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늦어진 일정에 쌓였던 불신이 날아갔다. 보는 눈이 있으시다.
21일 | 생일
오랜만에 생일날 집밥을 먹었다. 꽃다발 2개를 가지고 서울에 올라왔다. 현정이에게 받은 꽃까지 집에 3개의 화병이 생겼다. 대모님께 받은 성가정상을 피아노 위에 올려두었다. 가끔은 숨겨두고 싶던 물건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보다 소중한 것들이 생겼기 때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