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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Mar 04. 2022

#9 이사 결심

공기 좋은 곳으로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

 장성에서 요양하는 동안 추석 연휴가 찾아왔다. 명절 때 광주에 내려오는 고향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설날과 추석, 여름, 연말까지 못 해도 1년에 4번씩은 보는 친구들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같이 모이지를 못 했다. 친구들은 흉추에 새로운 암세포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요양하는 곳을 찾아왔다. 전복이나 아보카도 같은 몸에 좋은 것들을 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무렵은 내가 발병한 지 8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 8개월 동안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물심양면으로 내게 도움을 주었는데, 고향 친구 중에 딱 한 친구가 따로 연락이 없었었다. 놀우회 친구였는데, 단톡방에 발병 사실을 알렸을 때 그 친구를 제외한 모두가 바로 전화와 카톡을 보내왔었다. 엄청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25년을 알고 지낸 친구라 내심 꽤나 서운했었다.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데 어떻게 연락 한 번 없을 수가 있지? 


 그런데 명절 때 바로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단톡방에서 보고 갑상선암이라 괜찮은 줄 알고 그냥 지나쳤었는데, 다른 친구와 통화하다가 내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다고 했다.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와이프와 함께 펜션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 통화와 함께 친구에게 가지고 있던 서운함이 바로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아무래도 마음이 약해져 있는 상태다 보니 별 것 아닌 일에 울컥하고 화를 내는 일이 잦았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는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친구는 와이프와 얼마 전에 출생한 아들과 함께 펜션을 찾아왔다. 그리고 돌아갈 때 20만 원을 주고 갔다. 


 이 맘때쯤에 느낀 게 있었다. 내게 치료에 보태 쓰라며 직접 돈을 건네준 친구도 있었고, 자주 전화를 하면서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역시 있었다. 나는 내가 아프면서 내게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친구들이 누군지 한 번 거를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각자 나름의 삶이 있었다. 자신의 삶이 정신없이 바쁘거나 힘들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거다. 내게 천만 원을 건네 준 성공한 영화감독 형과 연락 한 번 없는 영화감독 지망생 친구의 마음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공을 해야 되는구나! 내가 여유가 있어야 주변을 돌아볼 마음이 생기는 거구나! 이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나면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단순히 떼돈을 벌고 싶었는데, 다른 이유로 돈을 벌고 싶어졌다. 


 여자 친구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내려왔다. 같이 축령산 편백나무숲을 산책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 나름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나와 결혼을 추진할 줄 알았는데, 남자 친구가 덜컥 암에 걸려버렸고 심지어 전이가 되어 요양을 하고 있었다. 여자 친구의 고향 친구는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라고 했다. 어떤 마음으로 여자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기에 더 있으면 몸이 더 좋아질 것이 분명했지만, 이곳은 너무나 심심했다. 어서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공기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서울을 벗어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교도 서울에서 나오고, 20년 가까이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서울은 제2의 고향이었다. 이사 후보지는 3곳이었다. 


북한산 밑자락 수유, 도봉 쪽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밑자락

경기도 남양주나 광주를 비롯한 경기도 외곽


어디로 이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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